햇살에 물든 이별. 안녕,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여행의 마지막 날. 오늘 오후에 바르셀로나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아침부터 마음 한켠이 허전했다. 바르셀로나라는 우리에게 참 편안함을 선물한 도시다. 시차는 첫날 FC 바르셀로나 게임을 보러 갔을 때만 잠시 느꼈고, 이후로는 쉬엄쉬엄 쉬어가며 시에스타의 여유 속에 진정한 휴식을 누렸다. 그간 바쁘게 보냈던 여행들과는 차별되어 여유로운 여행을 즐긴 첫 도시로 기억될 것 같다.
일상에서도 잘하지 않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 거리로 나섰다. 토요일 아침의 골목길은 생기가 넘쳐났다. 거리는 연주를 하는 밴드와 춤을 추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의 일정은 지로나 (Girona)로 이동을 하는 것이라 한 박자 쉬어가는 날로 정했다. 느긋한 마음으로 동네 골목길을 돌아 브런치로 유명한 집을 찾았다. 코기 (Corgi) 카페라는 식당이었는데 원래 여러 마리의 웰시 코기가 손님을 응대한다 들었다.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아직 아이들이 출근을 하지 않은 상태여서 살짝 아쉬웠다.
커피를 시켜서 잠을 깨우고 (커피 양이 너무 적다…ㅠㅠ), 블로거의 정신을 따라 웬만하면 시키지 않는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팬케이크를 시켰다. 날씬한 짱구언니는 늘 그렇듯 야채가 올라간 건강한 아보카도 토스트를 시켰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원래 '가진 것'들이 더 관리한다. 분위기도 좋았고 맛도 좋았지만 너무 한꺼번에 당분을 때려 붓는 바람에 오늘은 젤라토를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호텔로 다시 돌아와 짐을 프런트에 맡기고, 바르셀로나 바닷가를 돌아보기 위해 다시 길에 섰다. 그래도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인데 그 바다는 어떤 분위기인지 느껴봐야 제대로 바르셀로나 여행을 했다고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람블라스 거리 최남단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 콜럼버스 (Monument a Colom) 기념비를 먼저 구경했다. 콜럼버스가 인도인 줄 착각하고 다녀온 남미 섬의 여행 후 돌아온 항구인 바르셀로나를 기념하기 위해 1888년에 지어진 기념비다.
다리를 건너 Rambla De Mar를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는 곳도 바다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에 커다란 특징은 없었다. 그런데 바다에 뛰놀고 있는 생선(?)들을 발견한 짱구언니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마치 물에 뛰어들어 물고기들을 건져낼 것처럼 그들을 노려보며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어이, 짱구씨. 물고기 본 김에 수족관 구경 갈까? 어차피 오늘 오전은 그냥 산책만 하는 것인데 수족관을 다녀오면 시간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의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한 ‘아니’였다. 괜한 불안감이 있어 수족관을 누리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었다. 갑자기 시간이 붕 뜨는 느낌이었다. 이제 뭘 하지? 그냥 수족관 주변의 쇼핑몰을 걸어 봤으나 우리의 구미를 당기는 가게를 찾지는 못했다.
Rambla De Mar 돌아보기는 여기서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바다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손이 아픈 아저씨 하나를 만났는데 영어도 스페인어도 안되는 모로코에서 온 아저씨란다. 핸드폰도 없어서 병원을 가야 하는데 정보가 없는 모양이다. 어찌어찌 소통이 되어 같은 버스를 타고 아저씨가 가야 하는 병원 앞까지 동행해 주었다. 나는 이런 순간마다 미국으로 유배를 보낸 우리 엄니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삐리삔 같은 곳으로 유배를 갔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물론 영어는 좀 할 수 있겠지만).
바르셀로나 바닷가에는 토요일의 햇살을 누리는 사람들이 점령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따뜻한 햇살이 무색하게 바람은 엄청 찼다. 바닷가를 따라 걸으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할 일이 없는 여유로운 날에는 사람 구경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다. 비치 타월인지 양탄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을 모래사장에 펼쳐 놓고 파는 상인들도 구경하고. 밴드가 연주를 시작하면 길을 걷던 모르는 사람들이 얼싸안고 무도회장 분위기를 내는 모습도 즐거웠다. 또 신혼여행에 친구들이 따라왔는지 총각 파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하와이안 셔츠를 맞추어 입고 이곳저곳을 돌며 시끄럽게 하는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웠다.
우리의 목표는 고래처럼 생긴 건물까지 가는 것이었다. 땀까지 삐질 거리며 찾아간 고래 건물은… 카지노였다. 갑자기 들이닥친 동양인 둘에 놀란 경비 아저씨가 우리에게 시선을 주었지만 카지노하고 친하지 않은 우리 둘은 아저씨에게 손만 흔들어주고 황급히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느덧 점심시간. 바닷가에 있는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배가 많이 고픈 것은 아닌 상태라 음료와 나초 치즈를 시켰다. 나초 치즈를 먹자고 제안했더니 짱구언니도 그것을 원했단다. 우리는 이래서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바퀴벌레인 것이다. 20년을 넘게 살아 서로에게 지겨워질 때도 되었는데, 이렇게 손발이 착착 맞으니 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서로를 끼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란 말이다.
이제 바르셀로나의 모든 일정이 끝이 났다. 호텔로 돌아가 짐을 찾고 Avis에 가서 차를 빌린 후 바르셀로나를 떠나면 된다. 여유로운 바닷가의 풍경 뒤로 아름다운 바르셀로나의 여행의 마지막이 숨 가프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