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바르셀로나 여행: 달리 극장 미술관

경이와 혼란

by 꿈 공작소

아침 일찍 호텔을 출발해 피게레스로 향했다. 피게레스는 스페인이 낳은 최고의 미술가 중 하나인 살바도르 달리의 고향이다. 그가 그의 재능으로 축적한 부를 이용해 극장을 인수하고 박물관과 문화 재단을 설립해 놓았다고 해서 찾아가는 중이다. 프랑스 국경에서 30킬로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라 프랑스를 다녀오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이번 여행은 온전히 스페인에만 머물기로 했다. 뭔가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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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조식 전이라 휴게소에 멈춰서 배를 채웠다. 미국에는 휴게소 문화가 없다 보니, 해외에 나오면 꼭 들러 체험해야 하는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침부터 시작된 짱구언니의 투덜거림을 잠재우기 위한 포석이기도 했다. 짱구언니는 분명 지로나에서 피게레스의 달리 극장 미술관으로 가는 관광버스가 있을 텐데 굳이 운전을 한다고 투정을 부렸다.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랑 한 시간 이상 같은 공간을 소유하고, 내 마음대로 운신을 할 수 없는 여행 방식을 내가 고집할 이유 없이 자유롭게 운전을 하면 이렇게 편한데, 꼭 잔소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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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피게레스는 아주 작고 오래된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이었다. 달리의 명성 때문에 많은 관광객이 찾는 마을이며, '달리의 마을'이라는 별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매력을 잘 보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차를 하고 마주하는 붉은 건물은 정말 특이하게 생겼다. 빵 모양으로 생긴 장식이 벽에 알알이 박혀 있는 것도 그렇고, 달리가 자주 사용하는 달걀과 금상으로 장식이 되어 있는 달리 극장 미술관은 초현실주의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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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입구는 예상했던 자줏빛 건물 쪽에 있지 않고, 골목을 돌아 기괴한 장식이 되어 있는 건물 사이를 통해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달리가 기인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지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는데, 정말 특별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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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극장 미술관은 작품을 소장한 공간일 뿐 아니라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이었다. 본인이 태어난 고향에 있는 낡은 극장을 구입해 자신이 설계하고 보수해서 만들어 놓은 미술관인데, 그의 정신세계처럼 전시관들이 복잡한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질서정연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살짝 불편하게 느껴지는 구성 (Organized Chaos)이었지만, 그의 작품 세계의 변화를 함께 체감할 수 있는 것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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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찾아간 윙에는 그의 초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피카소의 초기 작품이 더 마음에 들듯 달리의 초기 작품도 마음에 쏙 들었다. 아직 초현실주의로 들어가기 전의 그의 작품들은 몽환적이지만 묘하게 정적인 느낌이었다. 달리의 명작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ce of Memory)으로 가기 위한 준비 운동의 행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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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으로 들어서자 이 미술관 마스터피스 중 하나인 Rainy Taxi (Mannequin Rotting in a Taxi-Cab)가 모습을 드러낸다. 달리의 초현실주의 설치 아트 작품으로 비가 오는 택시 안에 두 개의 마네킹이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관람객이 1유로짜리 동전을 넣으면 택시 안에 비가 오도록 설계되어 있다. 택시 위에 올라서 있는 여신(?)의 조각과 그 뒤 기둥에 올라가 있는 조각배가 우리의 시선을 더 사로잡았지만, 기묘한 택시가 그들보다 훨씬 중요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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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을 벗어나 다른 전시관들을 거닐다 보면, 어떤 스케치와 작품은 너무 기괴해서 과연 달리라는 사람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요즘 같으면 약을 빨고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작품들이 즐비했다. 그는 또 자신의 초상을 희화시키고 기괴한 모습으로 변형시켜 스스로를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그런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을 곳곳에서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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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이 그가 피게레스에서 태어나 화가로 데뷔를 한 후 다른 지역에서 살며 작품 활동을 하다가 이곳에 미술관을 만들고, 여기서 잠들었다. 그의 묘소는 미술관 지하에 위치해 있는데, 검은 벽에 조명으로 밝힌 그의 비석 그리고 그의 특이한 표정의 사진은 그가 죽을 때까지 단지 화가의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어쩌면 평생을 행위 예술을 하는 연기자의 삶을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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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골목형 전시실을 벗어나면 로툰다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돔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함께 빛을 발하고 있는 커다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미술관이 좁은 골목형으로 되어있기에 가이드를 대동한 투어팀이 모여서 설명을 들을 공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이드 투어팀은 이곳에 다 모여있는 모양이다. 짱구언니가 휴식을 잠깐 취하고 있는 사이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어 어느새 로툰다 홀이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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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과 섞이는 것을 가장 싫어하기에 재빨리 다른 전시실로 이동을 해야만 했다. 오픈런을 한 상태라 아침 내내 여유롭게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런 여유는 즐길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은 분주한 마음이 되어 전시실을 훑고 있다가 Mae West Room (메이 웨스트 방)를 만났다. 이 작품 역시 이 미술관이 전시하고 있는 마스터피스 설치 예술 중 하나인데, 1920에서 30년대 할리우드에서 인기를 누리던 관능적인 섹스 심벌 배우 메이 웨스트의 얼굴을 아파트처럼 형상화한 것이다. 옆에서 보면 입술 모양의 카우치, 코 모양의 벽난로, 그리고 눈 모양의 액자가 눈에 들어오지만, 금발 머리로 장식이 된 창에서 바라보면 그녀의 얼굴이 완성되는 재미있는 착시 작품이었다.

DSC_9680.JPG?type=w966 달리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Battle of Tetuan: 스페인과 모로코와의 전쟁인데 카탈루냐 예술과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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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극장 미술관의 특징은 달리의 회화들을 감상하는 것도 즐겁지만, 그 못지않게 공간을 통한 그의 설치 미술과 조각 등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주었다. 그때 문득, 달리는 대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길래 자기가 하고 싶은 예술을 이렇게 마음껏 하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가 유명한 화가로 성공해 기업 로고 디자인까지 하며 많은 부를 축적하기는 했지만). 검색을 해보니 그의 아버지는 중산층 변호사였다고 한다. 그의 시작이 가난한 화가부터가 아니라, 소위 금수저 환경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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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한 작품들을 너무 많이 섭취했는지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또 그의 어떤 기괴한 설치 미술은 왠지 모를 거부감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마지막 전시실에 도착을 했는데, 그 방에는 유명한 고전 작품을 자신의 방식대로 표현한 패러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라파엘의 La Fornarina를 패러디해 달리의 평생의 동반자이자 뮤즈였던 갈라 (엘레나 이바노브나 디아코노바 (Elena Ivanovna Diakonova))의 모습을 그려 넣은 작품도 있었고, 벨라스케스의 Las Meninas(시녀들)과 베르메르의 레이스를 뜨는 여인을 자기 색채대로 표현한 것을 분석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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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다른 달리의 갬성 때문일까? 달리 극장 미술관은 다른 미술관과는 차별화되어 있었다. 물론 건물 구조나 전시 구성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고 혼란스러웠지만 (혼란스러운 작품이 많았던 것도 일조했음), 그래도 달리에 대해 더 알게 되었고, 나 같은 계획형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화가였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살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겠지만, 그래도 그가 원하는 그의 작품 세계의 날개를 활짝 펴고 마음껏 날 수 있었던 그의 삶이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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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벗어나 피게레스 거리로 나섰다. 아직도 오전이라 그런지 조용하고 고즈넉하게 잠들어 있었다. 카페들이 문이 열기를 기다려 시간을 더 보내고 싶지만 오늘 하루는 달리에게 바치기로 해서 다음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다. 아쉬웠지만 피게레스와의 짧지만 강력한 만남은 이 정도로 마무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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