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그림을 너무 그리고 싶은데 도대체 뭘 그려야 할지 고민되어 시작도 못한 나. 추상적이고 조용하고 미학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주제를 정하지 못해서 생각만 하고 미루기만 했다.
나는 많은 색감과 면과 선이 가득한 그림을 선호하지 않는다. 속에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그림 안에 많은 정보(=요소)들이 있으면 기력을 빼앗기는 기분. 아름다운데 오래 보기 힘든 그런 거. (심지어 내 그림에 색이 많으면 내가 질리기도.)
사진은 다양한 색감이 쨍하게 드러난 빈티지한 것을 좋아한다. 근데 그림은 그와 반대로 단색에 선이 모호한 흐릿한 것을 좋아한다. 색감은 하나의 톤 안에 머물렀으면 좋겠고, 선은 최대한 가늘게, 넓은 면으로 이루어진 그림이 좋다. 질감은 거친 게 재밌지만, 결국 눈이 편한 건 절제된 것이다. 그래서 흐릿한 그림이 더 좋다.
글씨는 자유롭게 그리듯 쓴 악필이 내 취향이다. 어설픈 글씨는 내게 솔직하게 다가온다. 종이는 색 바랜 종이가 좋다. 구겨진 건 싫은데, 흔적이 묻은 건 좋다. 구겨진 건 소홀히 대한 것 같은데, 흔적이 묻은 건 애정을 담아 대한 것 같아서.
추상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건 싫다. 작가의 의도가 쉽게 느껴지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유치하고 단순한 건 또 싫고. 나는 미리 결말과 의미를 아는 것을 좋아한다. 결말로 도달하기 위한 과정을 어떻게 계획하고 이뤄냈는지, 이를 느끼고 해석하는 것에 더 큰 흥미를 느낀다.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리고 향과 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