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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자 까 Jul 04. 2024

젊음을 투고하기

얼마 전 지하철을 탔다.

내 옆에 50대 훨씬 이상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앉아 계셨는데,

가는 내내, 세월이 물든 하얀 머리를 숙여 무언갈 열심히 보고 계셨다.


앞으로 고정되어 있던 내 시선이,

잠시 그분의 바쁘게 움직이던 거친 손 마디에 머물렀던 찰나가 있었다.


그 찰나, 내 시야에 들어온 건 채용공고였다.


목적지로 가는 내내 공고를 보았던 그분의 삶이 궁금했다.

단순 호기심이나 동정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딩-‘하고 울리는 깨달음의 종소리에서 비롯된 궁금증이었다.


‘실직을 하신 걸까? 그래서 채용 공고를 보고 계신 걸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 걸까?’

‘공고를 찾아보는 마음이 설렘일까 불안함일까?’


‘진로에 대한 고민은 2-30대에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 라는 방대한 생각들로 가득 찰 무렵, 맞은편에 앉으신 50대 아주머니들의 소녀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정말 소녀 같은 웃음소리였다. ‘꺄르르’이게 아니라, ‘갸악-‘ 이런 단전에서 올라오는 현실 학생의 순수한 경박스러운 웃음소리랄까. 학생처럼 저항 없이 웃으시는 두 분의 모습을 보고, 나도 속으로 같이 웃었다.


별로 길지도 않은 지하철에서, 평생 한 번 잠깐 마주칠 사람들의 삶을 엿보았는데,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에 대한 고민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 곁에 지독히 얽혀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사소한 말장난 하나에 저항 없이 웃을 수 있는 틈이 있다는 것이, 참. 당근과 채찍을 한 번에 맞는 기분이었다.


젊음이라는 황금기를 저마다 투고하는 대상은 다르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또는 사랑하는 이에게, 어떤 이는 가족에게, 혹은 사회에게.

그 투고의 행위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불러줄지 모르겠지만, 기력 있는 젊은 날의 내가 열렬히 투고했던 과정이, 기력 없어 신중하고 노련해진 중년기의 나에게 ‘열정이 전소하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란 믿음은 있다.


사소한 시선에서 시작된… 방대한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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