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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Aug 05. 2024

엄마의 친구

같이 걸어가며 각자 떠들어대는 말들

녹음기로 하나하나 녹음해놓고 싶던 대화들은 오랜만이었다. 너무 대놓고 따스워서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들의 표현이 아름답고 진실되어서. 하는 말들이 울컥울컥 해서 반드시 기록하자고 생각했다. 울컥한 건 예쁜 글을 쓰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녀를 만난 건 최소 3년 만의 일이다. 우리 엄마의 거의 유일한 친구(유일한 지 아닌 지 사실 잘 알지 못한다.)인 그녀를 만나는 건 엄마가 서울을 올라와서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 엄마는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할아버지의 짜장면 사업이 어려워지기 전까지 우리 엄마는 나름, 잘 사는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면서 그녀가 좋아하는 기름 떡볶이를 자주 사 먹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런 엄마를 초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알게 된 친구라고 했다. 광주로 내려와 살고 있는 엄마와 달리 그녀는 서울에서 쭉 살아온 듯했다. 서울에 대한 향수가 조금 남아있는 엄마에게는 서울로 올라가 호텔에서 며칠 지내는 일은 어떤 휴양보다 재밌는 일이고, 향수를 더더욱 불어 일으키는 일이다.

 

오랜만에 그녀를 마주한건 어느 한 삼겹살집에서였다. 그녀가 사는 동네는 꽤 광주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 삼겹살 집은 더 그랬다. 군 복무를 하던 광주 도산동의 삼겹살 집 느낌이 나서 좀 더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잔뜩 올린 하이톤의 목소리로 ‘훈민아~ 훈민아 잘 지냈어?’를 외친다. 날 이렇게나 반가워해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많이 없다. 이모는(그녀를 나는 이모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와 아빠와 인사를 주고받는다. "어머 얘 좀봐 너 왜 이렇게 예뻐졌니?" 또는 “야 너 지금이 리즈야 리즈” 그녀의 시원시원한 목소리만큼 기분 좋은 칭찬들이 이어진다. 우리 엄마는 차분한 사람이라 그런 말을 듣고 그렇지 않은 척을 하지만 기분이 좋아져 얼굴이 상기된다. 엄마는 마치 보답을 하는 듯이, “어머 얘 너네 형부는 왜 이렇게 홀쭉해졌어?” 난 이들의 칭찬 릴레이에 진심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누군가에 엄마의 칭찬을 들을 일이 없던 내게 엄마의 좋은 점을 듣는 경험은 소중하고, 크게 기분 변화가 없는 그래서 가끔은 삶을 지루하게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가 수줍게 활짝 웃는 모습은 더더욱 소중하다.

그녀는 확실한 달변가이자, 개그우먼이다. 그녀는 내게 소맥을 타서 주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소맥을 들이켠다. 엄마 아빠와는 절대 술을 마셔주지 않는데, 소맥을 한껏 들이키는 날 보면서 엄마 아빠는 서운한 기색을 내비친다. 이모는 “엄마 아빠는 재미없어서 같이 술 마시기가 싫지?”라고 묻는데, 부모를 더 골리고 싶은 마음에 연신 고개를 끄덕거린다. 부동산 사무소를 개업한 지 며칠이 되지도 않았지만, 벌써 그녀에겐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잔뜩 있는 듯했다. “누가 내 사무소에 들어오잖아? 그럼 거기서 끝이야 끝. 절대 한번 물면 놓지를 않아. 너네도 알잖아 내 말발, 거기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더라고.” 재밌지만 무례하지는 않고 가볍지만 신뢰감 있는 이모의 말의 매력을 그 손님들도 아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더 많은 손님들이 그걸 알아서 이모가 더 빨리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모가 준 뻥튀기에 올려진 아이스크림을 할짝 핥으면서 거리를 나선다. 서울 같지 않은 좁은 골목길에 우리 엄마와 아빠와 이모와 이모부가 걸어가며 각자 떠들어댄다. 심심하지 않아 보이는 각자를 생각하면서 결혼이란 건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내게는 30년이 지나도 나란히 길을 걸어갈 친구 하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진다. 조용하고 차분한 우리 엄마와, 활발하고 말을 아끼지 않는 이모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가 궁금해졌다. 가끔은 어쩌다 보니, 가장 가까워져 있는 사이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와 함께 해왔던 시간들 중에도 따뜻한 말에 감동할 때도 많았다. 내 기가 막힌 어린 시절에 나는 누군가가 날 힘들게 할 때 내 탓을 하는 날이 많았다. 아파도 웃고, 싫어도 웃던 나였으니 내게 장난을 가장하여 놀리거나 괴롭히거나 하는 일은 학창 시절에 많았다. 그 아팠던 시절에 아픈 이야기를 장난스레 웃으며 꺼내는데 이모는 갑자기 얼굴이 굳어지며 정색했다. 만약 너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이모는 학교에 당장 찾아가서 그게 누구든 머리채를 잡았을 거라고 말해줬다. 부모들에게는 반드시 무릎을 꿇리겠다고 해주었다. 그 말들이 그 아픈 시절을 잘 거쳐가는데 엄청난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직 말해주지 못했다. 이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누군가를 무릎 꿇리고 머리채를 잡고 할 것을 다짐했다.

 

엄마에게 가족만큼 가까운 사람이 있어 엄마에게 참 다행이다. 다시 잘 생각해 보니, 엄마에게 가족만큼 가까운 사람이 있어 나도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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