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의 스타벅스에서 만나
사실 세본 것은 아니지만 숫자를 정확히 매겨봤으면 그 정도의 횟수가 나올 것이라 확신한다.
소개팅 장소는, 언제나 정해진 것은 없지만 카페에서 진행되고 주로 스타벅스에서 만난다. 사람들도 너무 많고, 커플들도 많아서 그들에게 소개팅이라는 걸 들키는 끔찍한 상상을 하며 최대한 눈길이 안 가고 소리가 안 새어나가는 구석 자리에 위치한다. 이제 너무나 익숙해진 일이지만, 그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두려움으로 떨리는 건 할 수 없다. 두려움의 이유는 두 가지이다. 그 사람이 볼품없어 이 시간을 버릴까 봐, 또는 내가 그 사람에게는 너무 볼품없는 탓에 그 사람이 시간을 버릴까 봐. 난 사진으로 장난치는 일 따위는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가끔 그런 거짓으로 중무장한 뻔뻔한 이들이 있기 때문에 경계하는 편이다. 그 사람은 생각보다 많이 늦는다. 항상 소개팅 자리에 일찍 도착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의도적으로 혹은 실수로 늦게 나타나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건 어떻게 보면 전략일 수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다 보면, 기대되는 마음이 커지기도 하지만 등장하는 사람에 따라 커지는 기대는 그 사람에게 악재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 사람은 약 20분이 지나서야 도착한다. 조금 화가 나지만, 하얀 피부와 머쓱해하는 표정이 귀여운 탓에 크게 내색하지는 않는다. ‘음료를 좀 시키고 올게요’ 아직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 눈도 못 맞춰봤는데 걔는 또 나를 두고 떠난다. 차분하게 앉아서 오늘의 전략을 다시 체크한다. ‘난 최고야, 나도 꿀릴 것 없어. 나도 괜찮은 사람이다.’를 연신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며칠 전,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친구 둘을 앉혀놓고 고민을 이야기했었다. 현승아 나는 사람이 내 맘에 들든 안 들든 위축된다? 그냥 바보가 되어있어. 그때부터는 그냥 왠지 그 사람에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기 자랑 경연대회를 시작하는 거지. 관객이 누구든, 날 관심 있어 하든 아니든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한번 으스러지고 말아. 어제는 글쎄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부분에서 감명 깊었는지, 난 그래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까지 거의 대학 강의 발표를 하고 왔다니까. 편안한 소개팅 하고 싶다. 별말하지 않아도 날 편안히 바라봐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문득 그 사람이 도착해서 자리에 앉으니 친구들과 했던 이야기들이 생각이 난다. 편안하게 그 사람을 훑기 시작한다. 코가 되게 예쁜 사람이었다. 피부가 맑았다. 머리가 예뻤다. 나에게 없는 걸 그 사람은 가지고 있었다. 내 첫 질문은 항상 정해져 있다. 학생이면 어떤 전공을 배우는지, 직장인이면 어떤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묻는다.
오늘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또 마치 열려있는 책처럼 이야기가 쏟아 지다가 상대의 지루한 표정을 보고 나서야 중단된다. 정적이 거듭되자, 그는 지루해하면서 일어나자고 한다. 난 오늘도 내 아주 짧았던 만남과 이별을 직감한다. 며칠에 누굴 만났는지 누굴 생각했는지 며칠만 지나면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얼굴이 하얬던 사람도 며칠이면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의 늪에 가라앉아 소멸이 예정되어 있다. 오래 기다리지도 않았던 짧은 도파민의 자극이 사그라들 때쯤 배가 고파지기 시작한다. 집에 오는 길에 내게 작은 햄버거를 쥐어주고는 터덜터덜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