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gic End of Louis XVI, 1797
The Tragic End of Louis XVI, 1797, coloured etching by Beau after Fious
루이16세의 비극
근대 이후부터야 서구사회가 훨씬 사람 살기 좋은 시절이었던건 맞다만 중세만해도 유럽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살아가는 모양이 별 다르지 않을만큼 구렸다.
감옥이나 처형 상황도 그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활 하나 쏴서 혹은 칼로 뎅겅 슥삭 하면 '으악!'하고 단번에 죽는게 아니었다.
주로 쓰이던 처형 방식은 참수형(목을 뎅겅), 화형(불태워죽임), 교수형(목메달아죽임), 거열형(사지찢어죽임) 등인데 그나마 이중에 제일 덜 고통스러운게 참수형이였다.
덜 고통스러울 뿐이지 편한것도 아니었다. 사형집행에 쓰이는 칼이나 도끼가 시원찮아서 꽤 고생하면서 죽어야 했다. 참수형도 저럴진대 다른 형들은 오죽했겠냐고.
그래서 처형에도 신분을 나눠 집행하기 시작했다. 돈 없고 힘없는 평민들은 참수형은 당할 수 없었다. 잘해야 교수형이다. 그게 목이메달려 숨이끊어질때까지 길게는 수십분을 눈알이 튀어나오고 똥오줌을 줄줄 싸면서 고통에 몸부림쳐야했던 고통 +수치스러운 처벌이었다.
화형이나 거열형 역시 그 고통과 사망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 그나마 깔끔하고 품위있게 빨리 죽을 수 있는 참수형은 귀족들만이 누릴 수 있는 처형이었다.
이러한 처형의 차별이 한 방에 사라진 역사가 있었으니 바로 기요틴이 발명한 기요틴의 등장이었다.
모든 이들이 한방에 깔끔하게 고통없이 처형당할 수 있는 참으로 기특한(?)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기요틴이 역사에 가로박히고 우리같은 평범한 동양의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상식처럼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프랑스 혁명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기 때문이렸다.
평민들(이라고 하기엔 돈많은 남자들이긴 했지만 무튼)에게 드디어 참정권이 생기고 왕을 끌어내려 하물며 루이16세를 저 그림에서처럼 단두대에서 처형해버렸으니 그 어떤 물건 보다 평등과 자유, 바로 혁명의 상징품이지 않겠나.
새벽부터 장황하게 온갖 쑹한 단어를 써가며 사람 죽이는 것도 평등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21세기다.
단두대라는 평등한 사형 기계에 왕도 사기꾼도 살인범도 똑같이 처형했던 그 날로부터 수백년이 지났다.
과연 지금 우리는 모든 이가 법 앞에 평등한 삶을 누리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어제부터 맴돌았기 때문이다.
세계인권선언 제7조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어떠한 차별도 없이 법의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위반되는 어떠한 차별과 그러한 차별의 선동으로부터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