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 직업선택의 자유

직업선택의 역사

by 효주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말을 알아듣고, 누군가와 대화가 가능하게 되면서 부터 수도 없이 들어본 말일 것입니다.

성인이 되면 질문은 이렇게도 바뀌죠.

"뭘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두가지 질문 모두, 직업을 구할 수 있는지 혹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내가 어떤 직업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역사 속 많은 사람들에게 이 질문은 사치였다.
왜냐하면 신분제가 시퍼렇게 살아 있던 시절의 직업은 ‘꿈’이나, 무엇을 선택해야할지의 고민이 아니라 출생으로 정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20세기 이전의 삶은 철저하게 신분사회였습니다. 그러한 사회에서 직업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신분'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식이었죠. 신분에 의해 직업이 규정되었고, 성별에 의해 혹은 태어난 곳에 의해서도 직업이 정해져 평생 살아가야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의 문제가 아닌, 내 신분에 맞지 않는 일은 할 수 없는 통제 속에서 평생 혹은 나의 부모와 나, 그리고 나의 자식과 손자까지 그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죠. 부모가 소를 잡는 백정이었다면,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 좋고 재능이 있지만 언젠가는 부모가 잡았던 칼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한 손에 책을 들고

한 손에 붓을 잡아
세상에 뜻을 펼치고자 하나
문은 닫히고 길은 막혔네.


조선초기를 아주짧게 살다 간 여성 허난설헌(1563~1589)이 지은 '규원가(閨怨歌)'중의 한 대목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홍길동전'을 써낸 조선시대 최고의 문인 허균의 누나이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당시 그녀의 능력이나 비범함은 동생인 허균을 넘어섰을수도 있습니다. 그녀가 스물일곱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 가면서 남긴 수많은 글들이 너무나 대단하여 그녀의 가족들이 문집으로 남기기까지 했으니까요. 이렇게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가 시에서 남긴것처럼 그 시대 여성은 자신이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여성에게 정해져 있는 직업, 특히 양반 여성에게 허락된 직업은 한 남자의 부인으로 아이 특히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 훌륭히 잘 기르는 일 뿐이었으니까요. 유일하게 허락된 그 직업을 거부할 수는 없었습니다. 거부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 가족, 그 사회모두를 거부하는 행위였을테니까요.

신분제가 개인의 직업을 가로 막는 다는것이 비단 신분이 낮은 이들에게만 고통은 아니었던 것이죠.


혁명으로 바꾼 직업선택의 자유

그 옛날 직업을 선택할 수 없던 시절 허난설헌처럼 문제를 인식하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살았던 일부의 사람들과 자신의 삶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아주 일부의 사람들은 문제라고 인식한 이후 적극적으로 신분제를 벗어나기 위해 저항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분제가 만들어 놓은 '직업의 감옥'을 부수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했습니다.

서구사회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있었고, 대한민국의 역사에도 수많은 반란이 있었습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며 노비의 신분을 벗어던지고자 한 고려시대의 만적의 난이 있었고, 조선후기 특정 지역의 가문으로 관직이 집중되자 배척받았던 평안도 등 서북지역 양반이었던 홍경래가 난을 일으켰습니다.

무슨 직업이든 무슨 상관일까요? 그냥 생존할 수 있을만큼 먹고살기만 하면 되는거 아닐까요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삶에 있어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직업의 선택'이라는 것은 '내가 어떤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선택권이니까요.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직업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과연 완벽하게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직업선택의 자유가 인정되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 남습니다. 지구 한켠에는 아직도 신분제도가 카스트제도 같은 이름으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신분제가 법적으로는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형태의 고용제도가 생겨나며 고용의 차별이 생기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역시 어느날부터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고용의 형태가 나타나면서 보이지 않는 신분이 되어버렸습니다. 자본 역시 직업선택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벽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부터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의 주소지는 부자들이 많이 몰려사는 동네로 치우쳐 있다는 기사를 심심치않게 보로 수 있습니다.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고 같은 노력을 한다고 가정할 경우 더 많은 부를 바탕으로 좋은 학원을 다니고 좋은 과외를 받은 사람이 훨씬 더 의대로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니까요.


그럼에도 대한민국 헌법 제15조에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선명히 새겨져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이 문장을 보면, 직업선택의 자유는 어떠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생기는 권리는 아닙니다. 태어날때부터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기본권이라는 것이죠. 즉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성별이나 출신지역이나 가정형편에 의해서 그 가능성이 제한되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국가라면 더더욱이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제도를 최대한 보완해주어야 하는 것이구요.

특히 청소년에게 직업의 선택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제 청소년은 자신들의 삶의 방향을 하나 하나 정해나가야 하는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에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하던, 국가는 그 선택의 권리를 지원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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