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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Oct 18. 2021

예수님도 난민이었습니다.

[그림] 영국 최후의 날, #난민

차가운 바람이 살을 애일 것 같은 추위가 느껴집니다. 

영국의 최후, 포드 매독스 브라운   The Last of England, 1852~1855, oil on  canvas Ford Madox Brown(출처=위키커먼스미디어)


젊은 부부와 여성의 품 속에 있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작은 손 하나가 아이까지 함께 하는 것으로 보이네요. 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제목에서 말해 주듯 영국을 떠나 어디론가는 향하는 모양입니다. 신대륙을 찾아가는 것일까요? 

 전세계를 호령하고 해가지지 않았던 나라, 영국의 사람들도 이렇게 불안한 배위에 앉아 새롭게 삶을 영위하기 위해 불안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작품이 만들어지던 19세기의 영국은 산업혁명과 식민지개척이 이루어졌습니다. 빅토리아 시대라고 불리우는 영국의 황금기가 시작되던 때였죠. 하지만 당시 일반 시민들의 삶은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랜 농노제의 기반이 되었던 영지가 사라지고 경작할 농토를 잃어버린 가난한 농민들이 이동할 계층은 도시 빈민이라는 자리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동화에서 익히 봤던 주인공들이죠. 굴뚝청소를 하는 소년과 성냥을 팔던 소녀도 이 시기에 도시에서 버려졌던 아이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게다가 당시 아일랜드는 대기근으로 인하여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잘나가는 영국이었지만 생존하기 위해 영국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죠.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고 세찬 바람을 맞아가며 저 거친 바다로 나오는 이들의 불안한 눈빛은 비단 19세기 영국 뿐만 아니었을겁니다. 지금도 이렇게 불안한 여정은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시 1994년부터 시작된 난민신청자는 국내 현재 2만명이 넘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은 비율은 3%도 채 되지 않습니다. 전세계 평균이 40%에 육박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좀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먹고 살만한 나라들이 모여서 만든 모임이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멤버이기도 하고, 40여개 멤버 국가들 중에서도 경제력이 한 10등 정도 하니까 꽤 잘사는 나라인데도 말입니다.                     


  


우리도 먹고 살게 없어서 나눌 것도 없다면 모르겠지만, 먹고 살만하면서도 왜이렇게 난민 인정에는 인색한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난민들이 주로 이슬람 국가에서 오기 때문에 이슬람이라는 문화에 대한 편견으로 거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 대한민국은 단일민족의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 저렇게 오는 사람들을 무작정 받아서는 안된다는 말들도 오고 갑니다. 


 그런데, 그들도 결코 원해서 난민이 되지는 않았을테지요. 나라가 전쟁이나 기근, 자연재해 같은 것들로 인해서 혼란해지게 되면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탈출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죠. 바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우리는 중국으로 하와이로 이주했습니다. 정부조차 임시정부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을 전전했습니다. 유엔에서 난민구호 활동을 공식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도 바로 한국전쟁이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600만명의 피난민이 발생했을 때 유엔난민기구는 이를 난민으로 규정, 분류하고 유엔한국재건단을 설립합니다. 이 때 난민 중에서는 지금 우리가 난민지위를 부여하기 거부하고 대한민국 입국조차 막고 있는 시리아에 입양되어 간 고아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예수님도 난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요한복음서에 기록된 아기 예수의 탄생을 보면, ‘“헤롯이 아기를 찾아서 죽이려고 하니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그리고 내가 너에게 말해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요셉이 일어나서, 밤 사이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헤롯이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라고 합니다. 

 즉 요셉의 가족은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해 있다가 박해의 원인이 해소된 후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 곁에 있는 난민의 문제가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것이죠. 

 글로벌한, 세계화된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 이후의 세대를 생각하면 우리가 보호해야하는 인간의 존엄은 단순히 대한민국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인간에 대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곁들여보기]

 - 세계인권선언 

제13조 모든 사람은 자기 나라 영토 안에서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살 수 있다. 또한 그 나라를 떠날 권리가 있고, 다시 돌아올 권리도 있다.     

제14조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해, 타국에 피난처를 구하고 그곳에 망명할 권리가 있다.               

 -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 : 난민에 대한 기본적 자유와 인권 보장을 목적으로 종래의 국제협정을 수정, 통합하고 범위 역시 확대하기 위해 1951년 '난민과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국제연합 전권(全權)회의’에서 채택, 1954년 4월 22일 발효되었으며, 한국은 1993년 3월 3일 발효되었다. 총 126개국이 현재 비준 당사국이다.



<대문그림 : Adorazione dei Magi by Gentile da Fabriano; Scene of Flight in Egypt - centre part of predella, Gentile da Fabrino, (출처=위키미디어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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