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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Oct 26. 2022

나라가 가장 힘이 없을 때 만들어진 슬픈 법

[그림]천조장사전별도,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기록화로 그려진 여러 그림 중에 재미 있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위에 보이는 ‘천조장사전별도’  임진왜란 후 1599년 2월 명의 14만대군이 명나라가 본국으로 귀한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

 한 귀퉁이에 그려진 푸른색 얼굴을 한 사람들입니다. 1592년 왜가 조선을 침략합니다. 명나라는 이 때 조선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원군을 보내게 됩니다. 그 원군에는 포르투칼의 용병 4명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덩치가 크고 피부색도 다른 네명의 인물이 저 아래 그려져 있는데 아마 이들로 추측되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머리카락은 양털처럼 짧고 곱슬인데, 온몸이 모두 검다.”

“일명은 해귀(海鬼)이다. 노란 눈동자에 얼굴빛은 검고 사지와 온몸도 모두 검다. 턱수염과 머리카락은 곱슬머리이고 검은 양모(羊毛)처럼 짧게 꼬부라졌다. 이마는 대머리가 벗겨졌는데 한 필이나 되는 누른 비단을 반도(磻桃)의 형상처럼 서려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바다 밑에 잠수하여 적선(賊船)을 공격할 수가 있고 또 수일 동안 물속에 있으면서 수족(水族)을 잡아먹을 줄 안다. 중원 사람도 보기가 쉽지 않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31년 5월 26일)

천조장사전별도<한국국학진흥원 소장>

명나라가 포르투칼 용병까지 조선으로 파견해주니 참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할까요? 임진왜란이 끝나고 국가가 전쟁의 폐허에서 복구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때, 북방에서 힘을 기른 여진족이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운 다음에 명나라를 공격합니다. 명나라는 “우리가 임진왜란 때 도와줬으니 너희들도 빨리 군대를 보내 우리를 도우라”며 조선에 요청합니다. 말이 좋아 요청이지, 조선으로는 거부할 수 없는 동네 큰형의 명령 비슷한 것이었기에 당시 왕이었던 광해군은 고민을 거듭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강홍립을 대표로 해서 원군을 파병하지만, 곧 후금에 투항하고 조선으로 돌아옵니다. 물론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많은 갑론을박이 오고가고는 하지만 좋게 생각하면 중립외교, 실리외교라고 명명하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배신의 국가가 된 셈이죠. 


 그렇지만 지금도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외교적 줄타기를 해야만 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을 감안하면 광해군과 조선이 참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상황은 400년 후에도 반복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였습니다. 

한국전쟁때 대한민국에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나라가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은 당시 베트남 전쟁 베트남의 통일과정에서 발생한 전쟁으로 1955년~1975년까지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과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이다. 냉전이 가장 극심하던 시절 미국은 공산화 확산을 막기 위해 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수많은 국가들이 전쟁에 참전중이었습니다. 미국은 병력증강을 위해 태국, 대한민국, 호주, 필리핀 등에 전투병 파병을 요청하였고 한국은 미국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어 수많은 젊은이를 남의 나라 전쟁터에 용병으로 내보내게 됩니다. 덥고 낯설기만 한 베트남으로 투입된 한국의 청년 군인들에게 안전한 전쟁터는 없었습니다. 여행을 간 것도, 돈을 벌기 위해 자원해서 간 것이 아닌, 국가에 의해 명령을 받고 파병을 나간 많은 젊은이들은 죽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정당한 국가라면, 이들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해주어야만 하겠죠.

1964년 제1차 베트남 파병 때 파월 장병을 환송하는 부산 시민.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하지만 대한민국은 가난했고, 시민 한사람의 가치를 정당하게 매기지 않았습니다. 군대에서 죽으면 개보다 못하다는 말이 그대로였습니다. 턱 없이 적은 보상금으로 목숨 값이 매겨지고 부상자에게는 노동할 수 없는 환경만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국가명령이라고 하더라도 모두 정당하지는 않았던 시절입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사형선고를 내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형을 집행한 인혁당 사건 1964년 중앙정보부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국가반란을 기도한 남한 내 지하조직인 인민혁명당을 적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발표와 달리 검찰은 증거가 없다며 기소를 거부했고, 후에 고문 사실이 밝혀져 흐지부지 되었던 사건이지만 1972년 유신 이후 국민 저항이 대규모로 일어나자 박정희는 1974년 또다시 민청학련 관계자와 인혁당 재건위를 빌미로 관련자 1천 24명을 연행하여 조사하고 253명을 긴급조치 4호, 국가보안법, 내란 선동 등 죄명으로 비상 보통군법회의에 기소하고 박정희는 사법부에 압력을 가했고 대법원은 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의 사형을 확정한 다음 날 바로 집행했습니다. 

인혁당 사건 공판에서 피고자  13명 모습 (1964.11.24, @경향신문사)<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https://www.kdemo.or.kr/>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세계가 경악했습니다. 스위스의 국제법학자협회는 형이 집행된 4월 9일을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Dark day for the history of jurisdiction)이라고 규정하였다고 합니다.  (ㅠㅠ) 


베트남 파병이나 인혁당 사건 뿐만이 다가 아닙니다. 한국전쟁 당시 17세에서 40세 미만의 민간인 남성들을 강제 징집해서 12만명을 죽게 만든 국민방위군 사건이 또 있습니다. 1.4후퇴 시기, 중공군의 연속적인 공세에 이승만은 만 17세 이상 40세 미만의 민간인 남성들을 징집하여 제2국민병, 국민방위군을 만들었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력이 남쪽으로 철수해야하자 이들도 남쪽으로 후송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방위군 이동 비용으로 약 209억원을 책정했지만 당시 고위 장교들이 국고금과 금수물자를 부정처분하고 횡령하는 바람에 50만명에 이르는 국민방위군은 옷도 음식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한채 이동 중에 굶어서, 얼어서, 다쳐서 죽은이들의 수만 12만명에 이르고 동상으로 인해 손발이 절단된 이들도 2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걸어다니는 시체라고 불렀습니다. 

징집된 국민방위군<출처 : 위키미디어>

 베트남 전쟁도 그러했습니다. 국가와 상관의 부당한 명령과 불법이 행해졌습니다. 이들에 대한 죽음의 정당한 보상뿐만 아니라 국가의 불법행위에 의한 보상권 역시 헌법 29조 1항에 명시되어 있었지만 이 금액이 부담스러웠던 박정희 정권은 ‘국가고갈방지’라는 명목으로 유신헌법 때 2항에 이중 배상 금지조항을 만들어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목숨값을 하찮게 마무리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의 선진국들 아니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어느 국가에서도 군인 등에 대해 이중 배상을 금지하는 규정이 존재하는 곳은 없습니다. 대한민국 시민 한명 한명이 존엄할 수 밖에 없는데 국가 재정이라는 물질적 가치에 종속되어 재단되었던 역사가 있고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국가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최고의 가치라고 전제하고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합니다. 그러하기에 대한민국이 가장 가난하고 아플 때 만들어진 잔인한 이러한 법들이 많이 찾아지고 개선되기를 바래봅니다. 



[곁들여보기]

 -세계인권선언

제3조 모든 사람은 자기 생명을 지킬 권리, 자유를 누릴 권리, 그리고 자신의 안전을 지킬 권리가 있다.

제4조  어느 누구도 노예가 되거나 타인에게 예속된 상태에 놓여서는 안 된다. 노예제도와 노예매매는 어떤 형태로든 일절 금지한다.

제7조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차별 없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제8조 모든 사람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당했을 때, 해당 국가 법원에 의해 효과적으로 구제받을 권리가 있다.

 - 대한민국 헌법 제29조 : ①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공무원 자신의 책임은 면제되지 아니한다.

②군인ㆍ군무원ㆍ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ㆍ훈련등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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