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내가 치맨줄 알아? 내가 누구냐면 말이야.... (노인인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우리 할머니가 말이야. 그 당시에 검찰총장. 그래 요즘으로 치면 그런거 하신분이야. 여자가 말이야. 나도 지금 보통사람인줄 알아? 내가 낸 책이 몇권인줄 알아? 내가 분하고 억울해서 말이야. 그 책 이름이 뭔줄 알아? 녹색혁명과 코로나야. 내가 88년에 그 책을 썼다 이거야. 그런데 이게 지금 내 책을 출판사에서 꿀꺽하고 말이야. 그 내가 태어날 때 이야기를 또 하자면..."
오늘도 그는 상담 시작 시간에 맞추어 정확히 전화기를 들고 울분을 쏟아 내다 다시 욕설을 섞어 내뱉는다. 겨우 진정한 듯 하면 다시 '자 처음부터 다시'를 차분히 이어나가는 식의 토로가 반복된다. 지금부터는 열두번 쯤 들어온 그의 탄생신화부터 시작되는 인생 구술사가 시작된다.
처음 상담이라는 업무를 시작했을 때, 많은 이들의 우려와 걱정과 다르게 이 일이 감정노동이라기보다는 흥미로운 세상을 늘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의 이야기도 맥락이 전혀 없긴하지만, 듣다 보면 신기하게 빠져드는 흥미진진한 지점이 중간중간 있다. 다행이다.
그의 일생 구술사를 BGM 삼아 그의 열렬한 주장에 공감해보기로 작정을 하고 내용을 정리해보기로 한다.
그의 할머니는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검찰총장(지금의 명칭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을 하셨던 분이라고 한다. 흥미롭다. 우선 이 어마어마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의 나이가 먼저 파악이 되어야 한다. 그와의 대화 중에 '내가 전쟁중에 소년병으로'라는 내용을 근거로 해볼 때 1950년을 기준으로 그의 나이가 최소 13세라고 가정을 한다면 1930년대 후반 태생이실테다. 그의 나이가 짐작이 되자 마음 한 켠으로는 어르신이 참 오래 건강하게 사시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일찍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가 살짝 그립기도 했다. 우선, 여든이 넘은 분의 할머니이니, 구한말이라 스믈전에 시집, 장가 갔다는 가정 하에 살아 계신다면 올해 한 120살 정도 드셨겠다 추측이 된다. 그 당시. 정말 구한말 한일늑약도 체결되지 않은 그 시절, 검찰의 기능을 하는 기관이.... 사헌부였던가. 여성이 사헌부의 부장? 사헌부대장? 갑자기 역사적실체 앞에서 혼돈이 느껴져 더이상 이에 대한 고민은 접어두기로 한다. 어렵다.
그러면 그의 주장대로 1988년 출판했다는 '녹색혁명과 코로나'로 관심을 돌려보기로 했다. 자연보호헌장을 잘 외워서 초등, 아니 국민학교 때 상도 받았고, 환경보호활동을 잘해 생활기록부에 칭찬도 한 두 줄 있었던 당사자로서 환경에 관심이 가는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나는 이 분의 주장이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미친노인네', 혹은 '치매' 라고 매도하기에는 유명한 정치인의 여러 당황스러운 선거공약들이 오버랩되면서 '택도 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치부하기 곤란해졌다.
1980년대를 전후해 환경운동이 시작되었으니까, 찾아보면 영 근거가 없을법 하지 않았다. 81년 한국 공해문제 연구소가 출범했고, 87년 이후 수많은 시민사회단체가 결성되며 환경운동도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로 자리잡았음을 감안해볼 수도 있다. 특히 1988년 올림픽 성화가 점화되던 날 불에 타 떨어지던 흰 비둘기들을 보며, 동물권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국민들과 특히 어린이들이 고민할 지점은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이 들자 그 당시 지금의 내 나이였던 그의 분노, 환경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은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 의해 그가 관심을 가졌다 하더라도, 코로나는 어떻게 공감해야할지 막막했다. 코로나라는 단어를 그 시대와 아무리 연계지어보고 싶었지만, 내 지식적 배경의 한계안에서는 맥주브랜드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시절이 좋아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이들도 심부름이라는 이름하에 술과 담배를 기꺼이 살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88올림픽 경기중계를 보면서, 아빠가 쥐어주던 오백원짜리 지폐를 들고 신나게 동네 점빵으로 뛰어가 병맥주를 사들고 돌아오곤 했는데, 그 당시 점빵 맥주의 이름도 코로나는 아닌것으로 기억된다마는, 올림픽이라는 전세계인의 축제를 두고 멕시코의 코로나맥주가 한국으로 상륙했다고 가정해보기로 한다. 환경과 연계해보기에는 맥주병 재활용 정도 밖에 생각나지는 않지만, 녹색혁명과 영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북방한계점을 훌쩍 건너 뛰어 타이가와 툰드라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사고의 끝은 오십여분간 그의 일대기 구술이 마무리되며 함께 종료되었다.
"내 이야기 다 들었지? 그러니까 오늘 신청하는 자료 좀 보내줘"
"저번에 그건 보내드렸었잖아요."
"안받았어!"
"아니 등기확인하신 자료가 여기 있는데...."
"내가 치맨줄 알아? 응 내가 책도 쓴 사람이고 내가 누구냐면 말이야.."
다시 그의 인생구술사가 시작되려던 시점에 다행히 나의 어리석은 답변에 대해 급한 반성을 하며 황급히 그의 문장과 문장 사이의 아주 조그마한 빈틈을 찾아 헤집고 들어가 답변한다.
"네, 보내드릴게요~"
왼손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그가 지난주에 문서를 수령했다고 자필 서명한 내용증명서를 상담 파일첩에 조심스럽게 끼워 넣는다.
'그래 치매는 아니실거야.... 120년 훨씬 전부터 기억을 다 하시잖아..... 그래 그냥 전화를 하시고 싶었을거야.'
덧붙히는 글 . 대한민국은 2000년 고령화 사회 진입 이후 2017년 전체인구의 14%이상이 노인 인구에 해당하는 고령사회로 진입, 2026년에는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는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고령화 실무그룹 의장직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