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토룬, 폴란드, 자유
20세기를 온전히 살다 간 모더니즘 시인 김광균의 '추일서정'의 한 구절입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생략)
시에 나타나는 '도룬'은 폴란드의 토룬지역을 말하고 있습니다.
김광균이 그 시절 폴란드를 다녀 왔는지는 알수는 없으나, 시를 그림처럼 그려내던 김광균에게 토론은 쓸쓸하고 고독한 도시였던 듯 합니다.
반면 나에게 폴란드의 오래된 도시 토룬은 너무나 예쁘고 밝은 도시였습니다. 유럽의 도시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벽돌이 깔린 오래된 도로 주변으로 몇백년은 족히 되고도 남았을만한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만큼 중세유적이 정비가 잘 되어 있는 도시이기도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도시는 '코페르니쿠스'를 빼면 존재감이 훌쩍 사라지는 곳입니다.
토룬으로 들어가서 처음 마주하는 아파트에도 코페르니쿠스의 그림이 떡하니 그려져 있습니다. 기념품 가게마다 지동설과 관련한 소품들이 채워져 있습니다. 대부분, 아니 세상 모두가 '하늘이 돈다' 고 이야기할 때 혼자 '아니야. 돌고 있는 것은 지구야'라고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가 나고 자란 도시가 바로 토룬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천동설을 주장하고 있는 가톨릭의 사제이기도 했습니다. 종교와 학문이 철저하게 분리되지 않았던 당시에 성서를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러한 사제들은 학문적 자료를 접할 기회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자나 교수가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그런 학자 신부님이었을 겁니다.
당시 가톨릭은 학문이건 예술이건 탐구하고 표현하는 것에 관대하지 않았습니다. 종교가 생활이었고, 종교를 중심으로 음악, 미술, 문학 하물며 철학까지 연구되고 있었습니다. 종교에 어긋나는 예술활동이나 학문연구는 바로 이단으로 몰려 비난받고 심하게는 파문까지도 강행하던 사회였습니다.
종교에서 파문당한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 수 있지만, 그 당시 종교에서 파문을 당한다는 것은 공동체에서 분리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거나 회사에서 강제퇴사를 당하는 정도의 형벌적 요소가 강했습니다.
13세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했고, 한자동맹에 가입하며 무역과 상업이 활발했던 아름다운 중세도시 토룬에서 역시 종교에 반해 자유롭게 학문을 탐구하고 그에 대한 주장이 금기시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이론을 연구하고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라는 지금으로 치면 연구보고서까지 완성했지만 그 출간을 40여년이나 미룬 것도 그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코페르니쿠스는 죽기 직전 책을 출간했고 그 뒤로도 금서로 지정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만이었을까요? 수많은 학문의 탐구는 아직도 다양한 이유로 제한당하고 있습니다. 수백년전 그 이유가 종교였다면, 지금은 정치적 이유로 혹은 사상적인 이유로 탐구가 제한당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십년전 대한민국에서도 사회주의 상을 가진 피카소 같은 예술가들에 대한 연구는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끊임없는 호기심은 학문의 탐구로 이어지고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탐구거리들이 사람과 시대를 거쳐가며 과학의 정설이 되는 것을 보면 참 의미 없는 탄압이었구나 싶기도 합니다.
코페르니쿠스가 극복할 수 없었던 종교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용기내어 기록한 지동설은 그 후 100여년 뒤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에게로 그리고 또 100여년 뒤에는 영국의 아이작 뉴턴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우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제의 검열이 엄혹했던 시기와 좌우 이념의 대립으로 정치가 예술과 학문을 통제하던 한국전쟁전후를 창작으로 살아내던 김광균이 특히나 비판했던 것이 바로 이념에 지배받는 혹은 이념을 외면한 문학이었다고 합니다.
학문과 예술, 본연의 아름다움과 즐거움만을 추구하기 위한 인간의 행위가 온전히 국가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폴란드의 작고 오래된 도시 토룬에서 김광균의 시에서 화자가 느꼈을 것이라 생각되는 외로움과 고독은 코페르니쿠스와 평생을 함께한 고통이었지 않았을까요?
참조 : 현대문학 : 중간파 시 논쟁과 김광균의 시론
Centrist Poetic Debates and Kim Kwang-gyun`s Poetics
박민규 ( Min Kyu Park )
배달말학회
2012.06
배달말
50권
145-172(28p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