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프라하, 체코, 사상의 자유
1980년대의 유년기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외국은 쉽게 가기 힘든 곳이죠. 거기다 공산 국가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던 곳은 더욱 그러하죠. 분단과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공산’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두려움이 우리 몸에 내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체코 프라하 공항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서도 그랬습니다. 이미 공산 국가의 아버지격인 소련은 붕괴된 지 오래고, 동구권 공산 국가들 역시 자유주의 체제로 편입된지 30년인데 말입니다.
도착한 프라하의 바츨라프 공항(Vaclav Havel Airport Prague) 역시 머릿속에 ‘공산 국가’라는 단어를 가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 중의 하나로 다가왔습니다. 1980년대 어느 지점의 무채색 페인트벽과 단조로운 장식 하나 없는 무미건조한 인테리어와 조명이 이곳은 동구권 공산 국가였음을 인식하게 해주었죠.
무채색 페인트 벽을 돌아나가면, 조명을 등지고 비밀경찰들이 걸어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입국심사대까지 가기도 전에 친절한 한글 안내판을 수도 없이 만나고, 슬리퍼에 선글라스를 쓴 인종도, 국가도 다양한 관광객들이 내뱉는 수많은 언어가 공중에 떠다닙니다. 비행기 착륙 직전까지 가졌던 막연한 ‘공산’에 대한 긴장감이 순식간에 무력화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체코 프라하는 과거의 공산주의라는 이미지에 걸맞지 않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구소련의 영향권에 있던 국가였던지라, 건물이며 구조물은 최대한 단조롭고 무채색 일색이었지만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순간 눈앞으로 펼쳐지는 천년의 역사가 스며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하루 종일 걸어도 절대 지칠 것 같지 않을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지금도 비만 오면 입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가고일이라는 전설의 괴물이 떡하니 기둥에 박혀 있는 비투스성을 둘러보고 연금술사들의 희망과 허망된 꿈이 교차되어 박제된 황금소로를 지나면 자본주의 상징과 같은 스타벅스 매장이 나타납니다. 그곳에서 그림엽서 사진처럼 펼쳐진 프라하의 상징과 같은 붉은 지붕의 시가지를 가장 잘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프라하성에서 내려와 트램을 타고 동화 속 백조를 현실로 만날 수 있는 블타바강을 가로지르는 까를교 앞에서 내립니다.
15세기에 만들어진 천문 시계가 아직도 시간을 알리고, 모차르트가 돈지오반니를 초연한 에스테이트 극장과 ‘백조의 호수’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는 고풍스러운 국립극장을 지나면서 길거리 상점에서 커다란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들고, ‘카프카’와 ‘알폰소 무하’의 흔적을 마주하며 걷다 보면 이보다 더 낭만적일 수 없는 도시로 빠져듭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프라하를 더욱 낭만적으로 만드는 익숙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프라하의 봄’입니다. 사실은 ‘프라하의 봄’은 결코 낭만적이거나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1968년 자유주의를 갈망했던 체코 사람들에게 소련은 가혹했습니다. 겨우 인구 1,000만 명 도시 프라하를 20만 병력과 탱크를 동원해 밀어닥쳤던 역사입니다. 그렇게 잔혹한 봄을 보내고 자유화 운동을 주도했던 대부분의 인물들은 처형당했고 약 50여만 명이 숙청 혹은 탄압당했다고 합니다.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각국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과 함께 천문 시계탑의 알림 인형을 구경했던 그 바츨라프 광장은 소련 침략에 분노하며 프라하의 자유를 외쳤던 청년들이 분신하며 죽어갔던 곳입니다. 그리고 그 광장의 끝에는 1990년대 공산주의 정부가 사라질 때까지 함께 했던 비밀경찰의 아지트로 사용했던 건물이 있습니다. 지금 그곳의 명칭은 ‘공산주의 박물관’입니다.
‘공산’이라는 글자만 어디 박혀도 큰일 날 것 같은 대한민국에서 온 이방인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장소였습니다. 우리 돈으로 1만 5,000원 정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는 곳 입니다. 1948년부터 1990년까지 지속된 공산주의 정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집단 체조, 집단 수확량 하물며 사형수 숫자까지 획일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했던 체코 공산당 시절의 기록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개인의 모든 자유행위는 통제되었습니다. 언론과 출판, 개인의 사상과 양심까지 제한당하고 감시당했습니다. 자유주의 국가와 체코의 경계에는 고압의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으로 가로막아 이동마저 통제되었던 엄혹한 시절의 기록을 만날 수 있습니다. 관람을 다 마치고 나올 때쯤이면 공산주의라는 사상에 대해 역사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이렇게 살았던 적 있었어. 그때 공산주의였어. 너희들 한 번 체험해볼래?“하고 돈을 받고 보여주는 체험 박물관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서 0유로짜리 지폐가 발행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 기분이었습니다. 공산주의가 돈을 받고 구경시켜주는 동물원의 구경거리처럼 박제되어 버린 것이죠. 참 허망합니다. 0유로 지폐의 마르크스와 자본으로 운영되는 박물관의 박제된 공산주의라니요. ’공산‘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문받고 처형당하고, 하물며 그 역사의 아픔이 지금도 진행 중인 곳도 있는데 말입니다.
프라하의 공산주의 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단어가 ”꿈, 현실, 악몽“입니다. 우리가 꾸는 꿈을 현실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다면 그 세상이 바로 악몽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