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테를지, 몽골, 환경권
몽골은 출장지였습니다. ‘글로벌 기업의 환경권 침해’를 주제로 한 출장이었죠. 한국에서 몽골까지는 비행기로 3시간이 소요됩니다.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라지만, 노선은 하나뿐일 정도로 체감은 먼 나라입니다. 아마 사회주의 역사를 가진 국가이기 때문에 수교도 늦어지고 하다 보니 그랬을 겁니다. 사실 우리는 아직 국가명이 ‘몽고’이냐 ‘몽골’이냐를 두고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몽골(Mongolia)은 아시아 중앙 내륙 국가입니다. 바다가 하나도 없는 육지로만 이루어진 나라죠. 13세기 초 그 유명한 징기스칸이 건설했던 대제국의 찬란한 기억을 품고 있는 나라죠. 3시간이지만, 국적기여서 기내식까지 서둘러 먹고 도착한 한밤중의 울란바토르 공항은 징기스칸의 대제국의 역사를 품은 몽골의 국제공항치고는 너무나 소박했습니다.
공항명이 대제국의 건설자이자 정복자였던 ‘징기스칸’(Chinggis Khaan International Airport)이었지만 입국 게이트 하나, 출국 게이트 하나가 이 국제공항의 전부였습니다. 공항 밖에도 택시로 유추되는 자가용 몇 대와 우리 일행을 태우러 온 승합차가 전부였습니다. 9월 마지막 날의 올란바토르(Ulaanbaatar)는 한국의 한겨울만큼 매서운 대륙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몽골 환경부, 국가인권기구의 담당자를 면담하고 수많은 환경 관련 NGO를 만나는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일정을 도와주던 몽골인권기구 직원 툴(Tuul)이라는 친구가 ‘테를지’(Gorkhi-Terelj National Park)라는 곳을 추천했습니다. 환경권이 21세기에 왜 이렇게 거대한 인권의 가치가 되었는지 실감하려면 오염된 곳, 파괴된 곳을 보는 것보다 테를지를 가보면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다음날 일정을 조정해서 그곳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2시간을 차를 타고 이동하면 ‘테를지’에 다다릅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곳입니다. 가는 길은 90% 이상이 비포장 상태입니다. 지도상에는 1시간 30여 분 정도면 도착한다고 되어 있지만, 가는 길목마다 만나는 소 떼나 양 떼 무리 때문에 잠시 멈춰 서 있다 보니 2시간이 넘어 도착을 하게 됩니다. 징기스칸의 나라이기에 테를지로 가는 곳곳에서 징기스칸을 수도 없이 만날 수 있습니다. 산 경사면의 초상에서도 그리고 황량한 초원 가운데 우뚝 선 그의 동상까지 말입니다.
울란바토르를 감싸고 있던 매쾨한 매연의 냄새가 사라질 때쯤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테를지는 도시라기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지역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통 도시라고 이야기하는 곳은 건물과 차량이 어우러져 있고 그곳에서 일정한 패턴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데요. 테를지의 모습은 자연 그대로였습니다.
얕지만 맑은 강이 중간중간 맥을 이어나가고 있고, 길 중간중간 양과 소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며 몇 남지 않은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게르’라고 부르는 전통 가옥이 드문드문 보이고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코에 솜을 막은 채 한겨울 추위에도 외투 하나 없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습니다(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건조한 내륙지역이다 보니 아이들이 코피를 자주 흘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머무르기로 한 게르 주인이 기르는 말을 타고 테를지를 둘러보았습니다. 몇십년 아니 몇백년은 그 자리에 서 있었을 것 같은 잣나무가 병풍처럼 우리가 있는 그곳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는 원시림에 살아 본 적이 없어서일까요? 공기청정기를 필수 가전으로 가지고 사는 우리에게 맞게 표현하자면, 집 내부 사방에 공기청정기를 수십개 쯤 돌릴 때의 청정함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감동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강과 하늘, 그리고 공기를 품은 이 테를지 안에서도 사람들이 삶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밤이 된 테를지는 낮에 만난 감동과 비교할 수 없는 벅참으로 다가왔습니다. 평생토록 밤하늘은 검은색이라고 알고 살아왔습니다만, 그날 마주한 밤하늘은 은색이었습니다. 태고의 자연이 선사한 하늘은 수많은 별로 가득한 은박과 같은 모양이었던 거죠.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불빛과 매연이 그 색을 가렸을 뿐이었죠.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어둠이라는 상투적 표현 말고는 서술할 수 없는 어둠 중간중간에 말이 서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사람만한 개가 눈에서 빛을 뿜어내기도 합니다. 밤의 공기는 더욱 청량했습니다.
밤새 게르 중간에 불을 지피며 게르의 주인 부부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당연히 인터넷도 안되니 밤새 사람들이 나눌 거라고는 이야기와 팔씨름 같은 놀이입니다. 한국과 몽골의 국가대항 팔씨름을 보며 몽골의 잣을 까서 몽골의 전통주를 곁들였습니다. 몽골의 잣은 우리 잣과 다르게 땅콩처럼 하나하나 까서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까먹고 남은 잣 껍데기를 화롯불에 던져 넣으려니 주인이 제지합니다. “몽골에서 불은 신성한 것입니다. 그런 쓰레기를 이런 곳에 넣고 태우면 안 됩니다. 내일 땅에 묻을 겁니다” 친절한 안내였지만 죄송함이 밀려왔습니다.
몽골 일정 동안, 수많은 환경단체와 정부 관계자를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은 환경 파괴의 실상이었습니다. 금을 세공하는 글로벌 기업이 몽골의 금을 채취하면서 금광석에서 금을 분리해내기 위해 수은을 마구 사용했고, 그 수은은 유목민의 식수원으로 무단 방류되어 사람들이 병들어 갔습니다. 석탄을 캐내기 위해 마구잡이로 파헤친 땅에서 식물은 사라지고 그 풀을 먹고 사는 말과 양은 굶어가고, 유목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업이 환경을 파괴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환경을 지켜야할 의무를 기업에게 부과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수많은 논거를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었던 일정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그 어떤 법적 규제와 국제 협약을 문서로 만들어 보내는 것 보다, 툴의 말처럼 자연이 그대로 사람을 품는 테를지에서 하룻밤 은빛으로 빛나는 밤하늘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논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낯선 곳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테를지의 깊은 밤하늘은 누구에게든 한 번은 건네주고픈 경험이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지구의, 세상의 아름다움이 이런 것이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