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의 파도 위에서 내 노를 젓는 법

모두가 '어디'로 갈 때, 나는 '왜'를 묻기로 했다

by 뚠뚠이

돌아보면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기보다, 평온해 보이는 길을 택했던 것 같다. 첫 인턴을 시작할 때도 내 적성보다는 안정적이라는 공기업의 타이틀이 먼저 들어왔었고, 그 이후 국제기구와 은행을 거치며 쌓아온 이력들 역시, 사실은 나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이라기보다 사회가 정해준 정답에 나를 끼워 맞추는 과정에 가까웠다.


내가 머물던 세계는 지독하리만큼 보수적이었고, 보여지는 체면이 곧 실력이 되는 곳이었다. 매년 수십억의 세금이 들어가는 화려한 국제 포럼과 컨퍼런스들. 최고급 호텔의 대연회장, 은은한 조명 아래 샴페인 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세련된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내 안의 의문도 함께 자라났다. '이 막대한 예산과 화려한 의전이 과연 시민들에게 어떤 실효성이 있을까? 그저 높은 직위에 있는 이들의 가슴에 달아줄, 또 하나의 빛나는 훈장 같은 건 아닐까?'


이직 후 인수합병 업무를 하며 준비했던 수많은 VIP 론칭 파티에서도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는 그 현장에서, 나는 축하의 인사를 건네면서도 지독한 소외감을 느꼈다. 남들의 안목에 맞춘 삶은 겉보기에 화려했으나, 그 속에 내 주관은 없었다. 줏대 없이 타인의 시선에 내 인생을 대여해 준 대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이었다.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는 내가 느꼈던 이 막막함을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위로한다. 그는 우리 앞에 놓인 고통을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더 큰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그 감정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내가 겪은 무기력은 내 성격이 예민해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메커니즘 안에 내재된 모순에서 야기된 공적인 문제였던 셈이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우리는 구조의 모순을 나의 부적응으로 오해하며 스스로를 끝없이 갉아먹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답 맞히기에만 몰두하느라, "왜?"라고 묻는 비판적인 사고를 잃어가고 있다. 교육도, 기업도, 트렌드도 오로지 효율과 성과만을 외친다. 그 흐름에 휩쓸려 줏대 없이 살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거대한 사회적 시기와 벽 앞에 서게 된다. 나 역시 그 벽에 부딪혀 나 자신을 잃어갔던 것은 아닐까.


결국 밀스가 말한 상상력이란, 화려한 파티장의 조명을 끄고 그 뒤에 숨겨진 구조를 똑바로 직시하는 용기다. 내 삶이 어떤 거대한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는지 인식할 때, 비로소 남의 박수가 아닌 나의 기준이 바로 서기 시작한다.


나는 아직도 거대한 파도 속에서 휩쓸리며 산다. 현재 공부하는 이 분야조차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깊은 회의감이 불쑥 찾아와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질문을 던지며 멈추지 않으려 한다.


트렌드는 계절처럼 오고 가지만, 그 공허한 파티장에서 나를 깨웠던 건 결국 ‘이건 아니지 않나’라고 묻던 나의 작은 생각이였다. 이제는 쳇바퀴처럼 느껴지는 일상이 사실은 내가 멈춰 세울 수 있는 구조임을 안다. 남들이 세워둔 화려하고 견고한 벽을 넘어, 조금 투박하더라도 진짜 내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보려 한다. 쳇바퀴를 멈추는 힘은 결국 이게 정말 최선인가라고 묻는 나의 작은 의심에서 시작될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가려질 순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