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영화들 (1부)

by 한대웅

보통의 결산이라 하면은 연말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저는 지독히도 게으릅니다. 시기가 지나 아쉽지만, 그럼에도 제가 작년 극장에서 본 영화들 중 너무 좋았던 영화들 10개를 선정하고자 합니다. 이 글이 누구에게 닿을 진 모르겠지만, 혹여나 지나가다가 이 글을 우연찮게 발견하여 글을 읽고 공감하거나 혹은 이 글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어 흥미가 느껴지는 영화가 생긴다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 같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연출하는 영화가 누군가의 블로그의 올해의 영화로 선정되면 재밌을 거 같네요)


*본 작의 10편에는 순위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본 작들은 2025년 1월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개봉한 영화들입니다.

*본문에는 없지만 올해 정말 재밌게 보았던 영화들의 명단:

어쩔수가없다, 마스터마인드, 썬더볼츠, 나이브스아웃:글래스어니언, 드래곤길들이기(실사), 컴패니언, 얼굴,

더러닝맨, 하우스오브다이너마이트, f1더 무비, 브루탈리스트, 노스페라투 , 아임스틸히어, 콘클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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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터리얼리스트 - 셀린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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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영화가 처음으로 등장해서 읭? 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됩니다. 관람객이나 평론가 모두 평은 그다지 좋지 않았고, 그녀의 전작인 패스트 라이브즈와 비교되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를 통해 내가 왜 셀린 송 감독을 좋아하는지를 다시 한 번 인식하게 해준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목부터가 속물적인, 정말 속물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에는, 여전히 셀린 송 특유의 휴머니즘이 속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결혼을 할까?”

“글쎄… 아마 간절하고, 아직 희망에 가득 차 있으니까.”


이 영화는 결혼을 낭만적으로 그리기보다는, 불안하고 계산적인 선택으로 바라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선택을 비웃지는 않습니다. 속물적으로 보이는 순간들 안에도, 결국 누군가는 믿고 싶어 하고, 기대하고 싶어 하는 감정을 끝내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두고 ‘가난한 사람의 포르노’라고 비웃기도 하지만, 시니컬한 태도만이 가득한 현대사회 속에서 이런 이야기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 역시 이 영화가 완성도가 아주 높다거나 모두에게 선뜻 추천할 작품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망설여집니다. 다만 셀린 송이라는 감독이 자본주의나 특정 계층을 비판할 수 있는 충분히 좋은 소재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흔히 말하는 ‘머리가 텅텅 빈 사람들’의 낭만에 굳이 잔을 들어 올리는 이 시선만큼은 분명히 가산점을 주고 싶었습니다.


별개로 필름으로 촬영된 영상은 정말 아름답고, 주제곡들도 꽤 환상적입니다. 배우들 역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얼굴들이라 이런 부분에서는 자연스럽게 점수를 더 주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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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저 사고였을 뿐 - 자파르 파나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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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놀랍던 점은 영화 외부에서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가 전세계 최초 개봉했다라는 점입니다. 보통 이런 영화는 현지 개봉하고 그 다음년 하반기에 개봉하는데 이 영환 최초 개봉이라니.... 배급사분들 감사합니다...


저 같은 경우 이 영화가 제가 보는 첫번째 자파르 파나히의 영화였습니다. 그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었기에, 기대를 아주 굉장히 매우 정말 진짜 대박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본 첫 영화의 감상평은 그야말로 엄청났습니다.. 사실 초반에는 이게 뭐지 하는 적막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영화의 몰입하며, 입 벌리고 있는 저의 모습이 생생하더군요. 이 영화는 이란의 역사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제가 이 글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자칫하면 평면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를 끝까지 놓치지 않게 만드는, 감독의 연출력입니다. 원테이크와, 원테이크처럼 보이게 만드는 촬영을 통해 영화는 관객을 물러설 틈 없이 붙잡아 둡니다. 카메라는 멈추지 않고, 인물과 함께 움직이며, 관객에게 생각할 여유 대신 계속해서 보게 만드는 선택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에서 ‘눈’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여러 장애물로 인해 눈을 가리거나,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합니다. 혹은 분명히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보는 것과 아는 것 사이의 간극, 시선은 있지만 인식은 부재한 상태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이 반복은 영화가 끝까지 밀어붙이는 감각으로 작용합니다.


감각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것을 시청을 통해 느끼게 하는 감독의 연출력 정말이지 대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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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프랑켄슈타인 - 기예르모 델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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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소설이 영화화 된다는 사실만큼 흥분되는 소식은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 그 좋아하는 소설이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들로 제작이 된다는 것은 그 사실을 더욱 기쁘게 만들죠. 저에겐 올해 프랑켄슈타인이 딱 그런 영화였습니다. 안그래도 호감을 가지고 극장으로 향했던 저는 너무나도 만족스럽게 극장 밖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이제는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서사를 중심에 둡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빛을 잃지 않는 이유는, 이 익숙한 구조를 감정의 반복이 아닌 시각적 쾌감과 배우의 힘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입니다. 화려하고 과감한 미장센은 이 세계를 낭만적으로 포장하고, 그 중심에서 제이콥 엘로디는 피조물이라는 존재가 지닌 불안과 순수를 동시에 설득력 있게 구현해냅니다.

(크리틱스초이스에서 원배틀애프터어나더의 숀펜과 베네치오델토로를 이긴 것이 이변이여도 논란이 아니였던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작품은 감독의 전작인 피노키오였습니다. 이 영화는 어쩌면 프랑켄슈타인의 정신적인 후속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두 영화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피조물’이라는 존재를 주인공으로 삼아, 세상에 홀로 던져진 이후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내기 때문입니다. 만들어졌다는 사실 그 자체가 결핍이 되는 존재, 그리고 그 결핍을 통해 비로소 인간에 가까워지는 여정은 두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괴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되고 싶어 했던 존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원작이 던졌던 질문을 충실히 이어받으면서도, 감독 특유의 시선과 미장센을 통해 이를 현대적인 성장 서사로 재구성해낸 점에서, 이 영화는 충분히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 가장 아쉬운 점은 넷플릭스라서 극장에 걸린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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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플로우 - 긴츠 질발로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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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들 중 가장 많은 추억이 쌓인 작품입니다. 2024년 부국제에서 먼저 관람했고, 2025년 여름에는 감독을 실제로 만나 사인을 받았던 기억도 남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런 사적인 감정이 선정에 포함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일정 부분 지분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네 번이나 관람했습니다. 사적인 감정만으로 네 번을 보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고, 결국 이 영화가 그만한 작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인 것이 편한 고양이가 대홍수로 집을 잃게 되고, 다른 동물들과 함께 연대하며 살아남는 이야기인 플로우는 요즘처럼 팍팍한 시대와 묘하게 맞닿아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각자 혼자 버티는 것이 당연해진 시대에, 이 영화는 생존조차 혼자서는 불가능한 순간을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대사가 없는 무성영화라는 점 또한 플로우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 동물들이 끝까지 인간처럼 인의화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야기의 끝에 이르러 서로를 선택하고, 연대함으로써 가장 인간적인 특징을 획득합니다. 말이 없기에 더 분명해지는 감정, 설명이 없기에 더 또렷해지는 선택이 이 영화의 힘입니다.


감독 역시 과거에는 혼자서 영화를 만들어오다가, 이번 작품을 계기로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경험을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영화 안의 서사와 영화 밖의 제작 과정이 나란히 겹쳐지는 이 지점에서, 플로우는 더욱 선명해집니다. 결국 이 영화가 건네는 말은 단순합니다.

혼자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결국 함께 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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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 폴 토마스 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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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대부분의 영화팬들이 올해 개봉작 중 1위로 꼽고 실제로 오스카상 수상 유력후보인 원배틀애프터어나더입니다. 대부분의 영화팬들이 그렇듯 저 또한 이 영화가 올해 1위에 근접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 또한 엄청난 시의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촬영입니다. 비스타비전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상업 영화 최초로 풀아이맥스 비율로 일컫어지는 1.43:1 비율을 영화 전체 내내로 가져갑니다. 일반관에서는 이 영화가 어떻게 보일 진 모르겠지만, 용산아이맥스를 통해 이 영화를 관람한 저는 정말 그야말로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의 재현을 화면화한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농담조로 말하자면 용산아이맥스에 이 영화를 본 것이 인생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적 체험이 엄청 났습니다.


이 영화가 저에게 놀라움을 주었던 것 다른 부분에 있었습니다. 영화를 시선의 예술이라고 하는 말을 들어본 적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에 대한 방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표적인 카체이싱 장면부터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을 다른 시선을 통해 정확히 말하면 다른 앵글을 통해 보여줍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영화 중반부, 윌라가 수도원에 숨어 있다가 발각되는 시퀀스였습니다. 군인들이 윌라를 포획하는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긴박한 추격이나 폭력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인물과 공간의 위치를 끝까지 유지한 채, 시선이 이동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따라갑니다. 이 선택 덕분에 관객은 사건을 보는 위치에 머무르기보다는, 마치 그 현장에 함께 노출된 존재처럼 상황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보다, 어디에서 바라볼 것인가가 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사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거창한 의미나 해석을 따로 붙이지 않더라도, 영화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러닝타임 내내 긴장을 놓치지 않고, 장면 하나하나가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들며 관객을 끝까지 끌고 갑니다. 거대한 화면과 독특한 시선이 주는 체험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는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보셔도 됩니다. 그냥 극장에 앉아서, 화면에 몸을 맡기고 두 시간 반을 보내기만 해도 충분히 값어치를 하는 영화입니다. 가능하다면 큰 스크린에서, 특히 아이맥스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올해 극장에서 볼 영화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잘 만들었고, 크고, 무엇보다 재미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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