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억하는 태도

28년후를 통해 보는 죽음과 기억

by 한대웅

현대의 죽음은 너무 흔하고 가볍게 소비된다. 하지만 그런 세상일수록 우리는 왜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되묻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 스파이크의 여정은 분노 바이러스로 폐허가 된 세상 속에서, 이 물음에 대한 고요한 대답이며, 고대 라틴어 경구인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와 맞닿아 있다.


28년 후의 세계는 죽음이 일상이 된 곳이다. 감염자들의 위협은 삶의 유한성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는 안전한 섬을 떠나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위험천만한 본토로 이동한다.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과거에 의사였다고 알려진 켈슨 박사를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싸우며,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넘나든다. 이 과정에서 스파이크는 감염자들로부터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동시에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인간적인 유대감의 소중함을 배운다. 죽음이 드리운 세상에서, 스파이크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스스로 찾아 나선다.

영화 속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켈슨 박사라는 독특한 인물과 그가 만들어낸 뼈의 사원이다. 작중 켈슨 박사는 대외적으로 정신이 나갔다고 평가받는다. 스파이크의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은 켈슨 박사를 그를 최대한 피하라고 경고할 정도이다. 정신 나갔다고 알려진 그 박사는 문자 그대로 인간의 유골을 재료 삼아 뼈의 사원을 만든다. 그의 사원은 수많은 죽은 자들의 뼈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소름 끼치고 광기 어린 행위로 비춰진다.


영화 후반부, 스파이크가 켈슨 박사를 만나면서 켈슨이 뼈의 사원에 부여한 의미가 드러난다. 그는 뼈로 사원을 만드는 행위를 통해 죽은 자들의 존재를 잊지 않고, 그들의 존엄을 기리며, 동시에 그 죽음 위에서 살아있는 자들이 삶의 의미를 찾기를 바라는 역설적인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스파이크는 이 기묘한 뼈의 사원에서, 모두가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세상에서도 죽음의 엄숙함을 다시금 온몸으로 느낀다. 이곳은 죽은 이들의 유골을 바치며 사라짐을 되새기는 곳이다. 영화의 결말부 그는 결국 어머니의 싸늘한 유골을 두 손에 들고 사원 가장 꼭대기를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유골의 무게는 어머니의 존재, 그와 함께한 추억들, 그리고 사라진 모든 순간의 무게로 그의 어깨를 짓누른다.

정상에 다다른 스파이크는 어머니의 유골을 가장 높은 곳에 조심스레 놓는다.

”메멘토 모리“


그는 누군가를 기억하는 행동이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됨을 깨닫는다.

자신이 살아가야 할 까닭은 곧 어머니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의 앞날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며, 어머니의 유골이 품은 침묵 속에서, 스파이크는 자신이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음을 느낀다. 그는 부모의 기억이자, 부모의 삶 그 자체이다, 기묘한 사원의 뼈들이 속삭이는 사라짐 속에서, 스파이크는 역설적으로 삶을 지탱하는 힘을 찾는다.

스파이크는 분노 바이러스 이후 완전히 파괴된 세상에서 태어나 성장한, 이른바 멸망한 세대의 아이다. 그에게 과거 문명의 영광은 존재하지 않으며, 삶은 곧 생존과 투쟁의 연속이다.

생존의 기술은 그를 살아남게 하지만, 죽음을 마주한 자의 연민과 이해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죽음을 피하고자 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가르친다. 반면, 죽음을 직시했던 켈슨 박사는 스파이크에게 죽은 자들의 존엄을 기억하고, 그 위에서 삶의 방향을 찾아야 함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방향은 기억이다. 결국 스파이크는 삶과 죽음, 생존과 인간성 사이에서 길을 찾는 여정 끝에서, 두 사람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긴다.

모든 사건이 끝나고 그는 다시 한번 떠난다. 떠나는 순간에도 낙담 대신 희망을 품으며, 자신이 다음 세대의 불씨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채 영화는 끝이 난다.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그 존재를 기억할 때, 우리는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유한한 삶 속에서 의미를 찾아 나설 동기를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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