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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창 Jan 21. 2024

조막손

   어둠이 내리면 이 작은 성당의 내부는 더없이 경건해진다. 미사를 준비하시는 신부님의 분주한 모습이 사라지면 천장의 전등이 하나 둘 밝혀지면서 이내 뒤편 이층의 파이프 오르간이 입당을 연주한다. 홍콩을 떠난 이후로 10년 만에 음표마다 영어 단어 가사를 붙여 성가를 부르는 것이 아직 어색하고 대부분의 성가도 익숙지 않은 곡들이지만 모르면 모르는 대로 혀가 꼬이면 꼬이는 대로 목소리를 높이려고 애를 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내 바로 뒷줄 왼편에서 천사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대부분의 다른 외국의 성당들과 달리, 이곳 보스턴의 성당들은 성가집에 악보가 있다. 그래서인지 신자들이 제법 성가를 열심히 부른다. 하지만 꽤 앞줄에 서서 이렇게 고운 목소리로 제대 뒤 십자가의 예수님 귀에도 들릴 것 같은 큰 소리로 노래하는 이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내 뒤의 그녀는 그렇게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미사 내내 궁금했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Let us offer each other the sign of peace.” 내 왼쪽에는 아무도 없었고 오른쪽에 있는 남자는 저만치 떨어져 있었으므로 난 곧바로 왼쪽 뒤로 돌아 평화의 인사를 건넸다. 얼굴을 숙인 채로 돌아서서 천천히 고개를 들다가 내 시선이 순간 멈추었다가 지나갔다. “Peace be with you.”


   예전에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을 때, 야구 결승전에서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공을 던진 투수는 오른팔이 팔꿈치 부분까지 밖에 없는 조막손이었다. 그 위에 글러브를 걸쳐 놓고 왼손으로 공을 던진 후에 그 왼손으로 다시 글러브를 끼고 수비를 하던 경이로운 선수였다. 그해 겨울에 메이저리그에 뽑혀 활약을 하기도 했던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One must think that nothing is impossible until there is no hope. Obstacles are not more than a stage we must pass in order to succeed.”


   그녀는 두 손이 모두 조막손이었다. 못 본 척 고개를 계속 들려고 했지만 결국 그녀의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 인사를 건네고 돌아섰다. 성체를 모시러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많은 서양인들이 그러하듯 그녀도 혀를 내밀어 성체를 받아 모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두 손을 내밀었다. 몇 개인지도 헤아리기 어려운, 작은 콩알 같은 손가락들이 붙어 있는 두 팔을 포개어 신부님 앞에 내밀어 성체를 받아 모셨다. 내 눈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이미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의 모습이 아닌 듯했다. 그녀는 무엇이 얼마나 감사해서 그리 아름답게 성가를 불렀으며, 또 얼마나 행복해서 아멘을 외치고 있을까… 희망이 있다면 불가능은 없다고? 저런 두 팔을, 두 손을 가지고 태어나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게 한 그 의지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얼마나 수많은 낮과 밤을 고통 속에 지내고 나서야 그 희망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녀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신다고 믿으며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살겠지? 그러니까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할 수 있는 것이겠지?


   온전한 두 팔과 손, 두 다리도 모자라, 추위를 이기고 쉽게 오갈 수 있는 네 바퀴 자동차까지 가진 나는 도망치듯 성당을 나왔다. 저녁 미사였기에 이미 새카만 어둠이 나의 창피한 낯빛을 가려주었다. 손가락도, 손바닥도, 손목도 없는 그 두 팔이 악보를 넘기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콩알 같이 붙어 있는 살점이 종잇장에 베이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은 매일 일용할 양식만을 구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자고 나면 또 잊어버리며 사는 부족한 믿음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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