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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창 May 08. 2016

내비게이터 갈등(葛藤)

당신은 내비게이터를 100% 신뢰하십니까?

    "약 500 미터 앞에서 양화대교 방면으로 왼쪽 길입니다."

    자유로에서부터 강북강변을 계속 달려왔는데 갑자기 왼쪽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옆에 있던 아내는 강북에 자기 모르는 "집"이 하나 더 있냐고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왼쪽 앞으로 바라보니 양화대교 앞에서 신촌, 홍대 방향으로 진입하는 차량들이 줄줄이 늘어섰고, 제 차는 이미 그 꼬리를 지나왔습니다. 오른쪽 네 개 차선은 훤히 비어 있습니다.

    "모든 내비들이 다 저리 가라고 하는가 보다. 우린 직진하자!"

    동작대교 밑을 지날 때까지 쌩하니 달릴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할 예정시각을 수정해서 보여주는 내비의 화면이 계면쩍은 표정으로 보였습니다. ^^


    남자는 세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인생이 편하다는 농담이 나온지도 꽤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내와 내비게이터(의 여자 목소리)입니다. 그런데, 어머니와 아내가 항상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비게이터가 항상 더 신속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최적의 길을 제시한다고 믿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나 아내보다 내비게이터를 더 잘 따르게 되는 경향이 발생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교통체증이 상당히 심하거나 내가 자주 다니지 않는 길의 경우에, 내비게이터와 나의 두뇌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내비게이터가 가진 "실시간 교통 정보"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당연히 내가 가진 정보보다 우수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는 점입니다.

    둘째, 내비게이터가 추천하는 경로보다 분명히 더 좋은 경로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순간에도 두 경로를 동시에 택할 수 없는, 그래서 결과를 비교해 볼 수 없는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1. 빨간 신호등에 걸렸습니다. 얼른 기어를 P로 옮기고 경로탐색을 다시 합니다. '추천경로'에서 '고속 우선'으로 선택사항도 변경해 봅니다. 그런데 방금 전과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으..... 진정 이 길뿐이야?"

    2. 퇴근시간에 당연히 꽉 막히는 남산 1호 터널로 가라고 합니다. 한남동 고가까지 20분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가톨릭센터 옆에 달린 교통정보 전광판은 소월길이 '원활'하다고 알려줍니다. 언덕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리고 남산을 돌아서 한남동 고가 밑에 도착하니 25분이 경과했습니다. "으.... 내비가 맞았던 거야?"

    3. 내비가 알려 준 길로 우회전하지 않고 직진을 했습니다. 이 고집스러운 여자는 이제 "약 백 미터 앞에서 우회전입니다. 그리고 우회전입니다."라고 알려줍니다. 사거리 하나를 더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 길로 돌아갈 것을 제게 명령합니다. "이, 바보!!!" 사거리 하나를 더 지나고 나서 완전히 다른 길에 들어섰더니 도로가 주차장이 되어 끝이 안 보이도록 차가 줄을 지어섰습니다. "아, 말 들을 걸......"

    다들 이런 경험들 많으시죠? "말~ 해, Yes or No?"


    혹자는 교통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받는 스마트폰의 내비게이터들이 DMB통신채널을 사용하는 차량용 내비게이터들 보다 더 정확하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S사의 T 제품이 좋으니, D사의 K제품이 좋으니 하며 비교를 합니다. 저요? M사의 A제품을 주로 사용합니다. 입체 지도의 품질도 좋고, 가독성도 훌륭하고, 프로그램의 짜임새도 좋고, 편의성과 기능성이 모두 만족스럽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회사의 대표이사가 제 친구라는 점도 중요하고, 저희 집 차에 장착된 내비게이터가 같은 회사 제품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죠.  추천경로를 확신하고 잘 따르냐고요? 사실, 차량용과 스마트폰의 내비게이터들을 집중적으로 여러 달 테스트를 해 본 결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개발사마다 저마다 대단한 로직의 알고리듬으로 최적의 경로를 찾는 내비게이터를 만들었겠죠. 심지어 S사의 T 제품은 제주도에서 울릉도를 가는 길도 가르쳐 주고, 온갖 골목길을 다 우회할 수도 있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보다 더 통제 불가능한 요소들이 더 많이 발생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강변에서 양화대교 쪽으로 빠지라고 했을 때에는 1) 연세대 앞을 지나 광화문 쪽으로 갔다가 1호 터널을 지나 강남으로 오거나, 2) 신촌과 서소문을 지나는 방법, 또는 3) 양화대교를 넘어 노들길을 지나 올림픽대로를 타는 방법을 제시하려고 했겠죠. 그런데, 그 순간 강변북로에 있던 차들이 모두 그 길을 따라가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이러한 변수까지도 내다보면서 특정 도로 위에 있는 자동차 몇 대가 어느 경로를 선택하는지가 제 차의 경로 선택에 영향을 주는 정도까지 발전된 상업용 내비게이터는 없습니다.


    작년 가을에 강원도 문막에서 자동차 네 대가 출발하면서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차와 늦게 도착한 차 사이의 간격이 20분가량 벌어졌습니다. 네 대의 자동차가 세 개의 다른 내비게이터를 사용한 결과였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고속도로를 선택한 경우보다 6번 국도를 타고 내려온 차가 제일 빨랐습니다. 그래서 K내비가 소위 '엄지 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친구와 저는 무슨 차를 어떻게 운전해도 그 구간에서 최소한 20분은 벌어질 겁니다. 친구는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고, 저는 연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얌전한 색시 운전을 하거든요.


    당신의 내비게이터가 자꾸 틀리는 것 같습니까? 바꾸어 봐야 큰 차이 없습니다. 갈등(葛藤) 하지도 마세요. 칡과 등나무가 얽혀 있는 모습에서 유래된 단어, 갈등처럼, 교통상황이 꼬이고 길이 막혀 있다면 어디로 가나 다 고만고만합니다. 마음 편안하게 운전하세요. 서울 시내에서, 대한민국 고속도로에서 이리저리 꾀를 내봐야 별 수 없습니다. 그래도 내비게이터를 바꾸어 보고 싶으시다고요? 눈에 보기 편하거나 귀에 듣기 좋은 내비게이터가 최고입니다.


    아내가 가끔 틀린 소리를 한다고 바꿉니까? 아, 이건 사랑하기 때문에 안 바꾸는 겁니다. ^^



아래 링크는 같은 매거진의 이전 글입니다.

https://brunch.co.kr/@6901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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