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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창 May 06. 2016

시내버스의 추억

가방 받아 드릴까요?

    초등학교 입학하기 직전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신세계 백화점에 갔습니다. 수유리 한신초등학교 앞에서 84번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1974년 말이거나 1975년 초였겠죠. 기억 속의 버스는 지하철처럼 창문 아래 옆으로 앉는 긴 의자가 놓여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버스를 타면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 제일 재밌죠. 무릎으로 올라앉아 창문을 가로지르는 쇠막대를 손잡이 삼아 신나게 구경했던 기억이 아직도 있습니다. 지하철보다 더 덜컹거리는 시내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재미가 상상이 되시나요?

이런 모습이지만 제가 탔던 버스는 나무로 만든 의자였습니다.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입니다.)

    그 시절의 시내버스는 요즘의 버스와 확연히 다른 점이 몇 가지 더 있었습니다. 첫째, 버스의 엔진이 운전석 바로 옆, 그러니까 버스의 앞에 달려 있었죠. 이 엔진룸에서 매캐한 기름 냄새가 올라오면 버스 멀미를 안 하는 분들도 속이 메슥거리죠. 하지만, 거북등처럼 생긴 엔진룸이 고마울 때도 있으니 한겨울에 뜨뜻해서 걸터앉아 있으면 딱입니다. 사고 난다며 엔진룸 위에 앉지 못하도록 기둥과 막대기로 막아두기도 했는데, 그게 손잡이 역할을 해서 더 편안하게 앉아 갈 수도 있었습니다. 빈 의자가 없어서 여럿이 서서 갈 때는 모두 함께 책가방을 올려놓기도 했었죠.

엔진이 앞에 있으면서 앞문도 달려 있는 이 버스는 80년 대 들어서 등장한 모델이라고 기억됩니다.

    엔진룸보다 더 큰 차이는 바로 안내양입니다. 승객들이 타고 내리면 "오라이"라고 소리치며 한 손으로 버스 옆을 탕탕 때리며 운전기사에게 출발하라는 신호를 보냈죠. 지금이야 지하철이 서울의 구석구석까지 뻗어있지만, 제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2호선이 신설동에서 종합운동장까지만 부분 개통이 되었습니다. 지하철의 추억은 다음에 따로 적어 보죠. 그러니까 840만 서울의 인구 대부분은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출퇴근하던 시절엔 아래 사진에서 보는 소위 "만원 버스"가 지극히 일상이었습니다. 버스 안내양은 왼손으로 문 손잡이를 잡고 왼발 끝이 버스 바닥을 딛고 힘을 줄 정도만 되면 오른손으로 버스 몸통을 두드리며 "오라이"를 외쳤습니다. 이렇게 집 앞 정류장을 출발한 버스가 곧바로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야 하는데 아직 버스 안으로 다 밀고 들어가지 못하면 안내양은 물론이거니와 한두 명의 몸뚱이가 버스 밖에 매달려 있는 경우도 다반사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죠. 학생 모자나 책가방의 버스 밖으로 떨어지는 일도 가끔 발생하죠. 물론 안내양의 신호에 따라 운전기사가 버스를 세웁니다. 도로에 차가 많지 않아서 가능했죠. 당시엔 잠실 5단지 앞에서 14번 시내버스를 타면 삼성동, 봉은사, 강남구청, 압구정동, 한남동을 거쳐 명동입구 중앙극장 앞까지 불과 25~30분이면 갈 수 있었습니다.

    만원 버스 안에서 책가방은 정말 큰 고역이었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낭만이 있었습니다. 의자에 앉은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주변에 서 있는 학생들에게 "가방 주세요"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가방을 하나만 받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개, 두 개, 세 개는 기본이고,......, 덩치가 좀 큰 학생들은 무릎 위에 쌓을 수 있을 만큼 받아주었습니다. 이게 차곡차곡 쌓는 기술이 필요하죠. 어쩌다가 아는 친구가 의자에 앉아 있으면 서로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야, 이거 누구 앉아 있다."라고 외치는 순간에 그 친구 무릎 위에 가방이 수북이 쌓이죠. 앞에 앉은 사람이 여학생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여학생이 먼저 손을 내밀어 가방을 받아 줄 때까지 기다려야죠. 하지만, 초등학교 동창 여학생이면, 게다가 만일에 주일학교도 같이 다니는 여학생 친구를 만나면, 그때도 인정사정없죠. 제가 앉아 있는데 여학생이 옆에 서면 어쩌냐고요? 아, 바로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죠! 그 여학생은 대신 제 가방을 받아주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그런 경우에 대비해서 남학생들은 책가방 가운데 열린 포켓에 일부러 손때를 "먹인" 영어사전을 넣어 다니기도 했습니다. 어쩌다가 미모가 탁월한 여학생이 책가방을 받아 준 날이면 수업 내내 그 여학생이 다니는 학교 쪽 하늘을 바라보다가 선생님께 꿀밤 맞기 일쑤였죠. 언제 꺼내 보아도 입가에 미소를 지울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들입니다.


    요즘 제 출근시간이 중고등학생들보다 약간 늦어서 대개 버스 안에는 신촌 방향으로 가는 대학생들이 많습니다. 어쩌다가 제가 앉은자리 바로 옆에 큰 가방을 메거나 든 학생이 서게 되는 경우에도 "가방 주세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잘 안 나옵니다. 오랜 홍콩 생활을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온 해에 한 번 그랬다가 이상한 아저씨라는 눈길만이 되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는 더 이상 버스나 지하철에서 아무도 서로 짐이나 가방을 받아 주지 않습니다. 책 읽는 사람은 그래도 가끔 마주치게 되는데, 가방 받아주는 친절은 이제 추억 속에만 아련할 뿐입니다.


(이 글에 사용된 사진들은 모두 인터넷에서 퍼 왔습니다.)



아래 링크는 같은 매거진의 이전 글입니다.

https://brunch.co.kr/@69010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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