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 관찰일지 #1
‘독서’, ‘글쓰기’가 전부였던 취미나 특기 란에 ‘영화 감상’을 적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였다. 대학 입학 전까지만 해도 영화관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던 내가 ‘씨네필’이라는 칭호를 달고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오기까지, 인생을 바꿀 영화를 만났다거나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었다. 그저 영화광인 대학 친구 J를 열심히 따라다닌 것이 전부였다. 다시 말해, J는 영화에 관심도 없던 나를 부산국제영화제까지 이끌었던 장본인이었다.
J는 대학교 동아리에서 처음 만난 친구였다. 학번으로는 동기였고, 나이로는 내가 한 살 위였다. 친한 친구 사이가 대개 그렇듯, J와의 시작은 차근차근 내려가는 계단이 아니라 어느 순간 급격한 경사로 깊어져버린 모래사장으로 기억된다. J가 나에게 어느 순간부터 특별한 존재가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에 비해 비교적 뚜렷한 취향을 가지고 있던 우리 둘은 몇 번의 대화만으로도 서로가 매우 잘 맞는 상대임을 알아챘다. 그녀는 동글동글한 눈과 코를 가졌고, 어느 날은 뽀글뽀글 히피펌이었다가 또 어느 날은 똑 떨어지는 단발이었다가 하는 변화무쌍한 머리 스타일을 가졌다. 그녀의 성격은 겉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많은 이들에게 둥글둥글 모난 데 없이 좋은 사이를 유지하면서도 제가 가진 쾌활함과 발랄함은 절대 잃지 않았다.
J와는 일하는 방식, 삶을 대하는 태도, 음식을 평가하는 기준이 모두 맞아 대학생활을 줄곧 함께 했다. 3년의 시간 동안 J와 나는 서로의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고, 그럴수록 생각도 취향도 점점 더 닮아갔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닮은 우리 둘에게도 닮기 어려운 분야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영화’였다. J는 아주 어릴 적부터 고전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 상업영화까지 가리지 않고 관람한 영화광이었다. J의 일상은 영화 없이 설명하기 어려웠고, 주기적으로 영화관에 가는 것이 그녀의 취미였다. 반면 나는 고등학생 때 한두 번 갔던 것 외에는 영화관에 대한 추억이 흐릿해져 가는, 영화관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J와 둘이서 처음 본 영화는 22년 가을 무렵, 대학로 CGV에서 봤던 <본즈 앤 올>이다. 사실 나는 <본즈 앤 올>이 영화 제목인지도 모른 채로, J가 영화를 예매했다는 이야기에 티켓값을 송금한 뒤 대학로로 향했다. J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영화관에 들어가는 나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언니, 좀 잔인해서 언니 취향에 안 맞을 수도 있어. J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나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잔인하거나 무서운 영화를 잘 보지 못했고, <본즈 앤 올>의 주인공들은 식인의 습성을 가진 이들이었다. 초반부터 피가 낭자한 영화를 보며 잔뜩 움츠러들었지만, 영화의 핵심이 식인이나 잔인성 따위에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즈음부터는 눈을 가리지 않아도 되었다.
10대의 주인공은 원하지 않는 식인 습성을 타고났다.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어리지만,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욕망들을 거부할 수 없는 나이. 엄마를 잃고 아빠에게 버림받은 주인공은 자신의 근원을 찾아 떠난 길에 비슷한 습성을 가진 이들을 만난다. 그중에서는 자신을 음침하게 따라붙는 이도 있고, 생존을 위협하는 이도 있으며, 본인보다도 자신을 믿어주는 이도 있다. 살기 위해 상대를 먹어야 하는 이들은 자신의 습성을 버리고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고자 하지만, 결국 사랑에 빠진 그들은 습성 앞에 무력하다. 하지만 그 습성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하는 사랑도 끝내 그들의 곁에 있다.
J는 이 영화를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본인이 가장 기다려왔던 작품이라고, 연신 설레어하며 함께 볼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 앉아 숨이 넘어가도록 운 건 J가 아니라 나였다. 나는 그날 영화관에서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다. 본 적도 없는 인물의 이야기를 2시간 동안 따라다녔다. 숨 가쁘게 따라간 곳에는 시뻘건 피로 가득 찬 곳에서 자신을 먹어달라 외치는 소년이 있었고, 나는 그 소년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아 눈물을 흘렸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J와 함께 보는 영화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따라가고 싶어진 것이. J가 고른 영화들은 종종 어려웠지만 하나같이 마음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것이 영화를 멀리하며 살아온 나에게 영화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것처럼 느꼈다.
나는 그 뒤로도 영화를 찾아다니는 J를 따라다녔다. 버스를 타고 가면 10분 남짓 걸리는 성신여대 CGV부터, 심야 영화를 보고 나면 차도로 한참을 걸어 나와야 하는 청량리 롯데시네마, 매표소부터 영화관까지 지하로 쭉쭉 내려가야 하는 대학로 CGV까지. 안암에 사는 우리는 차가 끊기더라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영화관으로,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면 줄기차게 영화를 보러 다녔다. J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았기에, 영화를 몰라도 예매에는 거침이 없었다.
어느 날엔 혼자 <더 웨일>을 보러 아리랑시네센터에 가는 버스 안에서, 지나가는 J를 우연히 만나 그 길로 옆 자리에서 함께 영화를 보게 된 일도 있었다. J를 따라다니면서 새로운 영화관을 알게 됐고, 시도하는 영화의 장르도 다양해졌다. 종로에 있는 에무시네마에서는 <애프터썬>을 함께 봤고, 마포구의 라이카시네마에서는 <드라이브 마이 카>를 함께 봤다. J와 함께 본 영화들은 이제 두 손으로 세기도 어려울 만큼 많아졌다. 종종 내가 먼저 영화를 예매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엔 대개 한 자리가 아니라 두 자리를 예매하고, J에게 시간이 되는지 물어보는 식이었다. J와 함께 본 영화가 늘어날수록,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가만히 자리에 앉아 우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2023년을 맞이하며 J는 반드시 부산국제영화제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J다운 선언이었다. J를 따라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접했던 나는 ‘이쯤이면 영화제에 갈 자격이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동참 의사를 뱉었다. 흘러가는 말인 줄 알았던 선언은 9월에 이르러 구체화되었고, 무려 4박 5일의 일정으로 영화제에 다녀오게 되었다.
4박 5일간 12개의 영화를 관람한 나의 후기를 말하면…… 나는 그만큼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기서 그만큼이라는 건 상영 시간 내내 영화를 한껏 음미한 다른 관객들만큼, 나와 영화제를 다녀온 J만큼, 어려운 영화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씨네필만큼은 아니라는 뜻이다. 여전히 영화 보는 것을 즐기지만,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내가 이제껏 봐온 영화들과는 또 달랐다. 이를테면 한 영화는 맨 처음 시퀀스로 산봉우리 여러 개를 담은 와이드샷을 5분 간 보여주는 식이었다. 왼쪽 상단 모서리에 있던 구름들이 오른쪽 하단 모서리를 지나 스크린에서 사라지기까지, 어두컴컴한 상영관에서 가만히 구름의 이동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에서 무언가를 느끼기엔 아직 많이 모자란 영화인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후반부 일정에서는 꽤 많은 영화들을 관람하다 꾸벅꾸벅 조는 불상사가 잦았다.
하지만 J는 나와 달랐다. 내가 3시간의 상영 시간 중 2시간 30분을 자버린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J는 같은 상영관에서 노트 필기를 하며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끝나자마자 ‘인생 최고의 영화’라는 평가도 덧붙였다. 무엇보다 그 말을 하는 J의 얼굴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그것은 쉽게 따라하거나 재현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나는 J의 반짝이는 눈빛을 마주하며 영화에 대한 J의 사랑이 내 생각보다, 그리고 J의 생각보다도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제 내내 J는 잠을 자지 않아도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J가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영화제 기간 J를 처음 만난 사람까지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만약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 온 J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관객들은 J의 눈을 보고 어김없이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주인공이 되어 날아다니는 J를 보며 나는 종종 생각에 잠겼다. 나에게도 저런 얼굴이 있을까? 나도 저런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온 뒤로 한동안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자신 있게 표현하는 J가 부러워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지던 때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품은 질문의 답은 영화제를 다녀온 뒤 한참 지난 시점, J로부터 듣게 됐다. 크리스마스 무렵에 온 메시지에서였다.
나는 언니가 정말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어. 나를 위로해 줬던 몇 편의 드라마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로 위안을 주는 글들이 언니의 마음과 손으로 쓰일 것 같아.
평소 긴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J가 힘겹게 눌러썼을 글자들을 만지작거리며 J가 영화를 쫓던 것처럼 나 역시도 글을 쫓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처음 갔던 날엔 책 속에 파묻혀 시간이 부족했고, 몇몇 출판사의 부스는 발걸음을 떼기조차 아쉬워 열심히 영상으로 담았다. 서울퍼블리셔스 테이블, 언리미티드 에디션, 숱한 독립서점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글을 접할 수 있는 곳을 찾았고, 글을 읽고 쓸 때면 여지없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리고 그런 내 옆에도 항상 J가 있었다. 어쩌면 J도 그때의 나에게서 비슷한 얼굴을 보았을까? 너무 좋아서 한껏 들뜬, 어린아이를 닮은 얼굴을 말이다.
무언가를 아낌없이 좋아하는 J의 마음은 옆 사람에게 손쉽게 퍼진다. 셔터를 내려도 주변 가득 꽃향기를 남기는 지하철 안 꽃집처럼, 이유 없이 시작되어도 끝없이 메아리치며 반복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처럼. J는 그러한 힘으로 주변을 물들인다. 그녀의 주변은 그녀가 아낌없이 내비치는 사랑을 보며 무심히 잊고 지나쳤던 기억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힘을 얻는다.
이해하지 못할 아주 어려운 영화라고 해도, 나는 여전히 J가 제안하는 영화라면 따지지 않고 따를 것이다. 상영관에 어둠이 가라앉아 얼굴 정도는 분간할 수 있게 되는 영화 중반부쯤, J의 표정과 눈빛을 찬찬히 살피면서. 영화와 J를 한 번씩 번갈아 바라보면서. 그렇게 나는 J를 통해 다음 영화를 볼 용기와 무언가를 새로 사랑할 힘을 얻는다.
24.01.03.
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