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라서
2004년 방영됐던 <미안하다,사랑한다>는 온 국민을 폭풍오열 속에 가두었고 소지섭과 임수정의 눈빛연기에 휘둘리게 했다. 그 둘의 패션과 말투 하나하나...시간은 흘렀지만 소간지를 탄생시키며 여전히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난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엄마가 아픈 아빠를 병간호하면서 우리를 키우면서 또 자신의 오지랖으로 능력도 안되는데 빚보증까지 서가면서 살았던 인생의 마지막 종착점에서.
그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결국 파산신청을 하기 전 홀연히 도망쳐버렸다.
결국 어찌저찌 다시 연락해 온 엄마는
수척해졌지만 여전히 우리보다 남들에게
더 미안해서 몸둘바를 몰랐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보다는 남이 더 가까웠던 엄마는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숨었다. 그 피해는 일단 같이 살았던 어린 조카가 받았다. 당시 나는 결혼해서 따로 살고 있었기에. 어린 조카는 남들의 방문에 두려움에 떨었다. 나는 전화가 무서웠다. 그나마 파산신청으로 은행권은 마무리가 됐고 사적인 빚은 사실 구구절절 사연이 많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충분히 이자로 원금도 이자도 충당됐고 엄마의 명의를 빌려준 댓가로 아파트도 청약받고 잘 팔았다.
우리는 살아보지도 못한 아파트가 있었고
또 그 와중에 어디까지 명의를 빌려주었는지 차도 있었고 누군가에겐 매달 보험을 들어줬다.
결국은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해지했다.
그걸 지켜낼 돈이 없었기에.
물론 손해보신 분도 있다. 다행히 어느순간 그들이 우리에게 말했다. 엄마가 사기치려 한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이리 됐으니 그동안의 신뢰와 고생에 받지 않겠노라고. 그냥 건강하시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어느순간 그 말을 들으면...
또 사고쳤구나. 능력도 안되는데 빚보증을 서고
능력도 안되는데 아무 생각없이 명의를 빌려주고...
감시하기 시작했다.
오래만에 만나면 "잘지냈어요? 어디 아픈데는 없으세요?" 그런 말을 했지만 그 속엔 또 뭐 사고친 것 없으세요? 그러면 내 눈치를 본다.
나쁜 역할은 내 몫이었다.
용돈도 내가 드리는데 나쁜 역할까지 떠맡는다.
불편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척.
엄마도 내내 그랬다.
유독 엄마는 나에게 하소연을 하고 사고친 일을 마무리했다. 치부를 다른 자식에게까지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화가 났다.
다른 사람들 속에선 활짝 웃는 엄마가 내 앞에선 편해보이지 않았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리고 당시 나는 매일 여러모로 힘들었는데
그런 나의 이야기보다 남의 이야기에 눈물을 훔치고 하물며 꿈까지 꿔가며 걱정한다는 엄마의 말에 실소가 나왔다.
게다가 어느날은 '양딸'이라고 누군가를 데려와 버젖히 소개를 한다. 애써 괜찮은 척 인사했지만 자식 앞에서 누군가를 양딸이라고 소개하면?
결국 그 양딸이 어색한 자리에 한참도 있다가 가고 나서야 난 화를 냈다.
"엄마는 내가 누군가 더 편해서 내 엄마예요 하면 좋아요?"
그러면 어김없이 "미안하다 사랑한다"
확씨. 그 말 누가 만들었어.
사랑하면 미안해할 짓을 애초에 하지 말아야지!
그 말은 어느순간 이렇게 들렸다.
사랑보다 의무가 먼저였던 세월에 대해 회피하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미안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은 마음 그 어디쯤.
그래도 부모이기에 해야 될 것 같은 마음.
한 숨 가득 내쉬면서 또 그런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 말이 그래서 지독히 싫다.
어느날 더 큰 사고를 치는 날 무표정으로 나를 만났다. 그 표정이 싫었다. 뭔가를 캐묻고 싶었지만 삼촌네 집이라 물어볼 수 없었다.
그리고 해외로 떴다. 결혼을 하러 갔다고 한다.
무슨? 이 어이없는 뜬금포?
한참이나 연락이 두절됐다.
그때 난 또 누군가에게 속아 장기매매를 당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끝이 없었다. 그래서 매일 외교부에 전화하고, 연락은 오랫동안 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날 양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매일 저녁 운다고.
"한국에 가고 싶다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괜찮다. 미안하다.사랑한다."
아.씨발.어쩌라구...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거야.
다행히 동생의 결혼식을 핑계로 한국으로 들어왔고 결혼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한국에서는 서서히 정착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통장에 죽지않을만큼의 돈을 넣어주고
내 카드를 주며 엄마를 매번 감시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젠 엄마도 안정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떠돌이 생활이 길었던 관계로 아프기도 해서 병원비를 서로 모아가며 치료했고 그 와중에 결국 나도 수술을 했다.
엄마는 여전히 인싸다.
자식보다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우선순위이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려 한다. 살면서 한번도 살갑지 않았던 엄마였다. 아픈 남편에 자녀를 돌보며 살기엔 살갑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이 적당히 남들과도 평등해야 됐는데 엄마 눈엔 공부도 못하고 똑똑하지 못했던 딸들이 늘 부끄러움의 대상이였다. 난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안다. 엄마의 생일날. 없는 돈으로 손수건을 샀는데 그날의 싸한 눈빛을 잊지 못한다.
남에게도 말못했던 나의 고통을 얘기했던 날 외면하고 듣지 못한 척 했던 엄마의 무심함을 안다. 결국 나만 한심한 얘가 되버렸다.
그러나 내가 수술하고 정신이 혼미해서 남들처럼 회복하지 못한 채 쓰러져 있을 때
몇시간을 쉬지 않고 내 손과 발을 주물렀던 그때의 진심도 안다.
안타깝게도 지금 나는 이 역겨운 말을 가끔 자식에게 한다. 하기 싫다. 그런데 감정이 극에 달하고 머리가 터질 것 같으면 화를 낸다.
곧 후회를 하며 이 말을 한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 말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후회일까. 자책일까. 사랑일까. 미안함일까.
아님 그 무엇도 아닌 그저 회피용 말일까.
그래서 최근에 이 말을 쓰는 대신
"화내서 미안해. 그리고 고맙다"라고 말한다.
물론 아직도 엄마는 그 말을 쓴다.
그리고 그 말이 많은 날은 엄마를 조종해가며
또 무슨 사고를 치지 않았는지 조심히 취조한다.
그러면 또 뭐가 나온다. 왜?왜 내가 이래야지?
나의 결론은 이렇게 내려졌다.
세상엔 사랑은 없다고.
그리고 진짜 미안한 감정도 없다고.
그건 그저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자기방어적 자기애착적 표현이라고!
내가 지켜본 사랑엔 '사랑'이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한쪽이 죽거나 아프면 더 쉽게 '환승사랑'으로 갈아타는 것을 봤다. 그게 내가 살면서 본
'사랑'의 모습들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말이 됐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자기연민 쩐 그 말 집어치우시고 감정절제하시구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저 묵묵히 그 옆에서 그 사람의 고통을 들어주고 서로에게 신뢰를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닌가요?
사랑이 존재하길 바라는 것!
그것은 인간들이 그토록 '사랑'에 목말라한다는 뜻이겠지. 사랑이 존재하길 바라는 희망이고.
사랑? 그런게 있을까요? 없다에 1표!
그렇게 없다에 1표를 던져놓고
세상에 사랑이 존재하길 바라면서
사랑과 관련된 드라마를 본다.
가끔 진짜 그런 사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가슴 와 닿는 대사는 돌리고 또 돌리며 눈물 펑펑 흘리면서 보고 또 본다.
나의 행동마저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