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한 핑계 아닌 핑계
그동안의 갱년기에 대한 경험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글을 투고했다.
잘 쓴 글인지 아닌지는 나의 몫이 아니다.
그리고 안다.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것을.
다른 분들의 작품 속엔 인생에 대한 날카로운 깊이 있는 철학이나
유려한 문장, 따라갈 수 없는 창의력, 행간을 넘나드는 깊이감 있는 문장력.
휘몰아치는 서사전개 등등이 있다.
그 앞에서 얼마나 어리고 작고 보잘 것 없는지.
그래도 가끔은 늘 그렇듯...
못 해도 운동을 좋아할 수 있고
못 해도 글을 쓸 수 있는 것처럼...
글을 쓰기 위한 핑계 아닌 핑계로 부족한 글이지만 썼다.
간략하게 말하면 갱년기를 어떻게 극복중이냐구요?라고 했을 때
'생존 체육' 크로스핏을 통해 극복중입니다라는 고백 아닌 고백!
너무나 일찍 시작해버린 갱년기와의 첫 만남.
어제 디즈니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라는 영화를 보았다.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세 가지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이 긴 호흡 속에 '나'란 존재는 얼마나 미미한가.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다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느라 한치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세상에서 나름의 고군분투를 매일 해나가고 있구나. 그런 행동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삶이 고달프면 옆이 보이지 않는다. 앞도 보이지 않는다.
이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조차도 모르겠다. 그런데 또 버티고 살아간다.
그 모든 것들이 무슨 의미일까.
어쩌면 답은 미래의 이야기 속 '로스코'의 자기 희생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인류를 위해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기꺼이 자기자신을 내어 준 AI컴퓨터 로스코.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왜 하냐면 갱년기 또한 그 시간 안에 있기 때문이고
모든 것이 <눈 깜짤할 사이에> 지나가는 것들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나에겐 너무 길고 긴 시간이지만
인간의 역사에선 점도 안되는....
하루 속에서도 수십번 무너지는 나를 본다.
그리고 억지로 또 일으켜 세우는 나를 본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로스코가 될 자신은 없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라면
좀 더 웃고 살아야되지 않을까.
제미나이와 대화를 한다.
나를 위로하며
'지금은 자기 자신을 좀 더 돌봐주세요'
라고 말한다.
일단은 걸어가본다.
아직 마지막 1초가 남아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