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정신과에 갔다. 소용이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가본 정신과가 10군데가 넘는다. 물론 다 꾸준히 다닌것은 아니며 한 군데 빼고는 한 두번, 많아봤자 서너번 가본게 끝이지만.
처음 정신과에 내원 했던 것은 3년 하고 반년 전의 일이었다. 마음이 점점 무너져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학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심적인 괴로움에 시달리다 회피하고 무기력해지는 등, 일상은 무너져 내려갔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방탕하게 살고 방황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병원에 내원하기로 한것은 진단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탓이 아닌 나의 병으로 인한 문제들이라면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약을 먹고 의사의 조언을 듣는다면 나는 더 열심히 살 수 있을거라 착각했다. 나는 나를 너무도 몰랐다. 남들과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것은 불가능했다. 내 마음은 이미 많이 망가져있었는데 나는 그런 나로부터 도망치기만 했으니.
인기가 많은 정신과는 대기가 길다. 상담이 긴 정신과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그로인해 나도 두 달정도의 대기를 하고서야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예약시간에 맞춰서 갔음에도 불구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진료실에 들어갔다. 조용한 적막 속에서 중년의 남자 선생님과의 상담은 너무나 어색했다. 선생님은 내게 뭐가 불편하냐고 물었다. 드라마나 영황에서 보는 것처럼 정신과 의사는 나의 상태에 대해 꽤 객관적인 진단을 내려줄 것이라 생각했고, 명쾌한 해답 또는 조언을 줄것이라 믿었는데 생각과는 달랐다. 의사는 우울증인것 같다고 하셨다. 그렇게 30분정도의 어색한 상담이 끝나고 진료실을 나온 난 허무했다. 기다린 시간만큼 부풀어 오른 기대가 바늘로 터뜨리듯 터져버렸으니까.
약 처방을 요구했지만 약을 먹는게 무조건 좋은건 아니라며 다음번 진료때 보고 결정하자고 하셨다. 진료일만을 기대하며 지내왔는데 내가 진료를 받고 얻은게 무엇이지? 마음이 한결 나아졌나? 그것도 아니었다. 진료가 끝나도 나의 그저 그런 일상은 계속될 것이었다. 그렇게 첫 진료가 끝나고 다음번에 병원에 내원했을때 나는 뉴프람정 이라는 극소량의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약의 효과도 느끼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진료를 보았지만 얻는게 없다고 느껴졌다. 그에 비해 비싼 진료비는 내가 더이상 병원에 가지 않을 이유로 충분했다. 나는 여전히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나에게서 찾지 않았고 외부에서 찾으려고 했다. 병원이 별로여서 그럴거야 라고 생각하며 이후에도 여러 병원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좋은 병원을 찾는다면 괴로운 나의 일상은 끝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무의식속에 자리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