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영어 감각 한 달 동안 심폐소생하기
내가 지원한 펠로우십 안내문에는 어떤 서류를 언제까지 내라는 안내는 있었지만 그 이후의 선발 절차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설마 면접 같은 것을 볼까 하는 의심은 들었지만 우선 지원서 내기에 급급했기에 불안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원서를 제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달 뒤' 서류 합격한 모든 지원자 대상으로 면접을 볼 것이라는 슬픈 안내가 왔다.
(결국 면접 날짜는 그 메일로부터 한 달 뒤에 잡혔다. 최종 결과는 그렇게 늦게 알려주더니 면접 절차는 빨리빨리 준비가 되었는지..;;)
면접이 한 달 뒤든 두 달 뒤든 간에, 불안한 예감이 현실이 되어버려 정신이 아득해졌다.
듣기로는 10년 전만 해도 연구소 직원들과 교수들이 아시아 여러 국가를 직접 돌아다니며 호텔 같은 데를 섭외해서 대면 면접을 봤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에 zoom이 보편화되면서 비교적 절차가 간단해진 것 같았다.
영어로 면접 비슷한 말하기를 하는 것은 10년 만이었다. 그나마 그 10년 전의 기억이란 건, 고등학교 때 원어민 선생님이 스피킹 수행평가를 본다고 하면원고를 준비해서 말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그후 대학에 진학해서는 국어를 전공하는 바람에 나의 영어 감각은 심연에 고이 묻혀 있었다.
당시는 직장 생활 중이었고 죽은 영어를 단기간에 끌어올릴 공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영어 공부의 기억은 대학 입시 때가 마지막. 인강에 절여진 한국 사람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일단 강의라도 듣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영어 공부 어플이 그렇게 많은지 그때 처음 알았다. 처음 선택한 것은 리얼클래스였는데, 한국어를 한국인 이상으로 잘하는 타일러가 영어 강의를 한다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타일러가 하는 강의 중에 CNN 뉴스 클립을 통해 논리적인 말하기 기술을 키워 준다는 수업이 있었고, 이 수업을 듣고 싶어서 리얼클래스를 결제했다.
타일러의 CNN 수업을 퇴근 후에 매일매일 듣고 가르쳐 주는 핵심 표현들을 외워두려 노력했다.
면접 때 써먹을 수 있을 만한 표현이 나오면 내 문장을 만들어서 적어 두고 입에 붙도록 계속 말해 봤다.
최종적으로 면접에서 써 먹은 것은 10%도 안 되는 것 같다. 강의를 '듣기만' 한 것이 면접 준비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름 그때는 무언가 매일 하고 있다는 마음의 위안도 되었고, CNN 뉴스로 듣기 연습도 하면서 죽은 귀도 조금 트였고, 미국에서 이슈가 되는 여러 현안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었다.
1년 권을 끊었기 때문에 반 년이 지난 지금도 리얼클래스는 계속 쓰고 있는데, 면접 이후로 계속 영어 공부를 하면서 여러 개의 영어 어플 경험이 추가되었다. 그 후기는 뒤에 몰아서 쓰기로 한다.
면접 날짜가 공지보다 3주나 앞당겨서 확정되었다. 영어 감각은 그다지 끌어올려지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이 면접을 보기 위한 실전 준비로 전환해야 했다.
나를 이 펠로우십에 처음 이끌었던 귀인 교수님의 은혜를 또다시 크게 입었다. 미국 원어민 지인을 대동하여 실전과 똑같은 환경에서 zoom 모의 면접을 준비해 주신 것이다.
그 분은 같은 연구소의 면접 경험이 있었기에 대략 어떤 질문이 나오는지에 대해 감이 있으셨고, 본인이 소속 기관의 학생을 선발하는 당사자기도 했기에 적격자 그 이상이었다. 원어민 지인께 예상 질문과 상황을 알려 주시고 교수인 척(?) 연기를 시킨 뒤, 제3자의 시선에서 나를 꼼꼼히 관찰해 주셨다.
지인 분은 중년의 성인 남자였기 때문에 정말 내 호스트 교수 같았다(!). 많은 준비를 못하고 모의 면접에 들어갔지만 정말 실전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고 혼자 연습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두 분은 각자의 시선에서 엄청난 피드백을 주셨고, 내 지원서와 상황에 맞는 예상 질문을 왕창 뽑아주셨다. '너가 이 프로그램에 기대하는/궁금한 점이 있는지'를 역으로 물어보아 적극성을 확인할 것이라는 팁 (적중했다!), 카메라 위치와 시선 처리, 끝이 잘 내려가지 않는 나의 말 습관 등등 혼자서 볼 수 없었던 디테일까지 잡아 주셨다. 그 인터뷰 연습이 나에게는 정말 귀중한 변곡점이 되었던 것 같다.
모의 면접을 바탕으로 예상 질문을 정리하고, 답변을 직접 써보며 연습했다. 기본적인 문법 교정을 chat GPT에게 받았지만, 답변이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이어야 말로도 뱉을 수 있기 때문에 입으로 뱉어 보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내 말일 수 있도록 계속 다듬었다.
면접 직전에는 모의 면접을 한 번 더 봤다. 지원서 교정을 볼 때처럼 숨고에서 준전문가를 찾았다. 외국계 회사나 입시 등의 모의 면접을 봐 주는 '숨고'들이 꽤 많았고, 쏟아지는 견적서 중 가장 정성스러워 보이는 여자 선생님께 의뢰했다. 두 번째 모의 면접은 내가 답을 준비한 질문 중에서 랜덤하게 질문해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몰입은 되지 않았지만, 스몰 토크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라든가.. 몇 가지 도움 되는 것이 있었다.
면접을 몇 명이서 보는지, 교수 혼자 보는지 직원도 대동하는지 등등 카메라가 켜지기 전에는 알 수가 없어서 내내 긴장했다.
면접 시간은 한국 시간으로는 아침, 미국 시간으로는 밤이었는데, 내가 아침에 훨씬 컨디션이 좋기 때문에 그렇게 신청했다.
오전 10시에 칼 같이 면접 방이 오픈되었고, 호스트 교수 혼자 편한 차림과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준비한 질문은 거의 빗나갔다. 생각보다 더 편한 분위기였고, 이미 내 지원서를 꼼꼼히 읽은 상태에서 몇 가지 본인이 정말 궁금한 몇 가지 디테일만 물어 보았다. 질문이 달랐어도 자연스럽게 내가 준비해 둔 표현으로 넘어가서 어찌어찌 대답을 했다. 한국어였으면 더 정확하게 자세하게 답변할 수 있었을 텐데 하찮은 영어 실력이 내내 아쉬웠다.
예상 면접 시간은 20~30분이었는데 교수 질문은 거의 15분만에 끝났다. 그냥 끝내기엔 앞의 답변이 너무 아쉬웠기에 이 프로그램에 대해 들은 바와 기대하는 바를 떠듬떠듬 계속 어필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가장 이불킥했던 것은 마지막 순간. 꼭 말하고 싶었던 명언을 어디서 주워들었는데, 'I will go the extra mile in this fellowship', 뭐 이런 말이었다. 그냥 끝내도 됐는데 그 말을 끼워넣다가 좀 틀리게 말해 버렸다. 내 영어 실력을 이미 알았을 텐데, 한국어로 따지자면 떠듬떠듬 중급 정도의 쉬운 말들로 대답을 하다가 갑자기 마지막에 '천릿길도 한걸음입니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격언을 내뱉은 격이었다. 교수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사라졌고,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나는 뒤통수를 부여잡았다.
40여 일의 시간 동안 어찌저찌 심폐소생시킨 영어는 반의 반정도의 호흡을 되찾아줬고 겨우 제 역할을 해 줬다.
영어 면접을 준비하던 시점으로부터 최종 결과를 듣고 출국 준비를 하는 현 시점까지, 거의 6개월 동안 계속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이번엔 심폐소생 수준이 아니라 가서 살고 공부하고 발표하기 위한 진짜 영어공부. 리얼클래스로 시작해서 말해보카, 스픽, 민병철유폰과 팟캐스트, 넷플릭스까지 온갖 영어 공부 어플과 매체를 다 찔러보고 있는데, 이것저것 써 보고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점점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영어 공부 어플 후기는 다음 편에 나눠 써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