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된 보스턴 16평 아파트의 한 달 월세는?
보스턴에 도착한 지 벌써 2주가 됐다. 긴장감 가득 안고 도착한 첫날은 참 우울했다. 폭우 쏟아지는 날씨도 한 몫 했고, 식사 때가 한참 지나 쓰러질 듯 배고파 들어간 중국집이 몇 입도 못 먹을 정도로 끔찍하게 맛없던 것도 한 이유였고 (그게 3만원이라서 더 슬펐다), 이밖에 여러 이유가 있었으나.. 어쨌든 눈물로 버라이어티한 하루를 보냈다.
그 첫번째 날, 요동치던 우울의 시작은 집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예습하고 외워둔 대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요리조리 길을 찾아 우버 탑승에 성공했고, 무뚝뚝한 우버 기사는 나와 내 몸만큼 무거운 짐짝들을 목적지에 내려 줬다. 역시 예습하고 외워둔 대로 키 박스에서 집 열쇠를 찾고, 조금 헤맸지만 집 문을 따고 들어오는 데까지도 모든 것이 무난했다.
1년 동안 살 나의 미국 집 피바디 테라스. 고층에다 베란다가 있고 찰스강까지 보인다는 그 집을 설레는 마음으로 열었는데, 한 달을 비워 눅눅한 냄새가 훅 끼쳤다. 천장에 조명이 하나도 달려 있지 않아 집안 전체가 어둑했다. 바닥은 중학교 때 대걸레 밀어 닦던 교실 돌바닥, 벽은 구멍 송송 패인 콘크리트에 흰 페인트. 가구 하나 없이 텅 비고 낯설기만 한 미국 집.
운 좋게 당첨되어 좋아했던 베란다는 그늘창에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아, 베란다가 가려졌다는 것이 설계도에 안 적혀 있었던가, 나는 참 경솔하고 어리석구나. 이 어둑하고 차가운 집에서 1년을 어떻게 사나, 이 허름한 집이 왜 이렇게 비싼 것인가. 집에 대한 실망감이 하루종일 마음을 짓눌러 그렇게도 울적했던 것이다.
내 손으로 계약한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던 것은 보고 고를 수 있는 게 도면밖에 없었기 때문이고, 도면밖에 못 본 것은 하버드 하우징의 독특한 시스템 때문이다. 미국에 처음 온 나는 부동산까지 끼고 집을 구할 자신은 도저히 없었고, 100년 넘었다는 하버드 기숙사는 저렴했지만 무척 낡고 좁다고 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하버드 하우징.
하버드 하우징 (Harvard University Housing, HUH)
하버드 하우징은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부동산 같은 기관이다. 학교 주변 수십여 개 주택이나 아파트를 학교 부설 기관에서 직접 관리하고 계약도 맺는다. 거주자는 학부생보다는 대학원생과 교직원인 것 같다.
좋은 집에 대한 수요가 많으니, 나름 공정하게 입주자를 뽑는다고 도입한 것이 로터리 시스템 (The Housing Lottery)이다. 이 시스템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어서 처음에 애먹었던지라, 겸사겸사 프로세스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The Housing Lottery
https://www.huhousing.harvard.edu/our-properties/near/213
1) 미국 학기에 맞춰서 모두가 같은 시기에 집을 구하게 되는데, 5~6월쯤 하우징 로터리가 매일 돌아간다.
2) 로터리에 참여하고 싶으면 미리 사이트에 가입하여 기한 내 신청해 둔다. (올해는 5월 1일까지 신청)
3) 모든 지원자에게 랜덤하게, 하나의 날짜가 배정된다. 5월 초에 일찍 배정될수록 선택지가 많은 것 같고, 6월 초쯤으로 늦게 배정되면 선택지가 더 적어지는 것 같다.
4) 내가 예를 들어 5월 20일을 배정 받았다면, 하루 전인 19일에 메일이 온다. 그때부터 딱 23시간 동안, 내가 선택 가능한 집들의 모든 옵션을 목록으로 본다. 내가 살고 싶은 집 후보를 우선순위대로 미리 골라 둔다.
* 볼 수 있는 정보는 아파트명과 룸넘버(층 포함), 넓이, 방 수, 가격, 집 계약 기간, 도면, 가구 목록 정도. 방 개별 사진은 없으니 그 아파트 사이트의 사진을 보고 대충 분위기를 짐작해야 한다.
5) 5월 20일 몇 시에 맞춰서, 살고 싶은 집을 선착순으로 클릭하여 잡는다. 선택 1시간 전에는 목록이 닫히니 주의.
6) 며칠 내 계약서가 메일로 온다. 전자서명해서 보내고 카드로 첫 달 월세를 내면 계약 끝.
*주의사항: 집 계약 날짜를 바꿀 수 없다. 나는 7월 중순 입주였는데 8월 초에 미국에 들어온지라 반개월 치 월세 200만 원을 꽁으로 냈다. 그게 참 많이 아까웠다..
"하버드 하우징 그거 진짜 힘들어요~ 70%는 떨어져요." 하던 어떤 분의 말씀에 잔뜩 쫄아 (대학 수강신청 때도 안 가던) PC방까지 갔는데, 의외로 원하는 집을 바로 잡았다. 3초나 늦게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티켓팅에 절여진 한국인에게 이정도 선착순은 별로 큰 어려움은 아닐 듯하다.
무튼 그렇게 선택하게 된 피바디 테라스는 1964년에 지어졌다는, 그래서 올해로 60살쯤 된.. '가장 무난한 선택지'로 평가받는 아파트였다. 드라마에 나올 법한 아기자기한 미국 주택들은 보기에만 좋지 100년이 넘었기 때문에 손가락 만한 벌레가 수시로 튀어나온다고 했고, 신축 아파트들은 어마무지하게 비싼데도 훨씬 좁았다. 내가 고른 집은 딱 중간 정도 가격대였고, 고층이든 저층이든 베란다가 있든 없든, 가격에 큰 편차가 없었다. 그래서 나름 선착순으로 손을 빠르게 놀려, 같은 가격에 넓게 빠진, 강변의 베란다 집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고른, 거실 하나 침실 하나 있는 집(1bed) 우리집 월세가 정확히 2,784불. 지금 환율을 적용하면 한 달에 370만원 남짓 된다. 다른 보스턴 집값은 모르지만, 거의 다 이 정도 한다고 들었다.
그렇게 나에게 기대와 슬픔을 주었던 아파트는 이제 꽤 정이 들었고, 어느새 내 집 같다.
하늘을 다 가렸던 창은 관리사무소에 연락했더니 열 수 있다고 했고, 창을 여니 기대했던 대로 찰스강이 멋지게 펼쳐졌다. (우울의 반 이상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던 셈이다.)
혼자서 낑낑대며 침대와 매트리스를 조립했더니 다음날 등 붙이고 잘 수 있어 행복했다. 그 다음날은 소파가 와서 바닥 대신 캐리어 위에 접시를 놓고 밥을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그 다음날은 테이블이 오고, 그 다음날은 의자가 오고..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졌고 차가운 돌바닥도 나름 시크하게 보였다. 배낭 매고 캐리어 끌고 보스턴 곳곳에 중고거래를 다닌 덕분에 조명이나 주방가전도 한 개씩 생겼다. 한인마트에서 장을 잔뜩 봐서 냉장고를 채워 놓으니 마음도 든든해졌다.
4일차쯤 되었을 때, 온종일 땀흘리며 가구를 조립하고서 베란다를 보는데 강변으로 노을이 새빨갛게 내려앉았다. 새삼 우리집이 정말 멋지고 자랑스러웠다. 어떤 날엔 날이 좋아 강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푸릇하고 아기자기한 동네를 구경다니며 이 동네와 이 집이 또 더 좋아졌다. 여전히 까만 돌바닥에 흰 콘크리트 벽이지만 시장에서 2달러 주고 꽃을 사다 꽂으니 나름 분위기가 살았다.
보스턴 집값은 참 너무 비싸다. 서울에서 월 370만 원이면 어느 정도 집에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봤으나 한 달에 370만 원을 벌어본 적도 없어서 상상에 한계가 있었다.
미국에 오기 직전 한국에서 중국인 유학생 친구와 밥을 먹었는데, 월 90만원 남짓 되는 장학금 외에 수입이 전혀 없어 고달프게 생활하고 있었다. 나름 저렴한 편이라는 서울 월세 50만원을 내고 나면 밥 한끼 사먹기도 빠듯하다고 했다. 친구는 자기 지역 공무원 월급이 30만 원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제일 비싼 서울 월세는 중국 공무원 월급의 1.5배 남짓 되는 셈이다.
나의 미국 집세가 370만 원쯤. 잠깐의 공무원 시절 받았던 월급이 세금 빼면 210만 원쯤 됐다. 보스턴 집세 또한 한국 공무원 초봉의 1.5배 남짓 되는 셈이고, 학교에서 주는 생활비에서 월세를 뺀 돈으로는 나 역시 이 도시에서 고달프게 살아야 한다. 미국에서 느낄 나의 고달픔이 한국에서 친구가 느껴 온 고달픔과 비슷하겠구나 싶어 몰랐던 마음 하나가 이해가 됐다. 새로운 경험은 이렇게 새로운 감정을 가르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