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땡, 나의 이야기 3화
유튜브를 켜면
그에게 가장 작은 세상이 열렸다.
작은 휴대폰 화면 안에는
그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잘 아는 세계가 있었다.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오래 머무는지,
어떤 밤에 어떤 감정으로 스크롤을 내리는지까지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미 알고 있었다.
축축 처지고 음울한 분위기의 노래 플레이리스트들.
세계 곳곳을 떠도는 여행 유튜버들의 브이로그.
자연과 동물에 관한 다큐멘터리.
철학이나 정치를 말하는 사람들.
연애 프로그램과 남의 사랑 이야기들까지.
그는 세상을 직접 살아내기보다는
유튜브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때로는 대신 살아내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우울한 플레이리스트와
화려한 여행 브이로그 사이를 유영했다.
그러다 알고리즘이 그의 앞에
하나의 영상을 던져주었다.
[2030 ‘그냥 쉬었음’ 청년 70만 돌파]
그는 영상을 재생하지도 않은 채
댓글 창부터 열었다.
누군가 자신을 대신해
싸워주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자리를 박살 내놓고 왜 쉬었냐니 무슨 소리냐
청년한테 책임 전가하지 마라
‘그냥 쉬었음’이라는 말, 참 악질적인 단어 선택이다
경력 없다고 안 뽑고, 이력서 넣어도 연락이 없다
하다못해, 알바도 이제는 경력 위주다
대한민국 취업 난이도는 매년 최고난이도 갱신 중이다
그런 댓글들을 읽으며
그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쉰다.
나 같은 사람들이 참 많구나.
그래, 이건 내 탓이 아니야.
문제는 나 말고,
이 사회고, 이 구조야.
타인의 분노에 기생해
나의 무기력을 정당화하는 순간,
마음속의 지옥은 잠시 고요해졌다.
하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조금만 더 스크롤을 내리자
날카로운 말들이
유리 조각처럼 발밑에 흩어져 있었다.
아이 방의 어른
늙은 부모는 밖으로 일하러 나가고 젊은 애들은 집에서 쉬는 기이한 나라
그냥 쉬어도 생활이 되는 경제력이 부럽다
왜 뭐만 하면 쉬었음 청년들을 옹호하나, 난 뭐 일하고 싶어서 일하나 먹고 살려고 일하지
부모 등골 빼먹으면서 쉬는 중이겠지
눈이 높은 거다, 굶어봐야 정신 차린다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자기들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신 스스로
‘그냥 쉬었음’이라는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의 그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감상에 젖어
유튜브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그 안에서만 머물고 있었다.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는
불안과 압박, 강박을 안은 채
자기연민이라는 늪에 빠져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자신을
가장 경멸하는 사람 역시
자기 자신이었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쉴 생각이었던 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갔던 몇 곳의 직장.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번듯한 회사들은 아니었지만,
스펙 하나 없는 그가
기댈 수 있었던 유일한 밧줄이었다.
하지만 그 밧줄은
너무 가늘고, 거칠었다.
흔히들 말하는
중소도 아닌, ‘ㅈ소’라 불리는 곳들.
나를 모르는 이들에게, 나를 증명할,
정량적인 자격이나 마땅히 이렇다 할 스펙이 없던 그를
받아 주는 곳은
서류와 면접만 보는 회사뿐이었다.
그런 회사들을 경험하고 나서야
그는 알 것 같았다.
왜 규모 있는 회사들이
그토록 많은 전형과 절차를 두고
사람을 뽑는지.
회사는 배우는 곳이 아니라
증명하는 곳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곳들은
증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그를 절벽으로 밀어 넣었다.
제대로 된 인수인계는 없었다.
“이거 저번에 말했잖아.”
말해준 적 없는 말을 했다고 우기거나,
“내가 언제 그렇게 하라고 했어?”
말을 바꾸는 상사 앞에서
그는 길을 잃은 아이가 되었다.
입사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실무에 투입됐다.
아주 단순한 일조차
그에게는 시한폭탄처럼 느껴졌다.
실수할까 봐 두렵고,
상사의 눈빛에서
‘이 쉬운 걸 왜 못하지?’라는
무언의 압박을 읽어낼 때마다
심장은 터질 것처럼 뛰었다.
왕복 네 시간의 지하철과 버스 보다
그를 더 지치게 한 건
퇴근 후에도 계속되는 생각이었다.
내일 또 실수하면 어쩌지.
결국 그는 도망쳤다.
코로나 후유증이라는 핑계,
긴 통근 거리라는 이유 뒤에 숨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안다.
그 어떤 이유도
지금 이 긴 공백을
온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뉴스 댓글 속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각자의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상사의 욕설을 견디고,
누군가는 잠을 줄여가며
실수를 메우고 있겠지.
그래서 그는 안다.
그 모든 경험들이
지금의 ‘그냥 쉬었음’을
정당화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결국
먹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도.
그는 문득 궁금해진다.
댓글을 남긴 사람들은
어떤 하루를 살았을까.
어떤 삶을 견디며
그 말들을 썼을까.
잘한 것도 없고,
무언가를 끝까지 해본 적도 없는데,
그래도 힘들었다.
이런 내가
힘들어 하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래도 힘든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지쳐 있을까.
남들처럼 치열하게
부딪쳐보지도 않았으면서
감히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나의 고통이
가짜처럼 느껴졌지만,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것이었다.
그는 다시 유튜브를 끈다.
화면이 꺼진 검은 액정 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
지쳐버린
서른셋의 얼굴이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