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여정_확진자로서 투표하기
내 이름 뒤에 '코로나 확진자'라는 문구가 익숙해진지 고작 2일 차, 사전 투표를 다녀왔다. 사실 문자가 계속 와서 까먹고 있으려 해도, '그래 나의 기본권이자 의무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반강제로 다녀왔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나보다 증세가 심한 엄마도 같이 가겠다고 길을 나섰고, 5시 30분경 사전투표소에 도착했다. 정말 말 그대로 '가관'이었달까.
안내 문자에서 5시부터 6시까지 본인 확인을 위한 시간이라고 적혀있었고, 6시 이후에 투표가 진행된다는 말 자체가 어폐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우왕좌왕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첫 번째 매우 의아했던 것은, 확진자들을 칼바람 부는 공터에 세워두고 번호표를 나눠준다는 것이다. 3월 5일 오늘 강풍주의보가 내려질 정도의 칼바람이 길거리를 에워쌌는데, 그 와중에 내 앞과 뒤로 무려 20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줄을 서있었다. 오늘 내내 열이 나던 엄마를 모시고 왔기 때문에 나는 더 화가 났다. 최소한 비닐 천막이라도 쳐놓는 배려 따위는 생각지도 못한 걸까?
돌아가는 시스템을 보아하니, 확진자들 본인 확인을 한 후 해당 정보를 토대로 직원이 일반인들 투표하는 장소에 가서 투표용지를 뽑아와서, 바깥에서 투표를 하는 시스템인 것 같았다. 바깥에 기표소 설치해서 하는 것도 이해하고 다 알겠는데, 다만 내가 이해 못 하겠는 건 이 모든 시스템을 안내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아니 심지어 내가 보기엔 그 직원들도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몰랐다. 6시부터 시작을 하는 건지, 접수표는 왜 주는 건지 등등. 몇 가지의 의문에 대해 시원하게 답이라도 해줬다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거다.
사실 나는 '민원'이라는 말이 매우 익숙한 사람이다. '악성 민원'을 나 또한 받고 있기 때문에, 지금 내가 불만을 털어놓는다 해도 방호복을 입고 뛰어다니는 저 직원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 또한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저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지침과 체계의 잘못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남들에게 불만을 털어놓거나 민원을 넣지 않는다. 왜? 저들도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도 이건 좀 너무했다. 거기 200명 넘는 사람들, 투표하겠다고 롱 패딩 껴입고 목도리 둘러메고 온 사람들 아닌가? 그렇다면 애초에 지자체 차원에서든, 선거관리위원회에서든 최소한의 생각은 좀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위에서도 언급한 최소한의 바람을 막아줄 천막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악성민원인이 되어보았다.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소요되는 것을 깨달았다. 이 과정에서 오늘 또 하나 배운다. '민원'도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대대적으로 확진자도 사전투표 가능하다고 홍보하더니, 역시 제대로 된 것 하나 없다. 홍보에 쓸 돈, 계속해서 핸드폰으로 보내는 문자 비용, 이 모든 것들 합해서 제발 올바른 곳에, 합리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더 잘 운영할지를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역시가 역시 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3월 9일 투표날에는 그래도 나아지겠거니 기대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계시는 확진자분들이 계시다면, 3월 9일에 가실 거면 꼭 핫팩과 목도리 챙기시라는 말 덧붙이고 싶다. 그리고 우리 모두 투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