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문제가 시작된다고 느껴질 때 편지를 써보세요
큰 아이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엄마인 저도 아이도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툭하면 학교 준비물을 빼먹고, 전날 미리 챙겨주었던 것도 가져가지 않는 천방지축 아들래미의 모습에 처음에는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아... 내 아들은 스스로 잘 챙기고 꼼꼼한, 내가 바래왔던 그림 같은 아이는 아니었구나"를 깨달아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아들래미 학교 생활에 조금이라도 구멍이 생길까봐 저는 툭하면 놓고 가는 신발주머니를 학교에 갖다주러 갔었고, 일이라도 나가는 날에는 아이가 학교 생활에서 빼먹은건 없는지 밖에서도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졸이기 일쑤였습니다. 아무래도 학교에 준비물 하나라도 빠뜨리고 가면 큰일나는 줄 알면서 학창시절을 보낸 모범생 엄마라 더 힘겨웠는지도 모릅니다. 오죽하면 차라리 내가 아들 대신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아이와 힘겹게 학교 생활을 이어가면서 아이에 대한 믿음과 마음에 슬슬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이고 아이에게 확인하고, 검사하고, 체크하는 생활을 지속하면서 아이에게 짜증도 늘고, 화도 났고, 때때로 이것 하나 제대로 못하는 아들이 미워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엄마의 이런 마음이 아이에게도 전달되었는지 아이도 유독 엄마에게 짜증을 많이 내고, 더 말을 안듣고 반항하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날, 더이상 아들과 이렇게 지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아이와의 관계인데 다른 곳에 너무 힘을 빼고 있었구나 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바꾸기보다는 아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바꿔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죠. 일단 그날 이후부터 학교에 가지고 다니는 아이 알림장에 편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저의 행동부터 바꿔보기로 한 겁니다. 일종의 행동활성화 기법을 적용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심리치료에서 '행동활성화 (Behavior activation)'는 정서 상태에 영향을 주기 위해 행동을 활용하는 정신 건강 접근법입니다. 행동활성화는 기본적으로 환경이 어떻게 행동과 정신건강을 형성하는지에 초점을 둔 심리학 분야인 행동주의이론에서 출발했습니다. 행동활성화는 긍정적인 정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특정 행동들을 의도적으로 훈련시키는 기법입니다. 즉, 충족적이고 건강한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기분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사랑하는 OO아"로 시작하는 알림장 편지는 아이를 사랑하는 저의 마음,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한 칭찬으로 시작했고, 그 이후에 오늘 챙겨야할 것들을 두 세줄 짧게 적어주었습니다. 어떤 날은 "OO가 엄마 아들이라는게 엄마는 너무 행복해"라는 말을 쓰기도 했습니다.
한 학기 동안 꼬박 매일 알림장 편지 쓰기를 실천하면서 아이의 행동이 조금씩 변화되는 걸 느꼈습니다. 물론, 아이가 학교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것일 수도 있고, 아이를 바라보는 저의 시선이 변화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알림장 편지를 기다리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매일 습관처럼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믿음을 보여주면서 차츰 아이에 대해서도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늘 조바심 냈던 저의 마음도 점점 안정을 찾아갔구요.
아이와의 관계로 고민인 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그 골이 꽤 깊어보이고, 상당히 오래전부터 시작되어 온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이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면서인 경우도 꽤 있습니다. 물론 아이가 ADHD와 같은 문제가 있다면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이와의 관계 문제가 더 깊어지기 전에 '알림장 편지'와 같은 사소한 실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숙제처럼 시작하더라도 꾸준히 지속하다보면 아이든 부모든 누군가에게 변화는 꼭 생길겁니다. 좋은 쪽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