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멍청한 [자살 실패자]의 반성문 -2

비좁은 우물 속에서 성급하게 모든 걸 판단했음을 반성한다.

by 멍텅구리

1편에 이어서... 쓰기 전 사전 정보.


제목은 꽤 도발적이나 실상은 다소 평범하다.

그저 아파트 옥상에 대여섯 번 올라가 땅바닥을 바라보고, 리본으로 올가미를 만들어 열 번 정도 목을 조였을 뿐이다. 스위스 안락사를 검색하고, 질소나 헬륨 등 특수 기체를 구하고자 웹사이트를 뒤져보았을 뿐이다.

나는 실패했다. 나는 지금 살아있다. 숨을 쉬고 손가락을 움직이며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멍텅구리이기 때문이다.

경고 : 필자는 대가리 꽃밭에다 멍텅구리!



내가 타인에게 있어서라면 꽤 재수 없는 인간이라는 말로 끝맺었지.


그래, 나는 재수가 너무 좋다. 하하!


모든 사람의 기준에서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서 쭉 보니 그렇다.


삶의 굴곡이 없지는 않았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다 의미가 있었구나, 말할 수 있는 인생. 좋지 아니한가. 우후후.


뭐어, 남은 시간들이 어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만.

그런데 이상하게도 중, 고등학생 때는 심지어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도 그걸 몰랐다. 그 순간의 내가 너무도 불행하고 안타까워 몸 둘 바를 몰랐다. 자기 연민이 아주 탐관오리 곳간처럼 그득그득했다.


그 와중에 질투니 열등감은 또 드럽게 많아서 알아서 불행을 그러모으고, 자책의 구렁텅이로 기어 들어가고. 가지가지하지 않은가?


종종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을 한다지만, 그 짧은 순간도 결국은 나무에 불과하다. 태어나 씨를 뿌리고, 양분을 담뿍 머금어가며 숲을 이뤄가는 게 삶 아니었던가.


그 와중에 병충해도 만나고, 태풍도 만나고, 불씨도 만나겠지. 그래도 숲은 결국 다시 숲이 된다. 의식하지 않아도 파릇파릇함을 뽐낸다.


(골프장 싫다. 너무너무 싫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끔찍하도록 빛나는 과거를 잊을 수 없다. 미래를 기대하며 걱정하기를 멈출 수 없다. 그리고 조금은 인정했다.


아,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오히려 저 시절, 자살을 매일같이 꿈꾸던 때. '지금 당장의 내 상황'에 한없이 몰입했다.


그래, 힘들었다. 1등에 집착해 누구도 믿지 못했고 교과서 구석탱이 한 줄까지 외우고. 매 시험기간마다 방바닥에서 바르작거리며 울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힘든 건 지금이 더 힘들다. 하루 분량이 중학교 중간고사 전범위와 맞먹는다.


족보? 그거 그냥 수업 정리본(교과서 자습서)에 기출문제집(마더텅)이다. 분량은 일주일에 700페이지. 과목당 10명이 넘는 교수님이 수업을 하신다.


그중 그대로 내는 분도 드물거니와, 설사 비슷하게 내신다 해도 그러면 전교생 다 맞히는 문제 되는 거다. 참, 유급은 상대평가다.


언니한테 들었는데, 다른 과도 족보가 있으며 돈을 받고(!) 거래할 때도 있다더라. 그리고 문제 그대로 내기로 유명한 교수님 거 n장 외우는 거라던데. 가끔 궁금하다. 내가 아는 족보 개념이랑 다른 과들의 족보 개념이 어떻게 다른지.


(특수 상황이라 빡쎄다고 오해하실 수도 있겠다. 우리 학교는 압축 수업을 하지 않는다. 즉 하루 8교시로, 이건 평상시와 같다.)


쏟아지는 강의록을 보면 숨이 턱 막히고, 평균 – 2SD가 뜨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모두 나만큼은 외우고 있을 거 같아 더더욱.


으아아 무서워.


…그런데 참 이상하지. 더 이상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태 전에는 가끔 떠올렸는데, 이제는 힘들고 괴로워도 숨을 참지 않는다. 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심지어 여럿을 아는데도 실행하지 않는다.


왜일까? 여전히 아리까리하지만, 감히 짐작해 본다.


나에게는 그때보다 넓은 세계가 있다.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졌다.


힘들지만, 가끔은 버겁지만 이 시간이 결국 지나갈 것임을 알고, 나를 응원하는 방법을 배웠다.


실패와 좌절, 절망이 있겠지만 이 모든 게 나의 몫임을 안다. 인생이 마냥 밝을 필요도, 밝을 수도 없음을 안다.


텍스트 몇몇에 울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걸 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지만, 각자의 속도가 있음을 안다.


그러니, 나는 살아갈 수 있다. 겨우 공부 따위에 지지 않는다.


…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학교, 그중에서도 중학교과 고등학교라는 공간은 참 특별하다. 조그만 사회라는 단어가 꼭 들어맞는다. 좋은 의미, 나쁜 의미 모두에서.


그 속에서 모든 게 이루어진다. 시험도, 경쟁도, 우정도 때로는 사랑까지 전부.


학교는 가끔 집보다 오래 머무는 ‘’ 요, 또래와 공유하는 교복, ‘’가 있고, 매점과 급식소라는 ‘’까지 겸비했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착각했었다. 그 낡디 낡은 건물만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그 속에서 쉽게 사람과 어울리지 못했다고, 수행평가니 시험에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고, 수련회 프로그램들을 진심으로 즐길 수가 없다고…. 모든 사회에서 동떨어졌다 착각했다.


그래, 나는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그 시절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그게 뭐 어쨌다고.




아주 멍청한 [자살 실패자]의 반성분 3에서 계속…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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