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멍청한 [자살 실패자]의 반성문 -3

비좁은 우물 속에서 성급하게 모든 걸 판단했음을 반성한다.

by 멍텅구리

미리 말씀드린다. 제목은 꽤 도발적이나 실상은 다소 평범하다.


그저 아파트 옥상에 대여섯 번 올라가 땅바닥을 바라보고, 리본으로 올가미를 만들어 열 번 정도 목을 조였을 뿐이다.


스위스 안락사를 검색하고, 질소나 헬륨 등 특수 기체를 구하고자 웹사이트를 뒤져보았을 뿐이다.

나는 실패했다. 나는 지금 살아있다. 숨을 쉬고 손가락을 움직이며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멍텅구리이기 때문이다.


경고 : 필자는 대가리 꽃밭이자 멍텅구리.




벌써 세 번째 이야기다. 시간 참 빠르네.


제목이 자살 실패자의 반성문이나, 시도 자체에는 그다지 반성하지 않는다. 나에게 솔직했던 순간이니까.


솔직함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10년 전에는 옥상에 올라갔다. 조여드는 매듭을 만들어 목에 걸었고. 피가 몰려 잔뜩 붉어진 얼굴을 응시하다, 다시 교과서로 눈을 돌렸다.


아파트 옥상은 높았다. 오래되어서일까, 탁 트였다기보단 좁고 길었다. 구석에는 잿빛 먼지와 거미줄이 있었다.


반대편 동에는 동그란 벤틸레이터가 빙글빙글 돌아갔고, 비스듬한 지붕은 땟물 가득한 빗물받이로 이어졌다. 경사는 제법 가팔랐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추락해 버릴 것처럼.


그래도 난간이 내 키에는 높아 안심했더랬다. 모순적이게도.


지금 내 발걸음은 만화 카페를 향한다. 세 시간에 아이스티 한 잔. 신일숙 작가님은 천재이시다.(인생은 예측불허!) 정말 귀여운 고양이 두 마리도 있다!


아, 오늘은 시험날이었다. 정말로 싫어했던 암기와 평가의 집합. 아직도 나는 결과가 나오면 후회하겠지.


그렇지만 목적지가 달라졌다.


지금의 나에겐 최애 카페의 생초콜릿 라떼가 있다. 꾹 참고 쌓아놓은 웹소설이 있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더 살아낸다. 세상을 시험만으로 채우기엔 내 몫이 너무도 넓으니까.


저번 글은 우물이 얼마나 좁았는지 자조하는 말로 끝났었다.


하하. 그게 어쨌냐니.


그래, 시간이 지났으니 할 수 있는 말이다. 모르는 게 당연하지. 인생은 멀고 시험과 또래는 가까운걸.


초등학생 때부터 혼밥 마스터였지만, 도저히 고등학교 급식실에서만큼은 혼자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코로나로 칸막이가 생겨나도, 급식소에서 혼자인 건 이상하게도 부끄럽고 창피하며 때로는 눈물 나는 일이었다.


솔직히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홀로 줄을 서 검은 교복 틈바구니에서 묵묵히 밥을 먹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교육 시스템은 어딘지 학생들이 더 좁게, 아주아주 조그마한 바늘구멍에만 집중하길 원하는 듯하다.


대학에는 자유 전공이 늘어나는데 고등학교에서는 고등학교 입학 전부터, 심하면은 초등학교 때 진로를 정하라 종용하지 않는가.


생기부니, 그런 거. 봉사활동 하나, 책 하나까지 진로와 연관 지어라 하고.


(요즘은 아닌가? 그래도 세특은 여전히 중요할 거다.)


불만은 그때도 하고 많았지만 나는 교육 시스템의 가장 순한 양이었다.


그 와중에 심지어 책을 좋아해서, 인간관계에 대한 환상은 두껍고 기준은 높았다. 겁도 많다.


경쟁이 너무 싫은데 지는 건 더 싫다. 나는 혼자가 되었다.


‘함께’라는 개념을 배우지 못하고 자랐다. 친구가 내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건 다른 반성문에서 다룰 이야기.


다른 글들을 읽으셨다면 짐작하셨을 수도 있겠다. 나는 아싸다. 세계 최강 아싸 대회가 열린다면 너끈히 순위권에 들 자신이 있다.


뭐, 귀찮기 때문에 신청서도 제출하지 않겠지만.


혼자인 건 정말로 편하다. 이 배달의 민족,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세상이 발전하며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직업이 늘기까지. 집 안에 틀어박히는 건 이제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 선택도 여러 선지 속에 있어야 했다. 흑백이 아니라, 무지개를 탐험하며 골라야 했다.


이번 반성은 무책임하고 나태한 수긍에 있다.


그 시간이 내 전부일 리가 없었는데.


좁은 세계에서 실망을 반복했더랬다. 타인에 대해, 사회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실망은 계단이 되었다. 자살로 향하는 계단.


자녀 분들이 읽는 책을 유심히 보시길. 그 안에는 온갖 종류의 유용한 정보가 있다.


예를 들어, 목을 매달 때는 꼭 매듭이 목뒤를 향해야 한다거나.


만약 옆으로 간다면 틈 때문에 피가 계속 통한다. 괴롭지만 죽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인질용이나 고문으로 쓰인다나 뭐라나.


허벅지 부근의 femoral artery는 아주 두껍다. 심장과 달리 닿기도 쉽다.


그러나 급소라는 사실이 그렇게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기에 ‘실수로 허벅지를 찔렀습니다. 죽일 의도는 없었어요’라고 주장할 수 있다.


… 정말 쓸데없는 정보다. 어휴.


내 대가리는 꽃밭이지만, 그렇다고 낙관적인 사람은 아니다. 참 성가신 인간이지 않은가?


거기다 취미는 글쓰기.


키보드를 두드리는 건 언제나 사람이다. 글 쓰는 장면을 상상할 때 우리는 으레 홀로 고뇌하고 홀로 활자를 적어내는 이를 그린다.


카페에 가도, 도서관에 가도 컴퓨터 앞에 앉은 사람은 한 명.


실패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 사회적 인식도 한몫했다.


다행스럽게도 SNS를 사용하지 않으나, 기사와 칼럼은 여럿 보았다. 비교하는 사회, 만족하지 못하는 사회, 딸깍 성공 선망, 실패 조롱 등등.


진득하게 노력하며 차근차근 발판을 밟는 식의 삶은 이제 올드한 걸까.

알띠감치 비난을 상상했다. 참 무서웠다. 그게 뭐라고.


그 사람들은 실패만을 찾아보는걸. 상처를 조롱하는데 프로인걸. 그 눈에 들어가는 세상은 얼마나 암울할까.


그 비루한 프레임에 이렇게 대단한 나를 두어야 할까!


삶은 여전히 핑크빛이 아니다. 힘든 일 괴로운 일 가릴 것 없이 쏟아진다.


후회? 많다. 걱정? 더 많다. 인간에게는 번데기도 없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그래도 나의 중심이다.


평생을 함께해 온, 함께할 존재를 아낀다. 되도록 광활한 세상을 보여준다.


사는 건 다소 거지 같지만 그걸 또 살아내다니. 나는 참 사랑스럽다.


나는 아주 멍청한 자살 실패자.


비좁은 우물 속에서 성급하게 모든 걸 판단했음을 반성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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