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멍청한 [장기 여행자]의 반성문 -1

무모함과 신중함을 뒤섞어 놓았기에 반성한다.

by 멍텅구리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경고! 필자는 멍텅구리이자 대가리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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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통금 시간이 없다. 자의든 타의든, 둘 다 밖에 나가질 않으니까. 설사 드물게 외출하더라도 모든 일정 및 소요 시간을 부모님이 납득할 수 있으니까. 가까운 거리라면 언제나 데려다주시기까지!


얼마나 늦어도 되는지 몰랐는데, 한 달 동안 집에 안 들어와도 별말 안 하시더라. 한 달씩 두 번 나가봤다.


아, 당연히 매일 전화했다. 가출이 아닌, 엄연한 여행이었으니까.


여행.


이 두 글자 단어를 아주 만만하게 봤다. 왜? 그렇게 자랐다. 내 인생에서 아주 분명하게 꼽을 수 있는 행운이다.


아버지께서는 아주 합리적이신 분이다. 내 예전 글, '아주 멍청한 [한도 계좌 소유주]의 반성문'을 보면 몇몇 에피소드를 확인하실 수 있다.


우리 집 지출 내역에는 어떠한 충동도 섞여있지 않다. 내 개인의 가계부에는 가끔 있다만.


그런 부모님은 여행에 돈을 쓰셨다. '어? 이 달은 왜 이렇게 금액이 튀어?' 해서 보면 다 여행이다. 덕분에 비행기와 타국이 낯설지 않다.


종종 부모님과 여행은 각오가 필요하다는 썰을 보곤 한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해당 사항 없다. 부모님 두 분 다 여행 고수시기 때문이다.


스케줄도 척척척, 여행은 여행자의 마인드로! 나는 힘센 짐꾼이자, 가끔 젊은 감각으로 머리를 굴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햇수로 10년이 넘었고, 자만했다.


여행쯤이야, 늘 하던 건데 혼자 하든 여럿이하든 무슨 상관이야?


착각했다. 이만하면 나도 외국쯤이야 혼자 나갈 수 있겠지, 하고.


어딘지 낯선 공기를 흡입하며, 뜨거운 햇살 아래 나갔을 때. 깨달았다.


내가 아주 멍청한 장기 여행자라는 것을.


내 피와 살을 주신 부모님이나,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다른 개체였다.


부모님의 경험과 나의 성장은 별개의 것이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우리는 어디까지나 인간이었다. 기계가 아니기에 동기화 기능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행 조언은 거의 없다. 내가 아쉬웠고, 또 알게 된 점을 적을 예정이다. 아버지라면 몰라, 나는 누구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짬이 안 되는 걸. 내 예전 글 ‘아주 멍청한 웹소설 작가의 반성문’과 같다.


토익 880점만 딸랑 들고 호주로 떠났다.


혼자서.


400달러도 하지 않는 왕복 비행기표에 눈이 돌아, 뻬르빠보레 딸랑 들고 이탈리아로 떠났다.


혼자서.


카지노도 가고, 칵테일도 마셨다. 별도 보러 가고,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유형의 노숙자를 만났다.


혼자서.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 하나.


나는, 조심의 영역에 방심을, 여유의 영역에 조급함을 두던 사람이었다.


*오늘(9/19), 저번 글(자살 실패자 반성문 3)에 댓글이 달렸다. 요즘 유행하는 유형의 브런치 스미싱, 또는 피싱이더라. 신고만 하고 삭제까진 하지 않았으니, ‘요즘 사기꾼은 이렇구나’ 알고 가시길.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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