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 아주 멍청한 멍텅구리

My only juicy life, sometimes sweet!

by 멍텅구리

갑자기 글감이 떠올라 시리즈를 살짝 끊었다.


내가 살아온 길은 과즙으로 가득 하나, 그게 꼭 달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끈적끈적하고, 에퉤퉤 뱉기도 했다. 혀가 아릴 정도로 달콤하기도, 쓰고 신 나머지 눈살이 잔뜩 찌푸려지기도 했다.


그래도 모두 살아있는 나날이었다.


매분매초에 생명력이 있었다.


언제나 달콤하진 않았지만, 그 모든 순간은 삶으로 꾹꾹 눌러 담은 '인생 100% 주스'였다.


얼마나 선명한지, 얼마나 진한지.


이제 꿀꺽꿀꺽 들이키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더, 내 최애 과일은 레몬이다. 하하!


왜 이런 말을 쓰냐고?


이 반성문 시리즈는 우울하다. 자조적이며, 스스로를 비난한다. 필명부터가 멍텅구리인걸.


가아끔 오해를 사는 듯 해 말씀드린다.


걱정 마시길, 나는 이런 모습까지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이런 형태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 높디높은 자존심의 벽을 허물려면 정면 돌파가 필요했을 뿐이다. 자존감과 자신감을 쌓기 위해서.


이 멍청함은 필터를 빼고, 대신 거울을 가져와 하나하나 뜯어보는 과정이다.


모든 치유는 추함을 직시하며 시작되기에.


눈물 뒤에 개운함이 찾아오니까.


타인과 달리 스스로와는 멀어질 수가 없어서, 아무리 시간으로 덮는들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발목에 걸린 족쇄를 내 개성 담은 발찌로 바꾸는 작업이다.


이후의 글은 브런치 10년이란 주제로 썼던 글이다. 아쉽게도 뽑히진 않았으나, 나름 잘 적어서 자랑할 겸 들고 왔다.




최초의 덕질 상대는 활자였다.


두더지 머리 위 똥 주인을 찾고, 물고기의 화려한 비늘을 동경했다. 책은 또 다른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검지 손가락만 한 종이에 소설 시리즈 제목을 적었다.


타라 덩컨, 아르테미스 파울, 그림 자매, 키키 스트라이크…. 긴긴 목록을 돌돌 말아 복주머니 안에 차곡차곡 쌓았더랬다.


가끔 우울한 날이면 와르륵 펼쳐 놓고 하나하나 펴서 그 환상적인 세계를 떠올렸다. 그러면 거짓말 같이 입꼬리가 동실동실 솟았다.


1분도 걸리지 않았다.


2초.


그 눈 깜빡임 하나면, 종이를 바스락 펼치는 시간이면 충분했다.


내가 다시 행복해지기까지.


그렇게 곧장 사랑으로 또 행복으로 ‘질러갔다.’


덕질은 이렇듯 지름길이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꽤나 자본주의더라.


일주일에 용돈 천 원 받던 코찔찔이의 덕질은 한층 진화했다.


때때로 우리의 사랑은 재화를, 시간을 ‘질러가며’ 완성된다.


차곡차곡 양장본을 모으고, 굿즈를 교환하며 노래를 듣는다. 기꺼이 인생의 한 자락을 내놓는다.


가끔은 손가락질을 받아 가면서도 꿋꿋하게 응원봉을 흔든다. 뭔 실체도 없는 걸 좋아하냐며, 현생에 집중하라고들 하지만… 이게 내 현실이라며 오히려 당당하게 외친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하니까.


그 순간만큼은 모든 영혼을 불살라 ‘지르고’ 싶으니까.


빛나는 지금, 피 같은 돈 다 ‘지른다’. 전부 던진다.


원래였다면 백 번 남짓이었을 인생의 봄날을 지난하도록 늘린다.


하하!


내 사랑을 보며 ‘지렸다!’를 연발하고 싶으니까. 행복 한가운데로 우다다 질러가고 싶으니까!


그 무엇보다 빠른 지름길로!


나의 인생의 지름길을 향해!


(이건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조금 특이하다. 저 ‘지리다’라는 노르스름하고 구린내 나는 동사가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대상들 옆에 붙다니.)


흠흠, 왜 공부 안 하고 글 쓰러 왔냐고 물으신다면, 수학 서술형 답안지가 최고의 캔버스라는 말로 갈음하겠다. 수업을 듣고만 있어도 아이디어가 뿜뿜 떠오르는 걸 어떡하나.


… 목표는 평균이다.


여기서 내 필명을 다시 소개해야겠네. 나는 멍텅구리다.


사실 꽤 오랜 기간 내 덕질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대상은 여럿이 있었으나 모조리. 참 머저리 같은 생각이 따로 없다.


인간에게는 사랑이 필요함에도 의식적으로 거부했다. 이성애(동성애)적 의미가 아니면 쓸모없는 건 줄 알았다.


‘타라 틸랑넴 탈 바르미 압 산타 압 마루 탈 덩컨’이라는 기나긴 이름을 눈 한 번 굴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들 무엇하리. ‘오스카 조로아스터 파드리그 아이작 노먼 핸켈 이마누엘 암브로이스 디그스’는 또 어떻고.


… 결국 도무지 꾹꾹 누를 수 없는 시기가 결국 찾아왔다.


지르지 못한 욕구가 꾸물꾸물 발끝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질척이며 들러붙었다.


야, 언제까지 무시할래. 왜 스스로 불행해지는데?


자신에게까지 솔직하지 못할 거야? 언제까지?


이미 너는 답을 알잖아.


질러!


질러!!


질러!!!


그렇게 활자 덕후는 읽기에 빠지다 못해 스스로 적어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무료 연재 플랫폼, 블로그,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고, 진짜 출간과 예금, 여행까지 질렀다.


시간 없어? 내가 어떻게 해?


하, 다 집어치우라지.


덕질할 때 제일 먼저 치워버려야 하는 게 바로 ‘이성’이다.


이윽고 현재, 브런치 신청마저 질러버렸다.



이제 나의 덕질 대상은 내 인생 자체다.


요즘 거울을 보면 내가 참 좋다. 대단하고 사랑스럽다.


자살을 꿈꾸던 때와 여전히 같은 사람이고 같은 상황이나, 이상하게도 인생 만족도 최상을 달리고 있다.


밤이면 이불을 뻥뻥 차지만, 결국은 사랑한다. 주위를 취향으로 가득 채우고, 꼬물꼬물 이것저것 지르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여러 차이점이 있겠으나, 하나만 꼽자면 ‘질렀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너무나도 나의 것이라 가끔은 슬프지만. 요목조목 이쁜 곳을 뜯어서 덕질한다.


후후, 이 멍텅구리는 또 지르러 간다!


시간, 돈, 사랑, 행복 모두를 나에게 질러가며, 기꺼이 나만의 지름길을 공사한다!


나는 또 무언가를 해내러, 저‘지르러’ 간다!




사랑스럽다.


이를 보지 못한 나날을 반성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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