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멍청한 [급성 장염 환자]의 반성문

아무거나 처먹지 말 걸 그랬다.

by 멍텅구리

... 하. 그렇게 됐다.


물욕에 휘둘리지 말지어다. 으으.


지난번 글에 언급했었다. 몸이 안 좋다고. 상태가 메롱이며 목감기, 코감기에 걸렸다는 둥, 속도 좋지 않다는 중.


타이레놀과 종합 감기약을 먹었지만, 범인은 바로바로 장염.


그날은 글을 올리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졸음 때문이 아니었다. 아파서 질끈 감았다.


배를 누가 칼주먹으로 뚜드려 패는 줄 알았다.


퍽퍽퍽. ...갔나? 응, 아니야! 퍽퍽퍽.


몸이 안 좋으니 죽을 먹었다. (아직 감기라고 착각 중인 상황)


일단 기운을 비축해두어야 하니까.


아주 나쁜 선택이었다.


억지로 청한 잠은 결국 고통으로 느낌표를 꽝꽝 찍었다.


변기를 위아래로 부여잡고 뭐든 줄줄 흘렸다.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차갑게 식기를 반복했고, 충수돌기염이 아님에 그나마 감사할 뿐이었다.


(배꼼과 골반을 연결하는 선 1/3 지점이 충수돌기, 흔히 맹장이라 부르는 곳이다.)


아침에 소고기죽을 돌리며(감기라는 생각은 버렸지만, 먹어야 힘이 나니까...) 엄마한테 전화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타지에서 아플 때가 제일 서럽다더니, 정말이었다.


그날 내과를 방문하였고, 열이 38.5도이며 배에 가스가 그득그득하니 이는 급성 장염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장염.


급성 장염.


어쩐지 뭘 먹으면 아프더라.


어쩐지 위치가 갈비뼈 밑이더라.


통증은 가로였으니, 한 십이지장쯤 되려나.


약을 받아왔고, 금식했다.


범인 음식은 대체 뭐였을까?


금요일 아침부터 상태가 메롱 이었으니, 목요일이 문제일까?


그런데 공장에서 포장된 빵, 꼼꼼하게 밀봉한 프레이크 이렇게만 먹었는데. 감자칩이랑.


이야, 건강하지 못하구먼.


감자침을 너무 듬성듬성 씹었나? 프레이크에 병균이 번식했나? 아니면 목요일에 먹은 아이스크림 빙수?


금요일에 먹은 게 마지막 마무리 타격이었을 수도 있지만, 아니길 바란다.


왜냐? 브런치 뷔페 먹었다... 하.


범인이 뭔지도 모르고 벌벌 떨어야 하다니, 젠장.


현재 내 몸은 물과 죽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설사약 조금.


시험을 쳤는데, 원대한 계획을 도무지 실행할 수 없더라. 대신 전복죽으로 갈음. 맛있었다.


버터장조림비빔밥에 젓갈 한 숟갈 크게 넣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제육볶음과 흰쌀밥을 한 입에 으적으적 우물우물할 수 있었으면 더 행복했겠지만.


피자 치킨 탕수육 도넛 케이크 명란 돈까스 닭강정 반미샌드위치 햄버거


그래, 나 먹는 거 좋아한다.


식이 왜 의식주의 가운데이겠나.


'주'가 든든히 받치고 있을 때 후딱 앞만 가리고 제일 여기에 집중하세요, 하는 의미이지 않을까.

(당연히 내 뇌피셜이다.)


멍텅구리에 대가리꽃밭이지만 뇌세포와 생존 본능은 있다.


입에 처넣지 않을 거란 뜻이다...


식도로 넘기고 싶진 않은데, 맛있는 음식이 머릿속에 불쑥불쑥 떠오른다.


케찹 탕수육, 급식실 비빔만두, 살사 후실리 파스타, 맥도날드 슈슈 버거에 하이토스트. 우리 집 앞 육회비빔밥이랑 육전에 로제 떡볶이, 전주 초코파이!


하지만 너무 슬프게도 말이다.


내 인생이 앞으로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사실만큼 분명하다.


저 음식 중 하나라도, 한 숟갈이라도 입에 넣으면 또 그 지옥이 펼쳐질 것이란 거.


으아, 족발에 막국수, 자주 가는 카페의 밀크 초코 베이스 초코 프라푸치노, 발사믹과 간장을 섞은 양념장에 고춧가루도 살짝 풀고, 바삭바삭한 파전을 찍어먹으면...!


내 식욕은 아주 구체적이다.


A 재료를 B 조리 방식으로 만들고 C라는 변형을 준 음식, D 라거나


E가게에서 파는 F 메뉴! 라거나.


어쩔 땐 중심 재료 G를 제대로 살린 집!


회전 초밥처럼 상황까지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사실, 꽤 즐겁다.


자신의 취향과 기쁨, 행복이 정말 분명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과식도 잘 안 한다. 왜? 저 음식을 먹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딱 기분 좋은 1인분이 식욕을 계속 유지해 준다.


가끔은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것만 하면 나에게 요렇게나 맛있는 보상을 줄 거야! 열심히 하자!처럼.


단종에 아주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


하여튼, 지금은 아직 장염 환자로 투병 중이다.


이번 글의 반성


뭔지 제대로 알고 입에 넣자.


다음 글에는 해외에서 잘 썼던 전자레인지 음식 레시피 몇몇을 들고 오겠다.

금요일 연재
이전 14화아주 멍청한 [장기 여행자]의 반성문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