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멍청한 [친구]의 반성문

'절교야!' 한 마디에 하늘이 두 쪽나던 시절이 있었다.

by 멍텅구리

이유도 까먹은 채 눈물콧물 찔찔대며 서러워했다. 목소리는 갓 태어난 기린마냥 바들바들.


눈앞의 사람이 너무 소중해서, 제발 떠나지 말라고.


나는 겁쟁이이니 네가 먼저 사과해 달라고 우리는 절교를 입에 담았다. 참 비겁하기도 하지.


그때는 몰랐다. 진짜 절교는 깊은 밤 사막과 같다는 걸.


버석한 모래처럼 무미건조했다. 덮을 이파리 하나 없이 시렸으며, 또 적막했다. 머릿속마저 한 점 미련 없이 깨끗했다.


경고 : 필자는 대가리 꽃밭에 멍텅구리!


일단 고백하겠다. 나는 사회성이 떨어진다. 매우.


1대 1 대화는 어떻게든 하겠으나, 그 이상은 참 힘들다.


누구를 보며 말을 해야 하는지, 적절한 웃음 크기는 대체 무언지, 이 사람하고는 A까지 터놓았는데, 저 사람하고는 아직 E도 말하지 않은 상태고.


이 거리감 조정은 여전히 미스테리.


발성법이 문제인지 데시벨은 충분한데 '다시 말씀해 주실래요?' 듣기 일쑤다.


누구는 언제 어디서나 하하호호 분위기 메이커던데, 나는 분위기 다우너.


할 말 못 할 말을 가리지 못하겠어서 그냥 말을 하지 않는다. 최대한 자리도 일찍 피해 준다. 내가 떠난 자리에 남은 사람들은 평소보다 더 빠르게 친해지니까.


몇 년 간의 관찰 끝에 알게 된 사실이다. 아마 나로 인해 불편해졌던 공기가 갑작스레 환기되며 발생하는 현상이지 않을까.


조금 씁쓸하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 길 하나를 찾았으니 그나마 괜찮은 걸지도.


언젠가 뮤지컬 해밀턴 넘버를 쭉 듣다가, 인상 깊은 말을 발견했다.


바로 talk less, smile more.


에든 버가 해밀턴에게 한 조언인데, 바로 실천 시작했다.


그러니 좀 나은 느낌이더라.


(해밀턴은 굉장히 별로다. 지 능력 하나 증명하자고 전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니, 말이야 방구야.

helpless에서 그렇게 절절했으면서 불륜이 웬 말이냐!)


그런 나에게도 친구는 있다.


한 손에 꼽지만. 그마저도 노는 손가락이 많지만.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심지어 초등학생 때는 무려 절친, a.k.a 단짝도 있었다!


서로 집에 초대도하고, 비밀 이야기도 하고 그런 사이 말이다.


누구랑 제일 친하니?라는 잔인한 물음에 망설임 없이 이름을 댈 만한 그런 사람.


개중에는 너무 많이 마음에 들인 사람도, 자연스레 멀어진 사람도 있다.


나는 친구가 되기에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다.


학창 시절에는 더 심했다.


1등 놓칠까 봐 누구든 경계하며 전전긍긍, 성격 급하고 인물이 빼어나지도, 말주변이 좋지도 않다.


같이 놀려면 시간이든 돈이든 내야 하는데 그 둘 다 나에겐 없었다.


요즘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모든 걸 하는데, 하루에 단 10분만 사용했다.


좋아하는 건 아무도 모르는 바비 애니메이션에 판타지 소설. 제 세상에 빠져만 있는 사람. 가족이 타인보다 더 중요한 사람.


... 참 보살이었네, 그 아이들은.


정말 착한 아이도 있었다. 아닌 경우가 더 많았지만.


뭐, 대체로 내 잘못이다.


개중 몇몇은 아마 급식실에 혼자 앉기 싫어서 나랑 말 섞어준 걸 거다.


그 시간대 말고는 대화가 없었거든.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애를 챙겨준다? 이러면 생기부에 한 줄 더 적을 수도 있고, 나랑 같은 조하면 수행평가 점수는 잘 나오니까.


가는 만큼 온다는 말, 인간관계에서는 통용되지 않으니까.


친구라는 거, 참 무섭다. 어렵다.


이래서 사람은 가족을 만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덧. 시간이 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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