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멍청한 [친구]의 반성문

너와 나의 감정은 같은 이름이어도 달랐다.

by 멍텅구리

감정은 마요네즈 같다. 어느 나라 출신이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니까.


나는 소스를 좋아한다. 이리저리 섞어먹는 것도, 새로운 종류를 발견하는 것도 좋아한다.


해외에 나가면 소스 한 통 정도는 꼭 집어볼 정도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 가든 볼 수 있는 소스가 있다.


바로 마요네즈. 케첩이나 식초도 빼놓을 순 없는데, 일단 마요네즈.


참 특이한 점이, 같은 이름을 달고 있어도 나라별로 맛이 다르다.


한국의 것은 오징어 다리 찍어먹으면 제격인 고소한 맛, 일본은 타코야끼 위에 뿌리면 좋은 달달한 맛, 미국은 조금 느끼한가 싶을 정도로 찐한 크리미.


참치마요 해먹기에는 한국 마요네즈가 짱이다.


같은 마요네즈인데, 사용법마저 달라질 정도로 맛이며 제형, 재료의 비율이 다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각양각색의 제품을 보며 '저건 마요네즈'라고 말한다.


감정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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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필자는 대가리 꽃밭이자 멍텅구리!


내 '좋아해'와 당신의 '좋아해'는 다르다.


우리는 같은 단어를 쓰나, 그 의미까지 같을까?


살아온 궤적이 개개인별로 특별하기에, 품은 깊이와 범위가 다양할 것이다.


그렇기에 타인이 말로써 표현한 감정에 지나치게 감동받거나, 또는 무심히 넘어가는 행위도 위험하다.


그 왜, 1984에도 나오지 않는가. 점점 단어수가 줄어드는 사전 말이다. 풍부한 어휘를 제한하는 정책은 협소한 사고로 이어진다.


표현하지 못한다면 시냅스의 반짝임으로 스러질 뿐이다. 뇌공유 기술이 발명되지 않는 한, 내 의도는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책을 읽고, 화술을 배우는 게 아닐까.


단어에 담는 의도는 각자의 삶과 연결된다.


색깔처럼 보편적인 의도도 물론 있다만.


우리는 파랑을 보고 시리다, 물, 차갑다와 연결 짓는다. 빨강은 덥고, 열정적인 다혈질의 색.


색채학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의문이 생겼었다.


'만약 붉은 눈이 내리고, 푸른 피가 흐르는 세계에서는 빨강을 보고 춥다고 생각할까?'


조금 말이 삼천포로 빠졌는데, 요지는 이거다.


'단어 하나로 표현하기에는 개개인의 감정 스펙트럼이 너무도 넓다.'


우리의 절교는 그 간극에서 시작되었다.


나에겐 친구보다 소중한 인연이 많았다. 친해질수록 편하게 대할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가족을 잃으면서까지 유지하고 싶진 않았다.


그 아이에게도 사정은 있었겠지. 하지만 더 이상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끝났다.


정말로 미숙한 대처였다. 요샛말로 하면 회피형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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