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원동력은 열등감
뭐 하나 썩 뛰어난 부분도, 화르륵 불타오르는 열정도 없어서.
그 와중에 남들보다 뛰어난 거 하나는 가지고 싶어서.
못생기고, 몸치, 음치에 사람과 어울리지도 못하는 내가 가진 게, 알량한 이해력 그거 하나라.
공부하면 다들 잘한다 해주길래 매달렸다.
그 결과, 정작 내가 가지고 싶었던 요소들은 전혀 닿지 못한 채 자라 버렸다.
사회성? 저 크레바스 아래에 있다.
처세술? 차라리 불을 삼키라지.
인성? 조인성만 안다.
그렇게 열등감은 자랐고, 더 필사적이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공부는 그럭저럭 해냈다.
그렇기에 티끌만 한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고 뭐라도 된 듯한 자만심은 부풀어 올랐다.
어린 마음에,라는 변명을 붙이기도 민망할 만큼.
알고 보니 나는 하나를 보고 하나를 알기도 어려운 범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스스로를 쳐다보는 걸 참 싫어했다. 그야 너무 뻔하니까.
내가 얼마나 모자란 인간인지, 과거에 얼마나 질척 질척 매달리는지, 욕심은 또 얼마나 그득그득한지...
어렴풋이 다 짐작했다.
3초만 들여다보아도 알 게 뻔했으니까, 칭찬 뒤에 숨었다.
지금은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어떻게?
고등학교 때와 달리, '주어진 일을 언제나 100% 해낼 수 없다'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더 잘 해내는 아이를 보면 질투도 나지만, 서서히 분리도 시도하고 있다. 저 사람과 나는 다른 인간이라는 걸, 그래서 각자 할 수 있는 일, 살아온 길과 앞으로의 미래도 다를 거란 걸.
동시에, 내가 하기 싫은 일도 하기는 해야 하는 걸 알고 있다.
참 어린 생각이다. 사람과 부딪치는 건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다. 후회할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입을 떼야한다.
뭐든 1등이 아니면 밤잠을 세웠던 입시생 시절과는 다른 마인드다.
누군가는 포기라고도 부르려나. 맞다. 그래서 조금 더 행복하다. 더 마음이 단단하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잔뜩 들었다.
그런데 1시간도 되지 않아 과거의 일이 되었다. 그걸 자각하고 나니 정말 신기했다. 예전이었다면 이렇게 말을 했어야, 저렇게 반박을 했어야 이를 부득부득 갈았을 텐데.
생각해 보니, 그 자리에서도 염소 목소리로 변하지 않았었다.
원래는 배에서 꾸륵거리기만 해도 얼굴이 새빨개졌었는데, '어쩔, 생리반응임.'하고 넘기게 되었다.
일종의 성장일까.
수능특강 국어 문학 편은 명작 파티다. 읽으면 재밌는데, 읽어도 안 혼난다!
분명 나는 이 브런치북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한 화에 4000자 분량으로 멍청하디 멍청한 멍텅구리의 반성을 적어나갈 계획이었단 말이다.
형식도 정해봤었다.
아주 멍청한 [~]의 반성문. 내용은 두 눈 부릅뜨고 쳐다보면 참 멍청했던 겉멋들. 마지막에는 솔직한 반성 하나.
그런데 왜 이런 일기로 바뀌었을까.
이유 하나는 확실히 안다.
내 능력이 딸린다. 공부랑 글을 병행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요즘 대학은 융합형 인재, 소통하는 인재에 목숨을 걸었는지 뭐 가지가지한 일들을 잔뜩 벌인다.
진심으로 참여할 수 있는 모든 구멍구멍을 꽉 틀어막아 놓았으면서.
시험 하나의 비중이 72%고, 그 시험 직전에 '빠져도 상관없는 3시간짜리 패논패' 수업을 배치하면? 그 수업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 내용이든,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거다.
아, 이 시간에 차라리 복습할걸.
아, 이 시간에 차라리 잘걸.
그렇게 나는 점점 멍청해져간다.
내가 닿을 수 있는 가지들이 멀어져간다.
며칠 뒤면 이번학기 마지막 시험이다. '덜' 멍청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주간. 제발 그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