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계속 한 번 살아보자
어제, 내리는 곳을 착각해서 바보짓을 했다.
오늘, 파스타 삶는 시간을 착각해 알덴테라 우기는 덜 익은 비빔 후실리 파스타를 먹었다.
내일, 다음주, 내년. 아무리 새각해도 나는 계속 멍청하고 바보스럽고 대가리꽃밭다운 일을 차곡차곡 해나갈 거 같다. 아니지, 같다 따위가 아니라 할 거다.
이건 내가 나로 태어나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이상 확정된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이다.
내가 장애인의 동생이자 바비 팬이며, 한때 자살을 꿈꿨음과 동시에 스스로가 운 좋은 놈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 처럼.
스스로가 실망스럽게 여겨지는 순간은 여전히 때때로 찾아온다.
그건 다소 슬프다.
스스로가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은 순간도 때떄로 찾아온다.
그건 정말 즐겁다.
동전도 양면이 있는데 인생이라고 다를까.
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생이 정말 심플했으면, 하고 바라왔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보다는 라플라스의 악마와 사는 걸 택했다. 지금도 삶의 불확정성이 마냥 달갑지는 않다.
음, 슈뢰딩거의 햄스터 또는 슈뢰딩거의 웜뱃이었다면 더 고민했을지도 모르지만.
요소요소가 다소 뻔했던 인생은 '각이 보이나?' 라는 질문으로 만들어졌다.
딱 보았을 때 목적을 이루기 위한 단계가 펼쳐지는가.
얼만큼의 노력이 필요한지 가늠이 되는가.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가.
그게 나무처럼 펼쳐지는 미래의 가지를 스스로 쳐내는 일인줄도 모르고.
쉬운 일은, 내 통제 안에 들어와 있는 일은 편암함에서 오는 만족감이 있다.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꺼린다. 대화는 어렵고, 사회생활은 미지의 공포 마이 메가 호러블 아포칼립스다.
그런데 내가 너무 멍텅구리에다 대가리 꽃밭이더라.
세상은 나의 것이 아니기에 내 뜻대로 굴러갈 수 없다.
남과 비교해봤자 그 삶의 앞면만이 내게 똑 떨어지는 일도 없다. 그 순간 뒷면도 발생하기 마련이니까.
이 반성문 시리즈는 뭔가 달라져 보려고 시작했는데, 참 이상한 일이지. 마지막 30화가 되어 거울 앞에 서 보니 나는 그대로다.
여전하다.
뭐 어쩌나, 싶다. 내가 앞으로 품고 함께 살아갈 멍텅구리, 끔 사랑스럽고 많이 속터지는 멍텅구리.
반성문은 정말 달라지기보다, 외면하고 싶었던 내 일부의 인정에 가까웠다.
왜 그런 헛짓거리를 했을까. 아, 나 멍텅구리였지. 그러면 충분히 할만하지, 암.
앞으로도 끊임없이 실수하고, 현실도피도 하고, 뒹굴뒹굴거리다 자격증을 때고, 펑펑 울고 사랑하겠지.
나쁘지 않다.
꽤 기대된다.
멍텅구리여, 이 답 없는 대가리 꽃밭아.
앞으로도 같이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