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 편하자고 수긍했음을 반성한다.
읽기 전 경고 : 필자는 멍텅구리에다 대가리 꽃밭이다!
나는 장애인이 아닌 언니를 알지 못한다. 그 시절은 내 기억이 시작되기도 전에 끝났다.
이렇듯 ‘장애인이 아닌 언니’의 어린 시절은 남들보다 짧았으나, 사진과 동영상은 남아있다. 나보다 똑똑하고, 예뻤으며 야망까지 있는 여자아이.
초등학교 5학년 때 교육청 영재원에 들어간 적이 있다. 선생님은 수업 도중 영재의 3요소에 대해 말해 주셨다. 나머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가장 최고로 치는 하나 빼고.
그건 목표에 진득하게 몰입하는 능력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저 그렇구나, 하며 넘겼으나 지금 그 말을 듣는다면 질문 하나를 하고 싶다.
그거, 우리 언니가 하면 똥고집이라던데요?
장애인이 가족일 때, 대외적인 삶은 양방향으로 변한다. 디메리트와 메리트가 둘 다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애초에 인간에게는 각자 개별 특성이 있다. 나와 너를 구별하는 여러 가지 것들. 나에게는 언니의 장애 또한 타인의 다름 중 하나였다.
다른 어른들 보기에는 정상이었던 아이에게 더해진 불쌍함이었을진 몰라도, 우리 또래 아이들 보기엔 꺼림칙한 더러움이었을진 몰라도, 나에겐 늘 저랬다.
디메리트는 장애를 가지며 잃은 일들, 메리트는 반대로 얻은 일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따라서 어른들이 디메리트를 사무치게 느낄 때, 그 부분은 나에게 있어 애초에 비어 있었던 곳이었다. 내 시선에서 ‘난 자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애들과 달랐던, ‘든 자리’를 주목할 수밖에.
조금 머리가 굵어졌을 때, 나는 이용했다. 장애인 동생이라는 위치를.
그건 꽤 쏠쏠했다. 장애인 이해 교육 글쓰기에서 상을 탄다거나, 장애인 이해 교육 시간을 빠진다든가. 후자의 경우, 허가를 내주었던 사람은 원칙적으로 행동하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었다.
그런 선생님조차 내 ‘이 학교에서 저보다 장애인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주지 못하셨지만. 그분은 언니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언니보다야 알아서 해내야 하는 일들의 범위가 넓었다만… 그건 다른 말로 자유였다.
이용의 밑바탕에는 의문 없는 수긍이 있었다. 부끄러운 과거다. 혼자서 교실 뒤편의 아이들을 향해 아니꼬운 시선을 던졌을 뿐, 나는 행동하지 않았다. 여기서 필명이 또 나온다, 어휴.
하나 고백하자면, 나는 학교의 그 누구보다도 장애인이라는 개념을 모른다. 정확히는 보편적인 인식을.
(그 와중에 둘째이자 알아서 잘 크는 딸로서 눈치는 좀 있기에 이득을 주워 먹었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지는,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나처럼 언니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도 않았으면서.
집에서 언니가 어떤지는 할 말이 많지만(인간은 많은 경우, 잡은 물고기에게 잔인하다.) 사회와 언니의 관계만 보겠다.
놀랍게도, 언니는 알아서 자기 일을 했다. 그것도 잘. 내가 지금껏 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하고 싶은 일이 참 많고, 도전도 세 배는 더 하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면이 (많이) 있지만, 저 끈기는 누구라도 인정할 거다.
요즘 세상에 학생들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꿈이 없어요.’ 잖은가. 그런데 그 문제를 언니는 초등학교를 막 들어갔을 때에도 해결한 상태였다. 나는 때로 언니를 질투했다.
학교에서는 종종 ‘너 장애냐.’하고 서로를 놀리곤 했는데, 그 아이들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속성이 니네들의 나사 빠진 짓거리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건데. 둘 다 싫지만 니네보다야 언니가 더 낫거든.
학교에서 보여주는 자료는, 어른들과 또래의 행동은 내가 경험해 온 삶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었다. 시혜적이었으며, 동정과 이해를 부탁했다. 은은한 우월감이 참 지독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더 큰 세상으로 나왔을 때, 투표권을 행사하고 여러 기관에 봉사를 나갔을 때. 이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조금 이해했다. 왜 사람들이 저렇게 ‘더 나은 듯이’ 굴었는지.
몇몇 사람들은 자신이 잠재적 약자임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래도 되었다.
첫인상, 보편적인 시각, 기회. 많은 면에서 그들은 진심으로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자신들에게 결코 해당될 일 없는 사회적 안전망 형성’이 세금 낭비, 시간 낭비, 심지어 비효율적이라 당당하게 주장하는 거였다. 충격이었다.
한국은 비교 문화를 가지고 있다. OECD 수치를 자주 들고 오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나와 남’. 이 둘의 상황을 끊임없이 저울질한다.
이때 장애인은 나보다 아래에 있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바닥이다. 그렇게 내 미래일 수도 있는 언니의 도전이 좌절당할 때마다 나는 덩달아 두려워진다.
언니의 상황에 공감하는 게 아니다.
(나는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 이 또한 반성하고 있다.)
올려치기 심한 사회에서, 지들끼리 멋대로 정한 기준점을 단 한순간이라도 밑돌면, 우르르 몰려들어 누칼협, 알빠노를 퍼붓겠다는 거니까.
사고 한번 없어도 30년만 지나면 자신들이 이 자리에 있을 게 뻔한데도. 이런 이기적인 사회를 원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거니까.
실패는 도전의 어머니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실패의 결과를 일부만이 감당할 수 있게 둔다면 발전이 있겠는가.
심지어 그 일부는 아무리 SNS에 많이 노출되어 봤자, 평균조차 아닌걸.
온실 밖 사회에 나오며 나와 남을 이해했다. 네 삶과 내 삶을 구별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세상의 중심은 아니지만, 나의 중심인 스스로를 아끼려 노력하고 있다.
‘10명이 있으면 3명은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한다. 여기에 매몰된 나머지, 7명을 놓치지는 말자’라는 말도 깊이 새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신경 끄자, 지 인생, 지 알아서 살겠지.’ 이 말이 언니한테는 쉬이 내뱉어지지가 않는다는 거다.
나도 정말 쌩까고 싶은데, 진심으로 서로 없는 사람인 양 살고 싶은데.
가족이라서가 아니다. 언니는 ‘지 알아서 살’ 각이 희미하다. 세상이 그렇지 않더라.
저렇게 물끄러미 보고 있자면, 불안하다. 내 현재와 언니의 현재는 간발의 차, 그야말로 한 끗 차이로 결정되었으니까.
영화 ‘조커’에는 아주 특별한 CG가 사용되었다. 바로 빌딩 숲을 더 빽빽하게 만드는 그래픽. 주인공 아서 플렉의 절망감과 스트레스 상황을 관객들에게도 시각적으로 납득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하늘 대신 콘크리트와 회색 창문. 식물 대신 아스팔트.
저 목적에 대해 처음 알았을 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우리 수도, 서울. 세계 각지의 대도시와 비교하면 녹지가 많은 편이라고는 하나, 1년에 한두 번 버스 타고 올라갈 때면 속이 답답해진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심지어 봄과 가을에도.
무엇보다 사람이 정말 많고, 화단에는 일회용 음료수 컵이 즐비하며, 너무도 삭막하다.
눈 뜬 채로 코 베어가는 저 분위기는 비단 시설과 조형물에 국한되지만은 않으나, 일단 여기에만 집중해 보자.
공간 조성에 종종 고려되는 요소로, 활동 친화성과 배리어 프리가 있다.
전자는 사람들이 기꺼이 움직임을 택하는 공간을 의미하고, 후자는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을 뜻한다.
그래, 인정한다. 언뜻 보면 정반대처럼 보이는 개념들이다. 활동 친화성을 높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느린 엘리베이터를 만들기도 했으니까.
(‘저걸 타느니 걸어 올라오고 말지’를 의도한 디자인이다.)
이야, 인간의 아이디어란. 그 발상에는 감탄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있는 선택지를 더 눈에 띄게, 더 접근가능하게 바꾸기보단 기존의 자유와 편의를 삭제했다는 점에서 눈살이 다소 찌푸려진다.
배려는 어디 엿 바꿔 먹은 건지.
아주 느릿느릿한 엘리베이터라니, 정신적 스트레스는 오히려 높아질 것만 같다.
저 두 개념은 양립 가능하다.
폭이 넓고 하늘이 보이는 골목(PTSD 환자), 턱이 없는 입구(누구나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다.)
계단만 가득, 좁고 더러운 길에 햇볕도 없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사방에서 웅웅 왕왕 소음이 쏟아지는 걸 상상해 보라.
걷고 싶은가? 밖에 나가 활동하고 싶은가? 심지어 몇 년만 있으면 뼈 상태도 메롱이다!
잠재적 약자이면서 미리미리 준비하는 걸 왜 스스로 막는가. 당장 10초 뒤에 계단에서 헛디뎌 다리에 깁스도 할 수 있는 자신에게 왜 그리 가혹한 건가. 왜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비웃고 낄낄대는 건가.
이기적일 거면 제대로, 더 영악하게 머리를 쓰길 제안한다. 약자를 지지한다며 뒤에 숨어서 좋은 공공시설을 같이 누리란 말이다. 고도로 이기적인 인사는 겉으로나마 이타적이다. 보기 좋고 평판도 좋아진다.
안다. 이렇게 말하면 더 이상 ‘장애인의 동생’이라 얻었던 (가끔 도움이 되기도 한) 동정이 사라진다는 걸.
저리 가라지. 물에 넣은 솜사탕처럼 다 녹아 없어지라지. 수긍해서 얻는 게 겨우 그딴 거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말하겠다. 애당초 언젠가의 나를 향한 혐오를 무릅쓰면서까지 가지고 싶지 않다.
지금껏 보아온 정책과 사회 원리는 시소가 아니었다. 남이 내려간다고 내가 올라간다거나, 내가 내려간다고 남이 올라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세금 사용처나 봉사 활동, 기업 원리가 학교에서 줄지어 세우는 등수처럼 작용하는 게 아니니까.
우리는 국민이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나 하나 편하자고 수긍했음을 반성한다.
* 개인사 팔아먹는 게 아주 익숙해 보이지 않은가. 이 에세이는 70%의 진실과 20%의 허세, 나머지는 과장 및 왜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적당히 소설 읽는 기분으로 즐기시길. 세상에는 어쩌면 이런 삶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