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디자인을 무시했음을 반성한다.
스물둘 봄.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진단받았다.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올 게 왔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야, 나는 아주 멍청한 운동 기피자니까.
경고 : 필자는 대가리 꽃밭이자 세상에서 제일가는 멍텅구리다.
운동 안 하기로는 1등도 노릴 수 있는 나이지만, 사실 몸을 움직이는 건 꽤 좋아한다. 매번 게으름과 편안함에 져서 그렇지.
흠뻑 땀에 젖으면 즉각적으로 정신이 건강해진다. 마구 달리면 어떤 상황이든 비실비실 웃음이 새는 사람. 그중 하나가 나이다. 몸이 가벼워지면 체력이 늘고, 또 다른 일거리를 가뿐하게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 머리로는, 경험상으로는 안다.
초중고를 통틀어서 체육 시간을 좋아했던 적은 손에 꼽는다. 피구가 국룰인 세계에서 공을 무서워하는 아이였고, 느릿느릿 움직이기를 즐기는 아이였으니까. 그래도 씨름은 참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밭다리 걸기는 여전히 내 특기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언제나 책이나 교과서, 또는 문제집을 강당에 들고 갔다. 준비운동 직전까지 텍스트를 읽다, 수업에 참여하고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후다닥 벤치로 달려가는 학생.
누군가는 불성실했다고 생각하려나.
오해는 마시길. 활동은 열심히 했다. 정말로.
종목이 저글링이면 될 때까지 1초도 쉬지 않고 공을 던졌고, 배드민턴이면 다음 시간 어깨가 욱신거려서 필기가 힘들 만큼 라켓을 휘둘렀다.
체육 선생님이 ‘멍텅구리를 보렴, 연습은 저렇게 해야 하는 거야.’라고 하셨을 정도인걸.
하하, 온전히 자의는 아니었다. 그러면 내가 멍청이가 아니지.
이렇게 행동하게 된 아주 슬픈 사연을 소개하겠다.
중학교 2학년 1학기 말, 이 멍텅구리는 선생님으로부터 아주 충격적인 소식을 하나 듣게 된다. 바로 내가 최종적으로 전교 2등이 되었다는 선고를.
제가 2등이요? 왜요?
몇 번이고 확인했다. 나는 중간고사는 물론이고 기말고사도 전교 1등을 했으니까. 심지어 2, 3등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시험 평균에서 5점 이상이었으면 말 다했지.
거기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의 2, 3등은 각기 다른 사람이었다. 즉, 내가 독보적인 성적 1등이었단 뜻이다. 그런데, 나는 그 학기… 전교 2등을 하고 말았다.
원인은 바로 예체능.
그래, 내 비루한 운동 신경과, 처참한 미술 감각과 볼품없는 노래 실력이 발목을 잡았다더라.
이 과목들은 100% 수행평가였다. 시험을 치는 과목들은 중간 30%, 기말 30%, 수행평가 40% 이렇게 되어있었고,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예체능은 등수 산출에서 빠진다, 그게 공식적으로, 국가적으로 합의된 방식이다.
그러나 중학교는 애초에 등수부터 비공식. 절대평가고 예체능이고 뭐고 그냥 최종 결과만을 전 과목으로 계산한다.
이게 어떻게 작용되었나 살펴보니… 참 착잡하더라.
나와 다른 교육 과정을 겪으신 분들을 위해, 간단한 예시를 첨부하겠다.
(계산법은 고등학교도 같긴 하다.)
여기 중간고사 비중이 전체의 30%인 과목이 있다. 중간고사를 100점 받으면, 전체 점수의 꼴랑 30점이 채워진다는 뜻이다.
중간고사에서 10점이 앞선다 한들, 전체적으로 보면 이는 겨우 3점.
반면, 체육은 수행평가가 100%다. 따라서 체육 점수 100점은 전체 점수 100점과 같다.
나보다 체육 수행평가 점수가 10점 높으면, 수학에서 뒤처진 30점 이상을 따라잡는 거다!
참으로 야비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술수이지 않은가!
하지만 원칙은 원칙. 나는 눈물을 삼키며 결과를 받아들였다. 침대에 누워 엉엉 울긴 울었다만.
그날 밤. 볼을 타고 흐른 짭짤함을 할짝이며 다짐했다. 연습하자고. 또다시 이딴 상황을 겪지 말자고.
결심은 결실을 맺었다. 중학교에서 남은 3학기와 고등학교 때의 6학기. 총 9학기 동안 나는 학기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꽤 자기 효능감을 느꼈던 경험이다.
물론, 겨우 요만한 결심 하나 했다고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까. 비합리적인 일들이 전부 사라지진 않았다. 이후 더 큰 사건이 발생했다. 노력과 능력만으로 불가능한 세계가 있더라. 이건 언젠가 풀 이야기.
어쨌거나 예체능 점수, 이건 정말 새발의 피였다. 그 당시에는 상당히 불쾌했었지만.
예체능은 재능이라고들 하며, 동의하는 바이다. 그래도 학교 수행평가 정도 레벨이라면 노력이 통한다.
음악, 체육, 미술. 이 세 과목에 대한 재능은 전부 초라했으나, 이 중에서도 가장 심각했던 건 바로 체육.
50m 달리기 기록이 30초인가, 20초가 나왔다. 어찌 된 일인지 기본 점수도 못 받아서 충격이었더랬다.
미술은 선생님과 사이가 나빠서 그냥 최선을 다해보는 걸로 결정.
음악의 경우, 음치이지만 음악 학원을 10년 다닌 짬이 있어 악기는 꽤 연주하는 편이라 패쓰.
마지막, 체육은?
중학교 2학년 2학기. 나는 첫 번째 체육 시간이 되자마자 체육 선생님께 달려갔다.
선생님, 이번 학기 체육 수행 평가는 뭔가요?
그러면 보통 두 개를 알려주신다. 배구 토스라든가, 제기차기라든가, 저글링이라든가, 드리블이라든가, 윗몸일으키기라든가, 이단 뛰기라든가. 답을 듣고 나면 두 번째 질문은 바로 이것.
만점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이제 필요한 정보는 모두 얻었다. 남은 일은 단 하나, 연습.
그날 바로 문구점에서 줄넘기와 제기차기를 사고 집 근처 공원에 나갔다. 종목과 기준을 알아낸 날부터 곧장 시작.
얼마나? 매일. 언제까지? 될 때까지.
참 간단하지 않은가.
초반, 특히 첫 일주일에는 많은 실패를 한다. 나답게도 아주 엉망진창이다.
어머니께서 동행해 주셨는데, 언제나 나보다 먼저 종목을 마스터하셨을 정도다. 내 유전자의 50%는 엄마한테서 왔음에도. 흑흑.
공은 제멋대로 튕겨 나가기 일쑤에, 제기는 곧장 땅으로 낙하.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 요령을 알려주시나, 나는 또다시 허우적대고. 많이 답답하셨을 거다.
그래도 꾸준히, 계속해서 연습한다. 이단 뛰기를 연속으로 성공하거나, 배구 토스를 제대로 성공하는 걸 목표로. 하루 1 ~ 2시간은 내리 움직였던 기억이 난다.
한 달 정도 지나면 첫 번째 수행평가까지 2 ~ 3주가 남는다. 그리고 이즈음, 드디어! 얼추 감을 잡게 된다. 10번 중 5, 6번은 만점 기준을 충족하더라.
여기서 만족할 순 없다. 나는 체육 때문에 발목 잡히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까.
체육 시간은 물론이고 계속 매일 공원에 나가 만점 기준을 10번 중 9번을 맞출 때까지 연습한다. 설령 이르게 만족하더라도, 감을 유지하기 위해 또 연습한다. 수행평가 날까지 쭉.
수행평가 날이 지나면 그다음 수행평가를 준비한다. 이걸 반복하면 적어도 90점은 나온다.
저 불쾌한 2등 직후 학기, 체육 수행평가에서 100점을 받았다.
이 경험들은 ‘하면 된다’라는 때로는 건강하지 못한 마음가짐을 남겼다. 뭐어, 매번 만점만 받은 건 아니었다.
제기차기를 그렇게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본방에서는 다 못 찼다. 진짜 많이 했는데…. 추석 때 큰집에까지 제기를 챙겨갔었단 말이다.
그런데 말이지, 성인이 되고 나서 몸 움직이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더라.
수행평가 만점이라는 목적도 완전히 사라지고, 주어진 건 끝없는 자유.
학기당 20학점이 넘었고, 올 A+이라는 헛짓거리를 해댔기에 시간이 무한정 있었던 건 아니다. 그래도, 밖에 나갈 수 있긴 했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쓰잘떼기 없던 반발심리, 뭐 그런 거였을 수도 있겠다.
몸은 참 정직했다.
원래도 분기별로 찾아오곤 하던 생리가 11개월이 지나도록 오지 않더라. 달거리라는 이명은 언제나 나에게 무색하긴 했다.
솔직히… 편하다. 굴 낳는 불쾌함도 없고, 들쭉날쭉인 감정 기복도 없으니까. 그래도 무월경 1년은 심하지 않나 싶어 병원을 찾았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었다.
초음파상, 혈액 검사상 확실하게 진단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정상 범위 최고점의 두 배 살짝 넘었더라. 나는 진정한 의미의 테토녀다. 하하.
약을 처방받았고, 생리를 시작했다. 하도 오랜만이라 생리 팬티 찾는 데 애를 먹었더랬다. 평소보다 휴지를 5배는 써가며 피를 닦았다. 아, 이런 거였지… 하며.
쓸모없는 자궁이다. 계속 두면 암 생길 게 뻔한데, 차라리 떼고 싶다. 후유증 및 유착 리스크가 있어서 고민 중이다. 질병 때문이 아니니 돈도 엄청 깨질 거고. 에휴.
무슨 선택을 하든, 운동은 해야 한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절대다수의 시간 동안 단련은 생존의 문제였다.
식량을 위해, 버려지지 않기 위해, 전쟁 승리를 위해.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우리는 그렇지 않은 시기를 지나고 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있지만.)
그렇지만 인체는 운동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디자인되어있다.
사회 시스템은 막 초등학교를 들어간 시기부터 8시간 이상의 좌식 생활을 종용하면서. ‘굳이 시간을 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건, 역시 쉽지 않다.
운동은 옮길 운, 움직일 동을 쓴다.
제일 자신 있는 숨쉬기 운동은 허파꽈리만 펴졌다 쪼그라들었다 할 뿐이다. 어떤 글에서는 명상도 운동이라고 하더라.
어쩌면 저 ‘움직임’, 오로지 육체에만 국한하지는 않는다는 걸까. 마음을 퉁당퉁당 자유롭게 옮기는 일도 포함일까.
… 정신 승리지, 이런 말은.
지금 컴퓨터 옆에는 혈액 검사 결과지가 있다. 수치를 보며 수영 가방을 챙긴다.
나는 인체의 디자인을 무시하고 멋대로 의자와 침대에 처박힌 걸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