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해 뇌주름을 파지 않은 것을 반성한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이건 보통 돈을 염두에 두라는 뜻이다.
그만큼 재화는 현대 사회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마이클 샌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가끔 역설적으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준다.
대가리 꽃밭에 멍텅구리지만, 돈이 중요하다는 건 안다.
쓰는 법을 몰라 모으고 있다는 건 행운. 언제까지나 도토리 키 재기라는 건 불행. 이 딜레마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나는 자타공인 가성비 딸이다.
사교육의 경우, 고2 때까지 EBS만 들었으며 고3 때 끊은 메가스터디는 환급받았다. 학원이나 과외를 받지 않았으며 착실히 장학금을 받았다. 결과는 맨 첫 글, ‘아주 멍청한 [모범생]의 반성문’으로 이어진다.
이거 참, 노력을 하긴 했는데 그 결과가 반성문이라니.
필명값을 아주 톡톡히 하고 있다. 흑흑.
인풋의 영역에는 용돈도 포함인 법.
지금까지 내 용돈(정기적)은 이러했다.
초3~중1 일주일 1,000원
중2~고3 0원
대학생 월 30만 원
충분하다면 충분하고, 부족하다면 부족한 금액이라 생각한다.
남들은 얼마 정도를 받는지 몰라서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중간의 특이한 구간을 발견하셨는지.
초3~중1 일주일 1,000원
중2~고3 0원 <<< 아주아주 수상하다!!
대학생 월 30만 원
후후, 0원 시기가 발생한 연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첫 용돈 받는 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초등학교 3학년. 주변에서 슬슬 ‘나 용돈 받는다!’ 소리가 나왔다. 언니와 나는 아버지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용돈 받아보고 싶어요!
아버지는 조건을 거셨다.
그렇다면 3개월 간 용돈 기입장을 성실히 쓰거라!
그날부로 우리는 가계부 쓰는 법을 배웠다. 줄공책에 세로줄을 5개쯤 긋고, 맨 위에 개념을 적고. 날짜 수입 지출 총액 내용 기타. 뭐 이런 항목들이었다.
초딩이 돈을 써봤자 어디다 쓰겠는가. 세뱃돈 꼬깃꼬깃 모아 한 달에 두세 번,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사 먹는 게 고작이다. 적는 게 어렵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성공했고, 일요일마다 용돈을 받게 되었다. 금액은 천 원.
거저 주시진 않았다. 고작 3개월 채웠다고 용돈 기입장을 내팽개칠쏘냐. 줄공책은 그 후로도 오래오래 함께했다.
아버지께서는 일요일 저녁 먹기 전까지 용돈 기입장 검사를 받아야만 파란색 종이 한 장을 꺼내 주셨다.
검사받는 걸 까먹으면? 그 주 용돈은 없는 거지, 뭐.
근데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검사받는 게 귀찮더라.
중학교에 입학하고, 매점을 만났다. 천 원? 알감자칩 2개면 동난다. 콘 아이스크림은 사 먹지도 못한다.
매점 햄버거는 빵빵했으나, 내 지갑은 얄팍했다.
싸구려 초콜렛은 달콤했으나, 지켜만 보는 심정은 씁쓸했다.
내 선택은 용돈 스킵이었다.
차라리 안 가고, 안 보고 말지.
'매점에서 불량식품 사 먹고 싶으니 용돈 올려주세요!'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럼 용돈 없이 어떻게 생활하냐고? 간단하다. 돈을 안 쓰면 된다.
나는 그럴 수 있는 멍텅구리였다.
준비물의 경우 필수품에 해당하니 사 주신다.
이 게임하고 싶고, 애들 다 가지고 있으니 사주세요! (X)
이번 수행평가가 저글링이라서 연습이 필요해요. 저글링 공 사주세요! (O)
요런 상황이었다.
도서관이면 충분한 아이. 유튜브로 노래를 들으면 즐거운 아이. 그게 나다.
용돈을 안 받으면? 용돈 기입장도 쓸 필요 없다!
일주일에 단돈 천 원으로 스트레스를 떠나보내다니. 꽤 남는 장사다.
...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때 포기 말고 협상을 택했다면, 금전감각과 경제 지식이 발전했을까.
뭐, 이런 나지만 금전 관련해 반항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나는 이중장부를 썼으며, 뒷주머니를 찼다.
중학생에게는 고질병이 찾아온다. 중2병.
나의 경우, 쓰잘 떼기 없는 시니컬함과 범죄 소설로 발현되었다.
보통은 국정원, 연쇄살인마 등등으로 스케일이 크나, 간단한 돈세탁이나 자금 출처 변경 정도는 실생활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토요일마다 대학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했는데, 선지급 후정산 방식이었다.
내게 주어지는 돈은 10,000원 한 장. 김밥, 돈까스, 라면 이런 걸 사 먹은 후, 남은 돈은 다시 부모님께 돌려드린다.
5,000원 김밥 정식을 먹고 난 후, 남은 5,000원은 당일 반납.
이 상황, 너무 편리하다.
하하. 범죄 소설에 눈이 먼 멍텅구리가 무엇을 했는지, 감이 잡히시는가?
실제로는 김밥(3,000원)을 먹었으면서 돈가쓰(8,000원)를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거다.
7,000원이 남지만, 반납은 2,000원만.
뿅, 부모님이 존재를 모르는 5,000원이 생겼다!
잔돈은 책상 밑 서랍 깊숙한 곳에 차곡차곡 모았다. 파란색, 황토색 종이를 똘똘 말고, 크고 작은 동전을 옆에 쌓았다.
최종적으로 내 1년 수입, 약 5만 원이 모였다.
그 후로는 돈을 모을 껀덕지도 없고 책 묘사보다 재밌지 않아 멈췄다.
이걸 딱히 어디다 썼던 기억은 없다. 돈은 구매를 위한 것. 결과가 손에 남을 게 뻔하니.
하루 종일 집 – 학교만 왕복하는 애가 숨길 수도 없고.
이거 무슨 돈으로 샀어? 라 물으면 대답할 수가 없다.
그냥 진초록 플라스틱 상자 안에 스릴을 차곡차곡 눌러 담았을 뿐이다.
나름 유쾌한 상황들이었다.
어떠한 평가도 없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쓸 수 있는 돈이라니.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더라.
저 돈은 그냥 까먹어 버렸다. 뒷주머니도 들여다봐야 가치가 생기더라.
3년 뒤, 이사 준비로 다 같이 짐을 챙기다 어머니가 당황스럽다는 투로 물었다.
… 멍텅구리야, 이게 뭐니?
어머니는 초록색 통을 흔드셨다. 당신의 예상보다 묵직하다는 평을 덧붙이시며.
사실대로 답했다. 운이 좋게도 혼은 나지 않았다.
가족 다 같이 치킨 시켜 먹었다.
늘 그렇듯, 맛있었다. 이쯤 되면 치킨은 한국인 소울푸드다.
으아. 이런 면에서, 나는 도무지 날 닮은 아이를 기를 자신이 없다. 요즘은 접할 수 있는 매체가 얼마나 많은지. 이 상황에서 이 유전자를 가진 아이가 얼마나 영악해질지 짐작도 하기 힘들다.
멍텅구리는 금전적인 면에서 뇌가 순수한 채로 자랐다. 금전 감각이 없다. 펑펑 쓰는 것과 반대 방향으로. 언제 어디에 쓰고, 어디에 아껴야 하는지, 분류가 참 어렵다.
8,000원만 넘어가면 다 비싸게 느껴진다. 저게 내 두 달 용돈이었는걸.
1,000원. 이 파란 한 장은 내 144시간이었다.
우리 가족 중 주식을 하는 사람은 아버지뿐이다.
브런치의 많은 분들은 나보고 미련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도 그렇고.
아버지도 코인은 안 하신다. 코인은 (사실은 주식 대부분도) 도박이나 다름없다고 하셨다. 나는 아주 동감한다.
지금까지의 나를 관찰한 결과, 주식이나 코인을 하면 휴대폰에서 눈을 못 뗄 거다. 천 원의 가치가 저렇게 큰데, 주식은 그 수십 배는 되는 금액이 왔다리 갔다리 하는 거잖은가.
수익은커녕 원금마저 보장되지 않는다니. 나는 50년 뒤 미래에서 회귀하지 않았는걸.
오르면 더 안 넣어서 배 아프고, 내리면 돈 잃어서 골 아픈 행위 아니던가. 심지어 가격대를 유지해도 전전긍긍이다. 가뜩이나 안 좋은 시력, 눈깔 빠지게 블루라이트 화면 쳐다볼 이유를 만들어야 할까.
(다른 이야기인데, 이북 리더기를 아주아주 추천한다. 삶의 질 급상승템이다.)
물가는 나날이 오르는데, 최저 시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니 개인은 무얼 해야 할까.
보편적 인식 속 기본적 삶을 위해 하루 대부분을 투자해야 하다니.
인식을 바꾸든 금액을 바꾸든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만하면 괜찮지’의 기준이 한국은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참견도 많고.
정이 많은 건 좋으나, 때로 이 따스한 관심이 차가운 경멸이 될 때가 많아 슬프다.
하여튼, 나는 은행을 믿고 있다.
예금 이자와 적금 이자. 원금 보장, 수익 보장.
추가적으로 신경 써야 할 일? 없음.
설사 은행이 망해도, 내가 가진 재산은 국가 보장 범위 안이다. 여유 금액도 아주 아주 넉넉하다. 흑, 눈물이 또르륵.
요즘은 금리가 많이 낮다. 1년에 3%였던가. 그래도 뭐, 끌어안고만 있으면 0원도 늘지 않으니 넣어야지.
어디 갑작스럽게 쓸 일이라도 있을까 싶어 가만히 둬 봤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이번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예금 통장을 만들 때 수표를 들고 가고 싶었더랬다. 그래서 A 은행에 예금할 금액을 옮겨두고, 실제 은행 지점을 찾았다.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그 계좌가 ‘한도 제한 계좌’ 였다는 것을!
솔직히 말하자면, 제한 계좌라는 건 알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A 은행 앱에 들어가면 저 딱지가 붙어 있더라고. 생활하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어서 그냥 두고 있었다.
미리 앱으로 이체 한도를 비대면으로 늘려 두었기에 장땡인 줄 알았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시더라.
은행에 방문하니 하루에 300만 원만 뺄 수 있다고 하셨다. 앱으로는 꼴랑 100만 원.
이럴 거면 아예 받지를 말던가. 잉잉. A 은행 계좌에 돈을 넣는 행위는 500만 원도, 1,000만 원도 가능했단 말이다.
이렇게 내 피 같은 목돈은 0.1% 남짓 되는 계좌에 꽁꽁 묶였다.
하루에 100만 원씩, 3주 넘게 빼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거기다 나는 대가리 꽃밭에 멍텅구리다. 하루도 안 빼먹고 성실하게 이체할 리가 없지 않은가. 결국 몇 번 까먹어서 최종적으로 1달이 걸렸다.
다 옮긴 후 다시 은행에 전화하니, 고새 금리가 내렸더라. 0.1%. 흑흑.
세이빙 계좌는 그래도 금리가 2%는 된다. 넣어만 두어도 이자가 달에 3만 원이 넘는데! 예전이었다면 7개월을 꼬박 모아야 손에 넣을 수 있는 금액이다!
수표 한 번 만져 보고 싶어 욕심 한번 냈더니, 일이 이렇게 풀릴 줄이야.
왜 이런 상황이 생겼을까.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이면서 안일했기 때문이다.
겨우 중학생 때 돈 없이 살았다고, 뒷주머니를 쓰지 않았다고 금전감각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만 원도, 500만 원도 너무 크다. 허둥지둥 맑디 맑게 약관을 휙 넘기면, 금리가 날아감을 몰랐기 때문이다.
꽃밭인 건 내 대가리뿐. 은행과 사회는 냉혹하다.
돈에 대해 뇌주름을 파지 않은 것을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