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1

by 송생님

호기롭게 '처음'을 글쓰기 주제로 떠올렸지만 처음인 것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처음이 하나하나 특별한지라 이렇게 첫 문장을 쓰는 데까지 30분도 넘게 망설였다. 첫 문장도 일종의 처음이기 때문일까. 문장은 되도록 단문으로 짧고 간결하게 써야 한다는 나름의 원칙을 어기고 결국 서툴게 시작해버린 셈이다.

왼쪽 얼굴이 살짝 뜨끈해질 정도로 볕이 잘 드는 카페에서 기록을 이어가는 이 시간들은 무척 소중하다. 노곤해진 마음으로 인생의 처음을 역순행적으로 되짚다보니 어느덧 유년시절의 기억까지 더듬게 되었다. 그래서 언제부터 글을 이렇게 사랑하게 되었는지 나의 첫 글쓰기에 대해 써보기로 한다.

어릴 적 나는 방이 3개인 집에 살았다. 하나는 안방, 하나는 오빠방, 그리고 남은 하나는 내 방이 아니라 서재였다. 내 방이 없었기 때문에 서재가 곧 내가 노는 방이었다. 사방이 책장으로 둘러싸인, 가운데엔 엄마가 학생들을 가르치던 넓은 책상이 있는 그곳에서 나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책장의 낮은 칸에는 언제든 내가 꺼내 읽을 수 있도록 동화책이 꽂혀있었다. 조금 윗 칸에는 청소년 도서, 그리고 더 윗 칸에는 엄마의 수업자료와 학생들의 과제물이 있었다. 내 손이 간신히 닿는 그 칸까지 빼곡히 끼워진 모든 활자가 어린 시절 영감의 원천이었다.

최근 읽은 글쓰기 관련 책에서 저자는 글쓰기에도 로젠탈 효과*가 작용하다면서 글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고 하였다. 저자에게 로젠탈 효과를 일으키는 사람은 바로 아내이다. 그에게 아내는 최초의 독자이자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저자 스스로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믿게 만들어주는 존재다. 돌이켜보건대 나한테 그런 존재는 엄마였다.

그 시절에는 학교에서 '아나바다 운동'이 유행(?)이었는데, 어린이 잡지에 환경 수기 글을 써볼 기회가 생겼다.(아마도 글쓰기를 가르치셨던 엄마의 권유였으리라) 그래서 여덟살의 나는 서재에 앉아 처음으로 글다운 글을 썼다. 일기를 제외하고는 누군가에게 보이는 첫 글이었다. 먼 훗날 잡지에 실린 글을 다시 보며 초등학교 1학년치고는 꽤 잘 쓴 거 같아서 엄마에게 그때 글을 고쳐주었냐고 물었다. 엄마는 서재에서 내가 글을 쓰는 동안 한 번도 간섭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대신 열린 문틈으로 잘 쓰고 있는지는 가끔 들여다봤다고. 공모전이 뭔지도 잘 몰랐을 어린 나는 어떤 마음으로 넓은 책상에 앉아 그렇게 열심히 글을 썼을까? 한 번쯤은 마주 앉아 물어보고 싶다.

글을 완성하는 것은 어렵지만 엄마는 아이가 아이답게 쓸 수 있도록 글을 함부로 고치지 않았다. 대신 다 쓴 글을 누구보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읽어주고 칭찬하는 것으로 가르침을 대신했다. 단언컨대 그때의 첫 글쓰기 경험으로 나는 글쓰기를 계속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엄마는 내가 쓴 글을 좋아한다. 어쩌면 내 논문을 진지하게 읽은 사람은 엄마가 유일할지도 모른다. 내가 블로그에 혼자 끄적이는 글도 엄마에겐 딸의 소식이고, 잘 쓰인 글이다. 이제는 안다, 엄마가 늘 내게 글을 잘 썼다고 말해주는 것은 사실은 내 글이 엄마에게 이미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익숙한 문체를 잘 썼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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