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17

by 송생님

죽을 거 같은 상실의 아픔도, 영원할 거 같던 유년시절 친구관계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흐려진다. 사랑은 또 찾아오고, 단짝을 대체할 시절인연들은 끊임없이 나타난다. 인생에서 처음 이별을 경험했던 것은 키우던 반려동물의 죽음이었다. 예상 수명보다 훨씬 오래 살다가 순전히 자연의 섭리에 맞게 죽은 그 동물은 마지막까지 삑삑-거리며 울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그 앞에서 정신이 까무룩해질만큼 울다 지쳐 잠들었고 눈을 떴을 때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죽음을 지켜볼 순 있어도 막을 수는 없었다. 대학생 시절 첫사랑이었던 친구와는 꽤 성숙한 이별을 했다. 우리가 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지에 대해 카페에서 몇시간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평소처럼 나를 집 앞에 데려다준 그는 잘 지내라며 나를 안아주고 떠났다. 그것이 정말로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첫사랑의 이별이 아쉬워 한동안 그를 그리워하기도 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마지막을 그렇게 두었던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이별의 시기를 조율해볼 순 있어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다음 만날 때에는 네가 좋아하는 종로에서 보자"라는 말은 분당의 어느 거리에서 헤어진 오래전 애인의 말이었고 "요즘 충무로에는 영화가 없어"는 이제는 연이 다해 자연스레 멀어진 전 직장 동료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제 나는 그들을 만나지 않을 것이고 혹 거리에서 스친다고 하더라도 아마 짧은 눈빛으로 인사 정도를 하며 멀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 말들 역시 그들의 유언이 된 셈이다. 역으로 나는 타인에게 별 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 박준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마지막은 완전한 끝보다는 완전하게 기억될 선명한 족적을 남긴다는 성격이 더 강하다. 물론 모든 마지막이 기억에 남지는 않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기억은 더욱 또렷해진다.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 마지막으로 먹었던 음식, 마지막으로 함께 갔던 곳. 대단치 않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억이 파도처럼 나를 덮쳐올 때면 마지막이란 것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망각할 수 있어서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고 하는데 마지막이라는 의미부여가 그것을 방해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마음에도 없이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을 건네곤 하는 것일까. 인연이 닿으면 또 보자고, 기약할 수 없는 다음을 기약하며 마지막을 유예해보려고.


마지막을 겪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한가지 더 있는데, 바로 처음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새부턴가는 인연을 새로 만드는 일에 신중해졌다. 시작되면 언젠가 또 끝나는 것이 무서웠다. 교감도 잘 안되는 작은 설치류 한 마리를 떠나보내는 일도 그렇게 슬펐고, 맞지 않은 연애도 마지막을 겪는게 힘들어 질질 끌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이 인생에 와르르 다가와도 가까워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것이 일면 바보같은 행동이었다고 또 한번의 마지막을 앞둔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돌아보니 조심히 들어갔냐는 메세지가 마지막이 된 인연도, 다음에 또 놀러오라는 말이 마지막이 된 인연도 그 시절 나를 살아가게 했으니 다 의미가 있었다. 서로가 마지막인 줄 모르고 쌓아올린 시간들이 있기에 우리는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처럼 또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질 것이다.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늘 유언인듯 마음에 후회가 없을 진심을 건네며 살아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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