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화

#16

by 송생님


대학원생 때였다. 내가 다닌 교육대학원은 퇴근 후 수업이 열리는 야간대학원이었다. 입학할 때만 해도 약간의 캠퍼스 낭만을 꿈꿨던 것과 달리 해 질 녘에 와서 수업만 듣고 집에 가기 바빴다. 수업을 들으러 오는 동기 선생님들은 갖은 이유로 지쳐있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 또 학폭이 열렸어요, 부장회의는 왜 이렇게 길어지는지, 아휴 말도 마세요. 본업은 직장인이요, 부업이 학생인 어른들을 데리고 수업을 끌어나가는 교수님도 여간 쉽지 않았으리라.


그중 한 교수님께서는 대학생보다는 아무래도 열의가 떨어지는 대학원생의 수업이 특히나 힘들었던 듯했다. 반응을 열심히 해주었으면 좋겠다며 그녀는 수업 중에도 여러 번 답답해했다. 그렇지만 그 상황은 지켜보는 나 또한 답답했다. 나는 사람들이 왜 이 수업에서 더더욱 반응을 하지 않게 되었던 건지 알 거 같았기 때문이다.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직업이 교사다. 반응이 없는 수업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처음에는 열심히 반응을 했더랬다. 그때마다 교수님은


"아니 그게 아니고요."

"아 지금 틀리셨어요. 그거는요, "


라는 부정적인 리액션이 주를 이뤘다. 어떤 대답은 정말 틀린 말이긴 했으나 내가 보기엔 꼭 그렇게까지 콕 집어낼 필요는 없어 보였다. 또 어떤 대답은 옳다, 그르다를 말할 수 없었으나 원하던 대답이 아닌 경우에도 이런 리액션이 뒤따랐다. 어쩌다 맞는 대답이 나왔을 때는 "네~"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어긋난 핑퐁 같은 대화를 관전하다가 학부 때 배웠던 강화이론이 떠올랐다. 강화이론에 따르면 어떤 행동이 반복되기 위해서는 긍정적 강화가 필요하다. 즉 바람직한 행동이 일어났을 때 칭찬이나 보상 등의 긍정적인 반응이 뒤따르면 그 행동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어떤 반응에 대해 부정적 피드백이나 무반응이 지속되면 그 행동은 점차 줄어들게 된다.


교수님과의 대화에서는 어떤 대답이 나오든 대체로 부정적이었고 정답이어도 특별한 긍정적 피드백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수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반응 의욕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제로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점점 말수를 줄여갔고 수업 분위기는 더욱 침체되어 갔다. 긍정적 강화가 결여된 상황에서 ‘정답을 말하는 것’ 자체가 그다지 동기부여로 작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종종 타인과의 대화에서 이때의 수업을 떠올리게 된다. 나도 때때로 "너는 진짜 맞는 말만 해."와 같은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화에서 무조건적 공감은 이해할 수 없지만 무조건적 수용은 해보려고 한다. 공감하지 못한다고 하여 상대방의 감정까지 부정할 필욘 없으며 그 사람이 그렇게 느낀 거까지는 내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나 또한 조금 더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나를 인정하고, 내 선택을 신뢰한다는 감각은 누구에게나 좋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애쓰지 않아도 물 흐르듯 대화가 흘러가는 사람도 있다. 내 말의 의미를 가타부타 설명할 필요 없이, 군더더기 없이 나누는 깔끔한 대화는 나이가 들수록 귀해지는 듯하다. 왜 어떤 사람과는 잘 흐르고, 어떤 사람과는 막힐까. 온전히 표현하긴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오해하지 말고 들어.",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따위의 군더더기가 많아질수록 대화는 불편해진다는 것이다. 대화라는 건 진실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려 깊어야 한다. 그런 대화들은 나누고 나면 직감적으로 기분이 좋다. 곱씹어보았을 때 생각할 거리가 있고, 그 사람의 세계가 흥미롭게 느껴져서 다시 대화하고 싶어진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일까? 오늘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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