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20대 초반에 박효신이라는 가수를 좋아했다. 잠이 안 오던 밤에는 누워서 라이브영상을 자주보곤 했는데 그는 엄청 감성적인 사람이라 유독 노래 부르다가 우는 영상이 많았다. 10여 년 전 내가 갔던 콘서트에서도 야생화를 부르다가 벅차 오른 감정 때문에 클라이맥스를 부르지 못했었다. 그런 모습을 혹자는 프로답지 못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매일 똑같이 부르는 자신의 노래를 늘 처음인 듯 몰입하여 감정을 쏟는 모습이 내가 그를 좋아했던 이유인 거 같다. 굳이 음원이 아닌 콘서트를 가고,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는 건 그 노래를 부르는 순간의 진심을 전달받기 위함이니까, 어쩌면 관객의 니즈를 가장 잘 충족하고 있는 가수 중 하나라는 생각도 한다. 박효신 노래는 <추억은 사랑을 닮아>, <좋은 사람>, <사랑한 후에>와 같이 절절한 사랑, 이별 노래들이 많지만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1991年,찬바람이 불던 밤…>이다. 이 노래는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로, 어머니를 위한 헌정곡이다. 매년 찬바람이 불 때쯤이면 이 노래가 생각나는데 듣다 보면 나의 유년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나의 아빠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성실한 사람이다. 한 직장에서만 오랜 세월을 근무하고, 정년퇴직을 하기까지 한해도 빠짐없이 일을 한 것은 성실이 최고의 미덕이던 베이비붐 세대에서도 흔치 않았으리라. 그 긴 세월 동안 그는 지각을 한 적조차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다. 지각은커녕 늘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여 학창 시절 나는 아빠가 나가는 소리에 느지막이 일어나곤 했다.
그런 워커홀릭들은 대개 일과 가정을 두루 살피기가 어려운 법인데, 아빠는 가족들에게도 무척 헌신적이었다. 그렇게 쉼 없이 일해왔건만 나의 유년시절 많은 시간들은 아빠와의 기억으로 물들어있다. 고속터미널 백화점 안에 팔던 즉석 피자바게트는 내가 좋아하던 음식이었는데, 아빠와 그 바게트를 사서 분수대에서 나눠먹곤 했다. 그러다가 날이 좋을 때는 바게트를 먹고 한강에 갔다. 한강을 가는 길엔 편의점에서 꼭 건빵을 사야 했다. 건빵에 들어있는 달콤한 별사탕은 내 것이었고, 건빵은 한강에 사는 오리들의 밥이었다. 오리들이 건빵을 먹으러 가까이 다가오는 덕분에 어릴 때 오리 구경은 실컷 했다. 텁텁한 건빵은 나에게 도대체 왜 먹는지 모를 음식이었지만, 아빠는 어릴 때 건빵을 많이 먹었다며 남은 오리밥을 입에 넣었다. 그거 말곤 별달리 먹을 간식이 없었단다. 초등학생 때에는 돼지와 쥐, 그 중간쯤에 있는 기니피그를 키웠다. 청계천 동물 시장에서 산 기니피그의 이름은 '기순이'였는데 기순이와 나, 아빠는 자주 산책을 다녔다. 하루는 기순이를 가방에서 잠깐 꺼내주었는데 괘씸하게도 기순이가 갈대밭 사이로 탈출을 감행하는 것이 아닌가. 자유를 찾아 떠난 돼지쥐! 야생동물다운 질주에 어린 나는 결국 기순이를 놓쳤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때 아빠가 내 키보다도 큰 갈대밭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재빠르게 기순이를 잡아들었다. 그 모습이 어린 나의 눈에 할 수 없는 일도 다 해내는 영웅처럼 보였다. 덕분에 기순이는 제 수명을 다할 때까지 우리 집에서 포동포동한 여생을 보내었다. 초봄에는 산책길에 온통 쐐기라는 애벌레가 바닥을 기어 다녔는데, 도저히 그 길을 디딜 수 없어서 울상이 된 나를 업고 같이 산책을 다녔다. 머리 위 나무에서 쐐기가 떨어지기도 하니까 한 손에는 우산을 받쳐 들고. 날씨가 좀 선선해지면 2인용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니기도 했다. 아빠가 늘 그렇게 태워준 덕에(?) 나는 어른이 될 때까지 두 발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그래서 20대 때 사귀던 남자친구와 자전거를 배우는 낭만 데이트를 시도했지만 그는 결국 나를 가르치는 데에 실패했다. 어른이 되어서 배우려니 도저히 균형을 잡지 못하는지라. 역시 몸으로 배우는 일은 적절한 때가 있는 거라며 자전거 배우기를 포기하려 했는데, 그 얘기를 들은 아빠가 자전거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공터에서 아빠와 자전거를 몇 번 연습하다가 언젠가부터 혼자 두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날씨가 좋을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곤 한다. 아빠는 서른이 넘은 다 큰 딸을 아직도 사람으로 만드는 중이다.
이제야 말하건대 나는 기억력이 나쁜 사람이다. 애석하게도 어릴 때의 기억은 기록되어있지 않는 이상 많이 잊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아빠와의 기억은 이렇게 선명하다. 희미한 선도 몇 번이나 긋고 그으면 선명한 선이 되듯이 아빠가 내게 만들어준 하루하루의 일상과 사랑이 얼마나 한결같았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진다. 잊히는 기억 속에 기억나는 선명한 시간들이 내게는 곧 사랑의 증표다.
p.s. 이 글을 거의 30년째 같은 길을 산책하는 산책메이트에게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