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쓸모

#14

by 송생님


'쓸모'라는 말을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썩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가 '쓸모'라는 말을 보통 쓸모있다기보단 쓸모없는 상황에 많이 쓰기 때문일 것이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넌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야.' 쓸모란 본래의 가치를 뜻하는 중립적인 단어인데 언제부턴가는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쓸모는 점점 따뜻함을 잃어버린 단어가 되었다.


최근에 나눈 대화 중 우리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는거라는 상대방의 말이 떠오른다. 물론 그녀는 웃으며 그 뒤에 '오해는 하지 말고 들으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를 필요로 해서 만난다는 것. 예전에는 자꾸 필요한 때만 나를 찾는 것이 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차피 우리는 모두 필요할 때 서로를 찾는다. 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시간을 들여 누군가의 문을 두드릴 이유가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정말 '쓸모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 -이런 일은 정말 흔하지 않지만- 세상에는 다른 종류의 쓸모를 건네는 사람이 있다. 필요해서 찾을까 말까, 염치없는 거 같아서 고민만 하고 있는데 필요할 때 자신을 찾으라며 선뜻 얘기해주는 것이다. 더 이상 나에게 어떤 쓸모도 발휘할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존재의 쓸모'를 느끼는 것이다. 길가에 핀 예쁜 꽃을 보고 쓸모를 묻지 않듯이, 내 옆에 누워서 잠만 자는 반려동물에게 그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듯이. 그런 존재들은 이유없이 거기에 있고, 그것만으로 마음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 누군가에게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것만이 나의 쓸모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쓸모의 강박을 느끼며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그저 선한 줄로만 알았던지도 모른다. 이제는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관계가 아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싶다. 그런 관계 안에서는 침묵도 대화가 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채워진다.


그렇지만 잠시 필요할 때만 나를 찾아도 좋다.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감각은 누구보다도 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어쩌면 '쓸모'란 누군가를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 한편에 남아있다는 작은 흔적일지도 모른다. 그 흔적이 오래도록 남아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쓸모있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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