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궤도

#12

by 송생님


지난여름 나는 <궤도>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 궤도는 폐쇄된 공간인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여섯 명의 우주비행사가 단 하루를 보내는 장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이들은 하루 동안 열여섯 번의 일출과 열여섯 번의 일몰을 경험하며 인간과 지구, 그리고 우주의 관계에 대해 고찰한다. 이처럼 태생적으로 '우주'와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험할 수 없는, 상상할 수밖에 없는, 미지의 세계 같은 것 말이다. 반면 나는 '우주'라던가, '심해', '미스터리' 따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지극히 경험주의적인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이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은 어느 순간 내가 우주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주비행사들은 극한의 환경 속에서 우주와 관련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지구를 관찰하며 특별한 하루를 보낸다. 지구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하염없이 지구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은 멀리 떠나온 지구와 지구에서의 일상을 그리워한다. 기술의 발달로 지구에 있는 가족들과 소통하고, 지구로부터 물자를 전달받기도 하지만 결코 지구와 살갗을 맞댈 수는 없다. 해외에서의 삶은 때로는 누군가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는 특별한 삶이다. 하지만 이따금씩 자전거를 타고, 편평한 땅 위를 산책하며,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던 그 시간들이 새삼스레 그립다. 그런 것들이 너무 당연할 때는 특별한 일들만이 내 삶을 행복하게 해 준다고 착각하곤 했다. SNS를 통해 들려오는 친구들의 결혼과 출산 소식은 지구가 성실하게 하루에 한 바퀴를 자전하는 모습과 닮아있다. 때가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나 가정을 만들고, 자연스레 나이 들어가는 그 궤도는 누가 정해준 것처럼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쯤 그 궤도를 얼마나 이탈해 있는 걸까. 밤이 되면 수시간 내에 반드시 아침이 오는 것처럼 인생이 계속 예상가능한 범주 안에 있다면 좋겠지만, 내가 방향을 틀어버린 궤도에서 언제쯤 반환할 수 있을지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어쩌면 궤도가 찌그러진 혜성처럼 그대로 뻗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군가는 그래서 불안하고, 누군가는 그래서 즐겁다.


너무 당연한 일상들과는 멀어져 버린, 우주처럼 깜깜하고 조용한 방에 홀로 누워있다 보면 필연적인 외로움에 부딪혀버린다. 봄에서 여름, 혹은 여름에서 가을로 갈 때 관성적으로 겪는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삶을 부단히, 잘 살다가도 결국 '외로움'이라는 블랙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우주 같은 공간에 홀로 떨어져 나와서 더 강렬하게 느끼는지는 모르겠다. 한편 태양이라는 단단한 구심점이 있는 지구는 태양과 결코 가까워지지는 않지만 태양에게 양분을 받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 덕에 지구는 우주에 있는 그 어떠한 존재보다 생명력이 넘친다. 내가 생각하는 건강한 (나를 외롭게 하지 않을) 관계 또한 그러한 모습이다. 하물며 지구도 의지하며 사는데 우주의 먼지와도 같은 인간은 구심점 없이는 어디에 있어도 늘 우주에 있는 듯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외롭지 않으려 부대끼며 살아 보지만 그 순간들이 매번 행복했던 거 같지는 않다. 불행한 동행과 행복한 외로움 사이를 방황하며 돌고 돌다 보면 생각의 범위에는 벽이 없고, 우주처럼 끊임없이 확장되기만 한다.


우주비행사들이 지구에 돌아가며 심각한 부적응을 겪는다고 한다. 걷는 법을 잃어버려 제대로 서있지 못하기도 하고, 물건을 떨어트린 다음 바닥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단다. 잠시 머물던 이 삶을 떠나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갔을 때도 분명 낯설게 느껴지는 일들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에너지를 써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늘 그랬듯 시간이 적응을 도울 것이다.


지구는 자전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그 축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으며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이 행성은 중심에서 밀려나 주변부로 좌천되어 무언가를 따라 도는 존재다. 작은 혹 같은 달을 빼면 무엇도 지구를 따라 돌지 않는다. 이런 존재가 우리 인간을 품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계속해서 알려 주는, 나날이 커지는 망원경 렌즈를 닦는 우리를. 머지않아 우리는 우리가 우주의 주변에 있을 뿐 아니라 우주가 주변이 뿐임을, 중심은 없고 그저 어지러이 왈츠를 추는 것들의 무리뿐임을 깨닫는다. (P.52)


인간도 선해서 아름다운 게 아니란다. 살아 있으니 아름다운 거야. 어린애처럼. 살아 숨 쉬며 세상을 궁금해하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에. 선한지는 상관없어. 눈에 빛이 감돌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야. 가끔은 파괴적이고 상처를 입히고 또 가끔은 이기적이지만, 살아 있기에 아름다워. (P.93)


한번은 자신이 만약 우주에 있으면 적나라하게 드러난 지구의 아름다움을 마주하고는 무력하게 날마다 울며 시간을 다 보낼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절대 우주에 갈 수 없다고도 했다. 애석하게도 자신은 단단한 대지가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안팎으로 안정감을 원하며 삶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그걸 단순화해야 하는 사람이다. ..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기적처럼 내면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외면을 야심 차게 무한대로 확장한다. 집을 우주선으로, 들판을 우주로 맞바꾼다.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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