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유서에도 거짓말을 쓴다

- 거짓말 고찰

by 송생님


사람은 죽은 뒤에나 읽혀지는 유서에도, 나만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한다. 그러니 남을 속이는 거짓말은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공들여 꾸민 얼굴로 나와서 씻고 대충 나왔다고 말하는 것 정도는 썩 귀여운 거짓말일테다. (그렇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또 새로 자른 머리가 어울리지 않는 친구에게 머리가 잘 됐다고 칭찬하는 것을 보통 '하얀 거짓말'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하얀 거짓말'이란 말은 있지만 '까만 거짓말'이라는 말은 없다. 그 말은 거짓말이 본래 까맣고 나쁘다는 뜻이다.


나쁘다는 표현도 조금 더 완곡하게 바꿔보자면 그냥 어떤 거짓말에는 거부감이 든다. 어떤 거짓말을 정의하긴 어렵겠지만 안해도 되는 거짓말, 안하는 게 더 나을 거짓말들 말이다. 그 거짓말이 거북한 이유 중 하나는 사실은 내가 그런 류의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를 써서 거짓말을 해야될 이유가 보통 내게는 없었다. 중학생 때 반 친구 중 한 아이는 늘 집이 잘 사는 척을 했다. 냉장고가 몇개고, 집이 몇 평이고,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기분좋게 늘어놨다. 하루는 다른 친구가 내게 와서 쟤 허언증이 있어,라고 말했고, 내 머릭 속 국어사전에 '허언증'이라는 말은 그때 처음 각인되었다. 그녀의 거짓말을 눈치챈 친구들은 하나 둘 그녀와 멀어졌고 -딱히 자아가 없었던 나 또한 자연스레 그녀와 멀어지긴 했지만- 내겐 '그녀에게 왜 그렇게 많은 거짓말이 필요했을까?'가 더 깊은 기억으로 남았다.


최근 썼던 서평을 떠올리며, 타인이 정교하게 씌워둔 페르소나를 존중하고 싶기 때문에 나는 종종 알아채고 마는 거짓말들을 모른 척 했다. 저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요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 '그런 거'를 여전히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나는 그 사람을 한결같이 대했다. 바람을 피는 사람들도 외도는 나쁘다고 말하기도 하니깐. 사람들은 종종 내게 그 사람의 모순을 폭로했고 나는 많은 진실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는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었다. 가끔은 지나치도록 합리화를 잘 하여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 알고 싶은 비밀이 있는 법이지, 라고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레드 플래그가 몇번이고 떴지만 나는 매번 나의 진실에 따라 사랑을 했고, 그렇게 빨간 불을 안 보고 길을 건넌 사람처럼 차에 치였다.


답을 듣고 싶지는 않지만 묻고 싶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해야만 했는지. 리플리 증후군은 스스로마저 속이는 조현병이나 망상장애와는 달리 스스로 거짓말을 인지한 채로 거짓말을 하는 증상이라는 점에서 의학적으로 존재하는 정신질환은 아니라고 한다. 쉽게 말해 우리가 흔히 곤란한 상황에 거짓말을 내뱉는 것, 딱 그만큼의 증상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사람에게(여기서는 그냥 난처하면 거짓말을 곧잘 하는 보통의 사람을 말하기로 한다) 답을 듣는 것은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다. 숨쉬듯 뱉는 거짓말에서 진실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습관성 거짓말에는 특징이 한가지 있는데 매번 거짓말을 하는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배려하려고, 의도치 않게, 묻지 않아서 그냥, 그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거라서 등등.. 그래서 그런 이들에게 거짓말은 아무런 부끄러움이 되지 못하고, 급할 때 쉽게 뽑아쓰는 습관이 된다.


그래도 여전히 묻고 싶다. 4b연필로 눌러 썼던 사랑을 힘겹게 문질러 지우는 동안, 정직하게 지워내느라 결국에는 종이가 찢어지고 뭉개지는 동안 아무렇지 않게 종이를 뒤집어 새 사랑을 적던 것이 미안해서 거짓말을 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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