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의 관능 Ep.3

피아노, 말하지 못한 사랑의 선율

by 루틴의 온도

프롤로그 — 말 없는 여자, 감정이 흐르다

토요일 밤, 나는 다시 한 편의 영화를 꺼낸다. 아주 오래전에 보았지만 잊히지 않는 영화,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 오래전 본 영화지만, 몇 개의 장면과 음악만으로도 그 감정이 선명히 되살아났다. 끌려들어 간다.


말을 하지 않는 여자가 있다. 그 여자는 피아노를 말처럼 치고, 감정은 악보보다 먼저 손끝에서 흐른다. 그녀의 이름은 에이다. 그리고 그 침묵은 곧, 감정의 거대한 대양이다. 제인 캠피온은 남성적 욕망의 관점이 지배하던 영화 언어 속에서, 여성의 감정을 섬세하게 길어 올리는 감독이다. 《피아노》는 그녀가 여성의 침묵과 욕망을 말한 가장 완벽한 방식이었다.


말 없는 여자의 언어, 피아노

스코틀랜드에서 고생스럽게 배를 타고, 딸과 피아노를 데리고 뉴질랜드라는 낯선 섬으로 온 에이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배웅조차 나오지 않는다. 피아노는 바닷가에 방치되고, 그 피아노를 옮겨달라는 요청에도 그는 무관심하다.

피아노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다. 그것은 에이다가 말할 수 없는 감정의 통로이며, 삶의 의미 그 자체다. 피아노가 사라진다면, 세상은 무너지는 것과 같다. 그녀에게 있어 피아노는 언어고, 존재고, 사랑이다.

그래서 조지에게 향한 그녀의 시선은 단순한 거래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존중받는 감정'에 대한 목마름으로 옮겨간다. 조지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의 음악을 듣고, 피아노를 손끝으로 더듬는다. 욕망이 생긴 게 아니라, 감정이 피어난 것이다.

시선은 말보다 먼저 닿는다

제인 캠피온은 여성의 욕망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는 항상 '관찰'로 시작한다. 시선, 손끝, 숨결. 에이다는 조지를 바라보고, 조지는 그녀를 바라본다. 욕망은 ‘갖고 싶다’는 충동이 아니라, ‘닿고 싶다’는 간절함이다.

나는 나니까… 욕망까지 누군가에 의해 조절당하지는 않는다.

홀리 헌터는 단 한 마디의 대사 없이, 감정을 연기한다. 무표정 같은 표정 속에, 분노와 체념, 욕망과 슬픔이 층층이 겹쳐 있다. 말보다 강한 감정은, 그녀의 침묵에서 흐른다.

육체가 아닌, 마음의 합주

조지와의 관계는 처음엔 거래였다. 피아노 건반 하나에 입맞춤을 사야 했고, 그녀는 그 거래를 치욕이 아니라 ‘내 감정의 회복’이라 여겼다. 조지는 그녀를 원했지만,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기다렸고, 결국 그녀가 먼저 다가갔다.

이 영화의 관능은 피부가 아닌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는 ‘베드신’이라기보다는 감정의 합주다. 그녀가 피아노를 칠 때, 그는 그녀를 듣는다. 그는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그를 통해 감정을 해방한다.

단아한 얼굴 속의 격정, 그리고 딸 플로라

에이다는 센슈얼한 외형을 지니지 않는다. 검은 드레스, 단아한 얼굴, 조용한 몸짓. 하지만 그녀 안에는 피아노처럼 격렬한 감정이 있다. 조지와의 관계가 육체적으로 번져나갈수록, 그녀는 살아난다. 억눌렸던 삶이,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깨어나는 것이다.

19세기의 여성은 수동적이었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여자는 결혼의 대상이고 감정의 주체가 아니었다. 그러나 에이다는 피아노를 통해 말했고, 조지를 통해 사랑했고, 자신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 여정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다. 그녀의 딸 플로라. 안나 파퀸은 이 작은 역할을 깊이 있게 소화하며 오스카를 품에 안았다. 플로라는 에이다의 감정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가장 먼저 배신하는 인물이다. 사랑과 충성 사이에서 흔들리는 소녀는, 침묵과 감정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감정의 손가락이 잘려나갈 때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남편 스튜어드가 그녀의 손가락을 자르는 순간이다. 피아노를 빼앗는 게 아니라, 감정 자체를 자르려는 시도. 그러나 그녀는 무너지지 않는다. 홀리 헌터는 무표정 속에서 모든 감정을 연기한다. 이제는 더 이상 말도, 음악도 필요 없다는 듯한 체념이, 오히려 그녀를 더 강하게 만든다.

스튜어드는 악당이 아니다. 그는 무자비하지만, 끝내 그녀의 사랑을 인정하고 물러선다. 에이다는 자신을 파괴하려는 남자를 떠나, 자신을 바라봐준 남자에게로 간다.


에필로그 — 바다로 가라앉은 감정, 다시 떠오르는 사랑

토요일 밤, 나는 에이다를 따라 다시 바닷가를 걷는다. 말없이 감정을 담아낸 그녀는, 음악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피아노가 그녀의 언어였고, 조지는 그 언어를 들어준 단 한 사람이었다.

이 영화는 단지 로맨스가 아니다. 그것은 침묵 속에서 자기 욕망을 찾아가는 한 여자의 여정이다. 섬세하고, 감정적이며, 아름다운 관능의 언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피아노는 바다에 가라앉고, 그녀도 함께 잠기지만 다시 떠오른다. 바다는 그녀의 억눌린 감정이자, 욕망이자, 자유였다. 물속에서 그녀는 죽음을 상상했지만, 삶을 택했다. 다시 숨 쉬는 여자의 이야기. 감정은, 그렇게 복리처럼 쌓인다.

감정은, 말이 없어도 전해진다. 사랑은, 때론 건반 위에서 시작된다.


당신이 기억하는 《피아노》의 장면은 무엇인가요?
혹은 당신만의 감정의 언어는 무엇인가요?
댓글로 나눠주세요. 감정은, 나눌수록 더 깊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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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창작 일러스트 (비상업적 감성 콘텐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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