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평안은 도달점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다
왜 우리는 늘 불안할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데도 마음은 불안정하고,
지금 이 순간도 다음 순간을 걱정한다.
이 감정은 단순한 마음의 습관일까, 아니면 인간 존재 자체가 불안을 품고 태어난 것일까.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을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 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본성은 단 두 가지로 요약된다 — 생존과 번식.
몸은 이를 위해 설계되었고, 감정과 의식조차 그 목적에 봉사하도록 진화해왔다.
기쁨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할 때 주어지고, 불안은 위협을 감지할 때 활성화된다.
즉, 불안은 고장이나 결함이 아니라 진화가 선택한 경계의 시스템이다.
하지만 인간은 단지 유전자의 명령만을 따르는 존재가 아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존재다.
이 순간조차 그 다음을 계산하며,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불안을 껴안고 살아간다.
이때 우리는 흔히 ‘평온’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모든 것이 잦아들고, 다시 정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순간.
생물학은 이를 항상성(homeostasis)이라 부른다.
몸과 마음이 특정 기준선으로 돌아가려는 기계적 조절.
그러나 인간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삶은 한 번의 균형으로 끝나지 않는다.
상황은 바뀌고, 나 또한 바뀌며, 균형점 자체가 계속 달라진다.
이럴 때 필요한 개념이 있다. 바로 알로스타시스(allostasis).
정해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따라 균형 자체를 새롭게 조율하는 능력이다.
말하자면, 고요함은 움직임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세우는 과정이다.
진짜 평안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조율의 기술에 가깝다.
알로스타시스(allostasis)의 관점에서 보면, 실존적 평안은 항상성(homeostasis)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정적인 상태에 억지로 머물려 할수록, 오히려 불안은 커진다.
하지만 변화 자체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를 다시 정렬할 수 있다면
불안은 통제할 대상이 아니라 길잡이가 된다.
우리는 유전자의 명령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명령을 자각하고, 재구성하고, 때로는 넘어설 수 있는 존재다.
그 능력이야말로 인간만의 고유한 평안,
실존의 알로스타시스(allostasis)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평안이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내면의 리듬을 찾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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